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Div Sep 20. 2020

영화를 보며 생각한 것들... <남매의 여름밤>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를 사랑한 씨네필들...

 얼마 전보다는 조금은 나아졌지만 영화관을 가는 게 여전히 어려운 시기이다. 예전 같았으면 <테넷>을 몇 번 관람을 했다고 SNS에 인증하는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이제는 극장 관람이 용기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테넷> 같은 헐리우드의 텐트폴 영화도 흥행 수익을 걱정해야 하는 영화 시장이 되었다. 이런 시기에 용기 있게 개봉을 한 우리나라 인디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보고 나서 든 생각들을 몇 자 적어보려 한다.

[<남매의 여름밤> (2019년), 윤단비 감독 작품]

 영화의 스토리는 아주 간단하다. 임대로(아마도) 반 지하 빌라에서 살고 있던 남매 가족이 지역 재개발로 인해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혼자 살고 있는 할아버지의 오래된 2층 단독 주택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는 이야기이다. 영화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주인공이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와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는다. 투닥거리지만 서로를 아끼는 남매의 모습, 갑작스러운 고모의 등장, 좋아하는 남학생과의 서툰 연애 그리고 할아버지와의 관계 등 극적인 사건은 아니지만 작은 에피소드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는 힘이 있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대만의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초기작 <동동의 여름방학>이었다.

[<동동의 여름방학> (1984년), 허우 샤오시엔 감독 작품]

 <남매의 여름밤>과 남매의 나이는 반대이지만 여름방학을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되는 전체적인  스토리가 많이 닮아있다. 시골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간 남매가 동네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 모습들 사이사이 문제를 일으키는 삼촌의 에피소드와 건강이 안 좋은 엄마의 수술 등의 사건들을 통해서 세대 간의 차이를 어린 동동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허우 샤오시엔 본인의 어린 시절 기억을 고스란히 가져온 영화로 그 당시 대만의 여러 세대들의 생각의 차이를 담담하게 담아낸 이 영화는 감독의 초기 작품 중 수작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영화에 아버지 역을 맡은 에드워드 양은 감독으로 더 유명한데 허우 샤오시엔과 같이 대만 뉴웨이브를 이끌고 세계 영화계에 대만 영화를 알린 감독이다. 초창기 대만 뉴웨이브 영화들을 보면 서로 다른 감독의 영화에 배우로 참여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허우 샤오시엔도 에드워드 양 감독이 연출한 초창기 영화 <타이베이 스토리>에서 주연을 맡아서 연기를 한 것처럼 말이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그 이후 <비정성시>(1989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아마도 이 영화가 이 감독의 영화 중 국내에는 처음 개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속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면서 메이저 영화제에서 항상 다음 작품을 신경 써야 하는 거장이 되었다.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것은 개인의 삶을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 속에 시대에 대한 의미를 담아내는 그만의 연출 방식이다. 하지만 너무 잔잔한 영화여서인지 국내에서는 거의 개봉을 하지 못하고 영화제에서 아니면 시네마테크에서만 볼 수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영화를 사랑하는 씨네필들이 유달리 좋아하는 감독이기도 하다.

[<비정성시>(1989년), 허우 샤오시엔 감독 작품]

  개인적으로 작년에 인디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영화인 <벌새>(2018년, 김보라 감독 작품) 그리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남매의 여름밤> 모두 허우 샤오시엔 영화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영향을 받은 감독들이 많아지는 건 너무나도 좋은 일이다.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지금 인디 쪽에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세대가 아마도 우리나라에 영화제가 붐을 이루고 있을 때와 그들이 문화적 감수성이 높은 시기가 겹치지 않아서 일까 한다. 다양성 그리고 특히 아시아 영화에 관심을 더 가졌던 부산이나 전주 같은 큰 영화제들의 영향으로 아시아 거장들의 영화가 그들의 영화적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요즘 국내 메이저 영화들의 완성도가 계속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서 이렇게나마 인디 영화계에서 주목할 만한 적품들이 나오는 게 영화팬으로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는다.

[<벌새>(2018년), 김보라 감독 작품]

 다시 <남매의 여름밤>으로 이야기를 되돌리면, 개인적으로 허우 샤오시엔을 연상시킨 장면은 오프닝의 봉고차를 카메라의 한 호흡으로 계속해서 따라가는 장면과 여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오랜 시간 동안 내려오는 장면이었다.

허우 샤오시엔 영화 중에는 이런 롱테이크가 많은데 예를 들면,  <밀레니엄 맘보>의 오프닝에서 서기가 육교 같은 구조물을 걸어가는 장면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계속 따라간다거나 <쓰리 타임스>의 첫 에피소드에서 장첸이 서기를 찾아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무심하지만 계속 보여줌으로 이를 보는 관객에게 등장인물의 감정을 그 어떤 방식보다 절절하게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롱테이크에서는 배우의 연기가 중요한데 <남매의 여름밤>을 보면서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너무 놀라웠다. 위에서 언급한 자전거 씬도 그렇고 특히 영화의 처음 부타 차곡히 쌓아간 감정을 터트리는 마지막 시퀀스의 연기는 배우의 나이와 극 중 배역의 나이가 비슷할 때 나올 수 있는 장점을 잘 보여주는 듯했다. 앞으로도 주연을 맡은 최정운 배우의 모습은 다양한 영화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


 만약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고 아직 <남매의 여름밤> 또는 <벌새>를 보지 못한 분이라면 허우 샤오시엔을 사랑한 씨네필들이 만든 이 영화들을 꼭 한 번 보기를 권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좋아서 가는 카페 소개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