영화 <시>
*이 글은 영화 <시>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목이 ‘시’인 만큼 이 영화에서 시라는 소재가 가진 의미는 다양하다. 그래서 ‘시’를 중심으로 작품을 해석해보고자 한다. 먼저 영화의 플롯 자체도 미자라는 인물이 한 편의 시를 써내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미자가 시를 쓰는 과정은 세계의 균형과 불균형이 교차되는 영웅의 여정과 비슷하다. 3막 구조로 거칠게 구분해 보면 1막 도입부에서 보여주는 미자의 삶은 균형적 세계를 이루고 있다. 밝고, 명랑한 성격의 미자는 파출부 일을 하고 좋아하는 시 수업도 들으며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손자 종욱이 저지른 일로 인해 동급생 여학생 희진이 자살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계기적 사건으로 인해 그 세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2막은 미자가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어떻게 해야 시를 쓸 수 있어요?”라는 질문을 끈질기게 던지면서 고뇌한다. 마지막 3막에서는 합의금을 마련하고 종욱을 형사들에게 보낸 뒤 다시 균형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침내 한 편의 시를 써낸다. 영화의 장면들은 시 낭독을 제외하고는 배경음악 없이 오로지 디제시스적 사운드(스크린 내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소리)로만 채워져 있어 이 모든 과정을 담담하게,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비극적이고 끔찍한 사건과 미자의 감정이 일상적인 화면과 소리로 와닿는다.
미자는 왜 그토록 시를 쓰고 싶어 했을까? 미자에게 시는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멋쟁이 소리를 듣는 미자의 옷에는 항상 꽃무늬가 그려져 있다. 인생의 아름다웠던 순간은 ‘자신이 정말 예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라고 말한다. 미자는 시를 쓰면서 아름다워지고 싶었다.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외면적인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자에게 시는 시인을 꿈꾸던 어린 시절의 자신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포착하려고 하는 열정이기도 하다. “시를 사랑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찾는 거잖아요.”라는 대사처럼 미자는 ‘아름다움’을 찾고 싶어 시를 쓰고자 한다.
시가 잘 써지지 않아 답답해하며 “어떻게 해야 시를 쓸 수 있어요?”라고 묻는 미자에게 사람들은 다들 나름의 대답을 해준다. ‘느낌이 중요하다’, ‘시를 쓰는 마음이 중요하다.’ 등등. 그중에 가장 본질적이고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 건 첫 번째 시 수업에서 이야기한 ‘제대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순적이게도 미자는 시를 쓰기 위해서 아름다움이 아닌 추함을 제대로 봐야 한다. 미자가 마주 봐야 하는 추함은 집단 성폭행 피해자 자살 사건에 관한 것이다. 이는 영화 초반 병원에서 이미 암시되어 있다. 응급실 앞에서 넋이 나가 오열하고 있는 여자를 보며 미자는 안쓰러워하며 눈을 떼지 못한다. 하지만 그 건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힐끗거리는 사람들처럼 눈길이 스쳐 지나갈 뿐이다. 미자는 이 일에 관심을 가지지만 아무도 미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고 그녀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미자가 스스로 노력해 마주 봐야 할 진실이 이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집단 성폭행으로 여중생을 자살하게 한 손자 종욱, 사죄나 처벌이 아닌 합의금으로 상황을 마무리하려는 가해자 부모들, 성관계를 요구하는 노인. 아름다운 시와 시상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들과 사건들.
