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에~ 맘충

약자에 대한 혐오

by 도드리

아이를 낳고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아니,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가 바뀌었다.


아이 낳기 전의 나는 나름대로 자리잡은 사회인으로서 성실히 직장에 다니며 돈벌이를 하고, 세금을 내고, 각종 소비 및 문화생활, 이동, 배움 등에 한 치의 거리낌도 없는 성인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났더니, 나는 이 중의 어느 하나도 내 뜻 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내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말이다.


아이 낳기 전 식당에 가면, 난 내 발로 내가 먹고 싶은 식당에 들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하고 예의 바르게 식사를 마치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았더니, 일단 식당에 가는 것부터 문제였다.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식당, 유모차를 둘 수 없는 식당에는 갈 수 없었다. 메뉴는 당연히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것으로.

그리고 식사 예절? 하하.

나는 아이가 간혹 소리라도 질러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아이는 때로 소리를 질렀다.

그때마다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그래도 아이는 때로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크게 웃어댔다. 어쩔 수 없었다. 아이니까.

바닥이며 식탁에 음식을 흘리고 문대는 일은 예사였다. 흘리자마자 황급히 탁자와 바닥을 닦아 댔다. 물론 닦자마자 다시 흘리는 일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종업원이 푹푹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다.

밥을 먹다가 답답하다고 돌아다니려고 하는 일도 잦았다. 나는 아이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눈치보며 사람이 없는 쪽으로 데리고 다녔다.

이 모든 일은 엄청나게 피곤했기 때문에, 나는 일단 식당 자체에 가질 않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모일 일이 생기지 않는가?

친정 아버지 생신날이었다.

유모차를 밀고 약속된 식당으로 들어가자, (아마도 아이를 싫어했을) 아가씨 하나가 우리를 몹시 노려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 하필 종업원이 안내해준 우리 자리는 그 아가씨네 테이블 바로 옆자리였다.


아이는 온 가족이 모이자 기분이 좋아서 크게 까르륵 웃었다.

아가씨는 아이를 벌레나 뱀을 보듯 쳐다보았다.


나는 장애인이 된 기분이었다.

어느날 내가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된다면 세상은 꼭 이렇게 변할 것 같았다.


내 의지와 상관 없이 혐오의 시선을 받는 세상.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세상.


내가 일반 사람들처럼 식당에서 식사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나는 남에게 피해를 줄 수 밖에 없었다.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애를 쓰든 상관 없이 그건 그저 기정 사실이었다.


나는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심심치 않게 개념없는 엄마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요즘은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내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갓 낳았을 무렵에는 맘충 논란이 대단했었다.


주로 '그럴만한 엄마들은 맘충으로 불려도 싸다!' 는 주장들이었다.


그런 에피소드들을 읽으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다.

정말 개념없고, 뻔뻔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엄마들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피해를 끼쳤으면 아이를 교육하기라도 해야지!

보다못해 '참교육'에 나서는 시민 영웅에게 응징당하는 맘충 이야기는 얼마나 재미난가!

혹은 시민 영웅이 패배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경우 댓글로 너도나도 그 맘충을 질타하는 재미가 또 있다!


그런 것을 보고 있자면 나는 '그 개념없는 맘충들'과는 다른 대단히 모범적인 시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들과 달리 도덕적으로 우월하니까.

수 많은 맘충 에피소드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사람들은, 아마 나와 비슷한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나는 그들과 다르다, 나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


이렇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 집단은 주기적으로 생겨난다. '충' 논란도 유행이 있다 이 말이다.

된장녀, 맘충, 한남충, 틀딱충, 개독 등....


아마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부상하는, 혐오해 마땅한 사람들을 패면서 이렇게 생각하리라.


'나는 그들과 다르다. 나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



*



한참 이 맘충 논란이 뜨거울 때 갓난아이를 키우던 나는, 행여 어딜 가서 내가 '맘충짓'을 하지 않을지 늘 전전긍긍했었다.

또래 아이를 키우던 동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애기 데리고 어디 카페라도 가면요, 친구랑 뭘 하다가 '야 이러면 우리 맘충이야' 이러면서 눈치 본다니까요."


(스트레스로 미칠 것 같아서 카페나 술집, 피씨방 등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당신이라면 아기를 데리고 카페에 간 엄마에게 돌을 던져라!)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노력해도, 우리는 아기를 데리고 있었기에 남에게 피해를 주었다.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를 맘충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 아버지 생신날 간 식당에서, 내 아이를 벌레처럼 보던 아가씨도 나를 맘충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즉, '그럴만한 짓을 했기 때문에 맘충이라 불려도 싸다'에서 그럴만한 짓에 대한 잣대는 사람마다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특성에 기인한 - 돌발적인 큰 소리, 장난, 돌아다님 등 - 피해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없어지지 않았다.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하여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양해가 필요한 사람.

사회적 약자.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바로 정상인에서 사회적 약자로 내려감을 뜻했다.

그리고 맘충 논란과 그에 따른 자기 검열은 아이를 낳음으로써 사회적 약자가 된 엄마들에게, '사회는 너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니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라.' '너희들이 사회에 나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니까.'


거리에서 우리 눈에 띄는 장애인의 비율은 실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전체 인구수 대비 장애인구수에 크게 밑돈다고 한다.

나는 왠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사회가 그들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사회는 그들이 가진 특성에 기인한 피해를 받아들여주지도, 이해해주지도 않으니까.


맘충 논란은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약자에 대한 싸늘한 시선이, 그들을 혐오하면서 도덕적 우월을 느끼는 풍조가, 무척 안타깝다.


그리고 이 논란의 어디에도 아빠는 없다는 사실도.


* 이 글의 제목인 '헤에~ 맘충'은 제가 실제로 들었던 말임을 밝힙니다. 그 말에 악의는 섞여 있지 않았음을 압니다. 그저 농담조의 그 말을 듣고 웃고 지나칠 수 없었던 제가 있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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