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전 일이다. 딸이 드디어 기저귀를 떼고 팬티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였다.
내 딸은 팬티를 거부했다.
생애 첫 팬티!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고, 사이즈와 디자인을 고민한 끝에 사다 입혔는데...
딸은 다리 한 짝도 넣기 싫다고 완강히 거부하곤 했다. 겨우 달래서 입혀 놓아도 곧 홀랑 벗어버리기 일쑤였다.
당시만 해도 너무 어린지라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초보 엄마였던 나는 쩔쩔맸다.
'뭐가 문제지? 재질이 너무 빳빳한가?'
'무늬가 마음에 안 드나?'
순면 100%, 무늬는 토끼. 분홍색 리본도 달려 있었다. 혹시나 싶어 토끼가 아니라 공주 무늬의 팬티를 입혀보아도 아이는 여전히 팬티를 거부했다.
'이 정도면 부드러운데...'
아이가 태어나고 각종 아기 옷을 세탁하고 정리하는 데 나름 이골이 난 내 손에도 팬티는 부드러웠다.
"그냥 입히지 마. 안 입으면 좀 어때?"
남편이 며칠을 보다가 말을 건넸다.
"그래도 여자애잖아. 뭐 더러운 거라도 들어가면 어떡해."
내가 항변했지만, 결국 나도 팬티가 싫다는 아이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몇 달을 노팬티로 바지만 입고 다녔다.
하지만 나도 고집이란 게 있는 엄마였다.
은근슬쩍 옷을 입을 때마다 팬티를 가지고 와서 입히려고 시도하곤 했다.
물론, 늘 실패였다.
"얘는 왜 이럴까?"
나는 어느 날 너무 속이 상해 투덜거렸다.
"팬티가 불편한 거 아니야? 나도 삼각은 절대 안 입잖아."
"삼각이 뭐가 문제야?"
나는 삼각 말고는 다른 팬티는 입어본 적이 없는지라 그게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쇼핑몰에 '여아 팬티'로 검색하면 90% 이상이 삼각팬티였던 것이다.
남편은 손으로 삼각팬티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여기가 찡기니까 불편하지."
"설마..."
설마는 진짜였다.
사각팬티를 구입해서 입혀보니, 아이는 언제 팬티를 거부했냐는 듯 잘 입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평생 의문의 여지없이 삼각팬티만 입어온 내가 바보 같았다.
그런데 쇼핑몰을 들여다보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첫째, 여아 팬티로 검색하면 나오는 팬티는 대부분 삼각이다.
둘째, 남아 팬티로 검색하면 나오는 팬티는 대부분 사각이다.
셋째, 사각팬티로 검색하면 나오는 팬티는 대부분 남아용이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예쁜 무늬의 사각팬티를 찾기 위해 온갖 쇼핑몰을 다 뒤져야 했다.ㅠㅠ)
각 쇼핑 사이트마다 각 경우의 세세한 수치는 달랐으나, 커다란 경향은 큰 차이가 없었다.
왜일까?
왜 여아는 삼각팬티를 입히고 남아는 사각팬티를 입히는 것일까?
아직 아이니까, 패션 상의 이유는 아닐 테다.
이것은 성인의 경우에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여성용 브라와 속옷은 태반이 몸에 딱 달라붙고 불편하리만치 몸을 조인다.
남성용 속옷은 개인의 기호 차이는 있겠지만 가장 달라붙는 드로즈라고 해도, 여성용 속옷에 비하면 조금 우스운 수준이다.
개인의 선택이라고?
정말 우리 사회에서 속옷이 개인만의 선택인가?
노브라 논쟁만 봐도 속옷에는 사회문화적인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사회문화적 잣대가 여성과 남성에게 다르다는 것도.
아직 성별 특성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조차 적용되는 잣대.
여성은 삼각, 남성은 사각.
이 아이가 커서 가슴이 나오면, 그걸 가리기 위해서 브라를 입겠지.
마치 2차 성징이 나타나면 히잡을 써서 머리칼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처럼 말이다.
나는 히잡과 브라는 근본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무언가'가 타인의 성적 욕구 혹은 불쾌감을 일으키기 때문에 가려야 정숙하고 예절 바른 여성이 되는 것.
반대로 남성의 무언가가 타인의 성적 욕구 혹은 불쾌감을 일으키므로 필수적으로 가려야 하는 것이 있을까?
여름이 되면 늘 논란이 되는 젖꼭지 논란?
남성이 티셔츠 위로 튀어나온 젖꼭지를 가리기 위해 사춘기 때부터 필수적으로 무언가를 하거나 입는가?
엄한 집에서는 집 안에서조차 하고 있어야 하며, 그걸 안 하고 출근한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고, 어떤 남배우가 그걸 안 한 사진을 sns에 올려서 화제 혹은 성희롱의 대상이 되는 것, 그런 게 있나?
없는 것 같다.
여자 아이에게 당연히 삼각팬티를 입히는 문화, 2차 성징이 오면 당연히 브라를 입히는 문화.
내 딸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조금 변해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