처음에 미자는 이런 추한 현실을 마주 보는 것을 회피한다. 이는 종욱의 집단 성폭행 가담 사실을 알게 되는 계기적 사건에서 드러난다. 미자와 가해자 부모(모두 아버지)는 성별의 대립 양상을 띤다. 가해자 보호자들의 모임이지만 여러 명의 남학생과 한 명의 여학생이라는 구도와 비슷해진다. 충격적인 범죄에 대해 다들 너무 담담해서 충격받은 사람은 미자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술을 마시며 우리는 한 팀이라며 무리를 지어 결속하고자 한다. 그 속에서 미자는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결국 무리에서 벗어난다. 여기서 프레임이 구분된다. 식당 안에 있는 남자들과 창문 밖의 미자. 그들은 미자를 약간의 동정과 걱정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미자는 밖에서 꽃을 보며 시상을 찾아 적는다. 여기서 시상을 찾는 행동은 진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정말 마주 봐야 하는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점차 고개를 돌려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희진의 위령미사, 범죄를 저지른 학교 과학실, 고가도로, 희진의 집에 가보면서 희진을 마주 보기 시작한다. 희진이 자살했던 고가도로에 갔다가 비를 흠뻑 맞고 노인과 성관계를 맺는다. 전에 노인이 관계를 요구했을 때 불같이 화를 내며 일을 그만두었던 미자가 마음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희진을 마주 보기 위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원치 않는 성적 관계란 어떤 것인가. 아주 파렴치한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것은, 체념이란 어떤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가. 이런 과정들을 통해 미자는 종욱이 저지른 일을 마주한다.
사과를 돈으로 대신하려는 현실도 정면으로 바라본다. 다른 가해자 부모들은 여성과 엄마라는 공통점으로 설득해 보라고 제안한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성별을 통해 희진 엄마를 제대로 마주할 수는 없다. 어쩌면 진정성 있는 사과도 설득도 전혀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아이러니하게 제대로 마주 보는 건 돈이라고 생각했다. 부동산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희진의 눈빛을 보고 미자는 돈을 구하러 간다. 미자가 노인에게 돈을 요구하는 장면은 협박과 부탁 사이의 긴장감과 묘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변명하지 않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미자의 모습은 비굴해 보이지도 비참해 보이지도 않는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돈을 요구한다. 가족들의 영문 모르는 눈초리에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당당하다. 말 그대로 노인과 제대로 마주 보고 돈을 요구한다. 이 장면은 미자와 노인의 모습과 수첩에 적은 필담 내용을 교차로 보여준다. 마치 대사를 화면의 자막으로 대신하는 무성영화처럼 느껴진다. 앞서 미자가 시상을 찾아다니며 메모할 때와 비슷한 구성이다. 시를 쓰기 위한 진정한 시상은 아름다운 자연이 아닌 돈을 요구하는 추한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미자는 자신의 추함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당신의 추함을 내가 마주하고 받아주었으니 당신도 나의 추함을 받아달라는 의미인 것이다. 미자는 그렇게 돈을 구한다. 그전까지 합의금은 범죄를 얼렁뚱땅 덮어버리려는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하지만 미자가 구해온 합의금은 희진을 완전히 마주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 고통과 감정을 극히 일부이라도 경험한 뒤 얻은 돈이다. 그래서 이는 다른 가해자 가족들이 준비한 합의금과는 다른 의미이며 이를 전달함으로써 미자는 비로소 희진의 엄마와 마주 본다. 그리고 비로소 합의금으로 뭔가 해결하려는 가해자 부모들의 추함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합의금을 낸 뒤 가해자 부모들에게 “이제 다 끝난 건가요? 완전히?”라고 묻는 미자의 대사 속에 뼈가 있다.
이렇게 미자를 조금씩 진실 앞으로 나아가게 한 원동력은 ‘시를 사랑하는 모임’이다. 학교에 찾아가서 과학실을 본 날, 희진의 엄마를 만난 날, 회피하고 싶은 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미자는 시 낭송회를 찾아간다. 아름다운 시를 쓰기 위해서는 추한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하지만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추한 현실을 마주하게끔 하는 용기도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시로부터 왔다. 미자에게 영향을 주는 구체적 인물은 비리 고발로 대가로 좌천당한 형사 상태다. 상태는 시 낭송에 음담패설이 섞인 유쾌한 통찰을 덧붙이는데 미자는 그가 시를 모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내 상태의 모습을 통해 아름다움만이 시의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마 이때 미자는 종욱의 범죄를 인정하고 합당한 벌을 받게끔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 같다.
