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쉬어

병가 사용, 노동법의 허점

by 도드리

남편이 대상포진에 걸렸다.

몇주 내내 야근에 주말 출근에, 무리한 일정이긴 했다.

그가 바쁜 탓에 나도 일 마치고 혼자 아이 보느라 강행군이었다.

하도 피곤해서, 저녁 무렵이 되면 귀가 먹먹해지고 삐- 소리가 들려왔다.

모처럼 쉬는 주말, 밀린 집안일을 하며 병원 간다던 남편이 들어오면 병원에라도 가봐야 하나 생각하던 때에 그가 멋적게 웃으며 들어왔다.


"나 대상포진이래."

"엥?!"


며칠 전 피부에 발진이 올라왔다고 하길래 건조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대수롭잖게 여겼던 게 화근이었다.

아프지 않냐고 해도, 그냥 가렵기만 하단다.

이거 참, 대상포진은 무척 아픈 병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경우도 있구나.

의사가 써준 진단서에는 '일주일간의 절대 요양'과 '추후 요양이 더 필요할 수 있음'이 명시되어 있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팀장에게 뭐라고 문자를 보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병가 일주일 써. 후유증 남으면 엄청 아프대."

내가 심각하게 말하자, 그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대답했다.

"병가 내줄지 모르겠어."

"무슨 놈의 회사가 대상포진이라는데 나오라고 그러냐?"

"예전에 누가 대상포진 걸렸는데 이틀 쉬고 나왔다는데?"

"이런 미친..."


일 못 해서, 아니 못 시켜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어느 (망할) 놈의 회사가 병가 일주일도 안 내준단 말인가.


...하지만 나도 당장 내 직장에 아쉬운 소리 할 처지가 아니니 말이 쉽게 나오긴 했다.

진단서만 내밀고 일주일 쉬겠소, 하고 마음 편히 드러누울 수가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도 이런 미친,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이라니.

나는 화가 났다.


"병가 안 내주면 노동청에 신고해버리자."

"규정이 어떨지 모르겠어. 그리고 그런 거 하면 불이익 있는 거 알잖아."

"...."

"승진이나 승급 누락 같은 건 사용자의 권리인 거 몰라? 하루 이틀 다니고 그만둘 것도 아닌데..."


안다. 아는데.

당장 몸이 아픈데, 후유증이 남을지도 모르는데.


"병가가 안 된다고 하면 연차라도 쓰겠다고 할게."


그는 무조건 일주일을 쉬라는 내 성화에 못 이겨 이렇게 대답하고는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주 정중하고도 긴 문자였다.

초조하게 기다린 끝에 팀장에게 답장이 왔다.

알겠다고, 쉬다 오되 업무 공백 생기지 않게 전달 잘 하라는 내용이었다.

병가를 내주는 건지, 연차에서 까는 건지는 언급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우리는 일단 안심했다.(하지만 연차에서 까일 수도 있다.)


*


노동법 상에는 업무 외 상병에 대한 휴가 제도가 없다.

각 회사마다 근로계약서나 단체협약 등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즉 어느 회사에 다니느냐에 따라, 병가 사용 가능 여부와 병가시 급여 지급 여부가 다르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법으로 규정하지 않은 걸까?

병가가 규정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노동법이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사용자 위주로 만들어진 법률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노동자들이 아프면 당당히 병가 내고 쉬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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