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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SW 아티 Jan 03. 2021

저도 처음부터 서비스 기획자는 아니었어요.

프롤로그 2 - <서비스 기획자로 영역 확장하기>


저는 미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전공을 살려 두 곳의 회사에서 각각 웹 디자인과 편집 디자인 업무를 했었어요. 


시각디자인에서는 가독성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특히 그 적용의 영역에 집중하여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들을 배우고 또 업무에도 적용합니다. 예를 들면 글을 잘 읽히게 하기 위해 자간은 어떻게 하고, 행간은 어떻게 하고, 제목은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지 등을 배우죠. 그리고 이 차이가 폰트에 따라 언어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도 구체적으로 배우니 실행의 영역에 대해서 매우 꼼꼼하게 배우고 실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일을 할수록 그 이전에 있었던 일들, 너머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왜 그런 거지?”, “인간이 어떻길래 그런 거지?”  


예를 들면, 가독성이라는 것이 인간의 어떤 특성 때문에 중요하고, 가독성을 높이는 규칙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직접 그런 것을 발견해내고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어요. 남들이 알아내거나 만들어낸 규칙을 현실에 잘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천에서부터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고, 알아내고, 그것에 뿌리를 둔 규칙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요.


그런 마음으로 인간이 어떻게 인지하고 행동하게 되는지 알고 싶어 심리학과 대학원으로 가서 인지공학을 공부했습니다. 석사 학위를 받고 나서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지금의 UX 직무를 시작하게 되었죠.


이렇게 설명하자니 ‘강한 목표 의식에 의해 공부를 다시 해서 커리어를 전환했구나’ 싶지만 그때의 현실은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미술 진학 준비부터 따져보면 꽤 오래 미술에 집중했었고(예술고등학교까지 다녔으니 오래 했죠), 그래서 갑자기 인문학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에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세부 전공이 인지'공학’이긴 하지만 심리학과에 속해있었고, 인지심리학을 공학적으로 활용한다는 개념이기에 인문학도라는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을 ‘포기’한다는 용기도 말이죠. 


그 이후 약 16년의 시간이 지났고,

 현재는 서비스기획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들여 학문적인 공부를 하고 난 뒤 시작한 UX 직무는 적성에 참 잘 맞았습니다. 기대했던 대로 인간 이해에 더 가까워진 점이 만족스러웠고 시각 디자인보다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것이 더 즐거웠습니다. 좋은 경험들을 쌓아가며 열심히 (많이) 일하고 있었죠. 


그런데 실무자로 일한 지 7년쯤 넘어갈 때쯤 세상이 또 변하는 게 느껴졌어요. 조직은 더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점점 프로세스를 줄이고, 서로 구분되어 있던 조직들을 없애거나 합치며 줄이고 있었죠. 그러면서 이 일을 시작했던 원천, 사용자라는 인간을 이해하는 고유한 일이 점점 다른 직무와 중첩되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UX가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좋은’ 시대가 역설적으로 UX 전문가의 역할을 좁게 만든다는 것을요. 


또 움직일 때였죠. 그래서 이직을 하며 UX 직무에서 서비스기획 직무로 전환했습니다. 

그렇게 지금이 되었습니다.


대략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한 후배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와, 멋진 두 번의 커리어 피봇팅이네요.” 


피봇팅은 기존의 전략을 포기하고 수정하여 방향을 전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상했던 것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 기존의 전략을 수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피봇팅은 꼭 이전의 경험들을 부정하거나 0으로 돌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나 아이디어를 발판으로 삼아 전환하기도 하고, 또 더 적합한 목표를 찾고 더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수정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포기라는 부정적인 설명보다 변화를 찾아나가고 적응해 나간다라는 긍정적인 설명이 더 적합하다고 믿습니다.


후배의 말대로 두 번의 피봇팅으로 더 확장된 사고를 가지며 나만의 강점을 가진 커리어를 만들어 왔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잘한 결정이지만, 그땐 의지를 가지고 용기를 냈던 도전이었습니다. 기존 것을 포기하는 용기와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요즘엔 시각디자인 전공에서 UX를 정식으로 배우기도 하기 때문에 왜 이런 용기가 필요한 지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정말 세상이 변한 거죠! 그땐 UX 디자이너(당시엔 UI 디자이너라고 불렸습니다)가 되기 위해선 인간(사용자)을 이해하기 위해 HCI 혹은 인지심리를 공부해야 했고, 그건 완전히 인문학적이거나 과학적인 접근이었습니다(제가 공부했던 학교에서는 심리학과에 입학하거나, 경영학과에 입학하거나, 공대를 통해 인지과학과정에 입학했어야 했습니다). 


그 시점마다는 기존 것을 ‘포기’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마음을 다졌어야 했어요. 그리고 그 정도 각오가 있었기에 새로운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니 사라지지 않고 저의 커리어를 이루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점마다는 새로운 것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웠지요. 하지만, 새로운 것마다 저에게 잘 맞았고 마치 제가 저 자신을 더 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도전하지 않았다면, 그런 강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요? 저 자신을 이렇게 알게 될 수 있었을까요? 

그런 점에서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성장의 기회를 찾는 커리어 피봇팅을 응원합니다. 그 용기를 내는 데에 저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모든 이미지의 출처는 unsplash.co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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