미자는 추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멈추지 않는다. 사랑하는 손자가 저지른 추한 일은 인정하고 그걸 그냥 덮고 넘어가진 않는다는 것이다. 식탁 위에 희진의 사진을 올려두었을 때 딱히 신경 쓰지 않고 밥을 달라고 하고 TV를 켜는 모습,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동네 아이들과 훌라후프를 하며 노는 모습을 보며 미자는 마음이 불편하다. 자신의 추한 행동을 마주 보게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내적 갈등.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종욱이 괘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해맑은 손자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다 합의금을 낸 날, 종욱을 깨끗이 씻게 한 뒤 평소처럼 배드민턴을 친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미자도 어쩔 수 없이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배드민턴을 치던 도중 형사가 찾아오자 다시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미자가 어떻게 당황해할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어진 장면은 뜻밖이었다. 형사가 종욱을 데려가는데도 쳐다보지도 않고 아무렇지 않게 상태와 계속 배드민턴을 치는 것이다.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무심한 행인인 것처럼. 미자는 종욱이 자신이 한 행동의 무게를 깨닫길 바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욱 자체를 추한 사람으로 대하진 않는다. 피자를 사 먹이고 손톱 발톱을 깎아주는 미자의 모습은 종욱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손자지만, 사랑하는 손자라서, 종욱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제대로 벌을 받게 했다.
종욱을 경찰서에 보내고 쓴 미자의 시 ‘아네스의 노래’는 미화나 회피가 아닌 공감과 통찰을 통해 쓰였다. 이 시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오른 의문들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아네스(희진)의 노래지만 미자의 노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의문, ‘미자는 왜 딸에게 종욱의 일을 밝히지 않았을까?’ 딸은 미자가 유일하게 자신을 추함을 내보이지도, 추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지도 않았던 인물이다. 끝까지 자신의 병과 종욱의 범죄를 알리지 않았고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미자가 가장 사랑한 인물이라고 느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과 제대로 마주하고 솔직한 마음을 터놓기 어렵다. 나보다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고 상처받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본인이 아니라 딸이 가해자 아버지들 사이에 앉아있다면, 이혼하고 아이도 친정 엄마에게 맡겨서 자식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무언의 눈치를 봐야 했을 것이다. 여성으로서 느끼는 분노와 부모로서의 감정 간의 갈등에도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미자는 딸이 본인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엄마가 아프고, 아들이 집단 성폭행을 저지른 게 내가 이혼을 해서, 내가 아들을 엄마에게 맡겨서, 내가 엄마에게 신경 쓰지 못해서라고 자책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금전적인 부담을 주기 싫어서,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없는 얕은 관계라서가 아니다. 엄마는 딸에게 그저 꽃을 좋아하고 이상한 소리 잘하는 친구 같은 엄마로 남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미자의 시에서 딸에게 남긴 유언처럼 느껴졌던 구절.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두 번째 의문은 결말에 관한 것이다. 늦은 저녁 시를 쓰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미자는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자신의 병에 대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시 한 편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미자는 어디로 갔을까?’ 미자가 남긴 시와 마지막 장면을 통해 나는 미자가 투신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고가도로에서 항상 쓰고 다니던 모자가 바람에 날려 강물에 떨어진 것을 복선으로 볼 수도 있다. 마지막 카메라를 바라보는 희진에게 미자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선생님의 칭찬에 시인을 꿈꾸던 천진난만한 어린 미자가 희진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정면을 응시하는 희진은 울음을 참는 것 같기도 하고 옅은 미소를 짓는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이다. 다시 깨어나 당신을 만나고 싶은 기대감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는 듯하다. 영화는 검은 강물로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 아득한 강물은 삶 속에서 흘러가는 수많은 기억처럼 느껴진다. 미자는 사라져 가는 기억들 속에 몸을 던졌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웠던 최초의 기억을 찾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마지막 수업 때 시를 써낸 사람은 미자밖에 없었다. 인생의 아름다웠던 순간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다들 충분히 시를 쓸 수 있는 자양분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제대로 마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기억과 감정들을 그저 흘려보냈다. 시와 인생을 진지하게 제대로 바라본 사람은 미자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그래서 추한 현실을 처절하게 마주 보고 쓴 미자의 시는 참 쓰다. 단 한 글자의 제목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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