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사람들
회사원. 나는 이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뭐랄까, 어감부터 내 취향이 아니다. 회색이랑 비슷한 발음의 '회사원'. 이 단어는 좀 팍팍하고 맛이 없다. 감정이 없는 듯 느껴지기도 하고···. 아, 이런 나를 흉보지 마시라. 그렇다고 '자영업자' 이 단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니까. 자영업자도 어감과 글자수까지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러니까 회사원도 그냥 음운적 관점과 개인의 취향적 관점에서 볼 때 딱히 아름답다 느끼는 어휘는 아니라는 거다.
세상의 많은 셀러리맨들이 없다면 세상은 금방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지난 길고 긴 인류의 역사 속에서 매일 출퇴근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또 온갖 고질병을 안고 살아왔던 모든 회사원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말해왔듯 세상에 쉬운 일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에 나는 자격도 없으면서 직장인들을 깔보지 않는다. 대개의 회사원들이 이렇게 말하던데, '꾸역꾸역'이라고. 그래, 이렇게 꾸역꾸역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대의 고층과 저층 빌딩의 모든 종사자들. 나는 그들을 마음 깊이 존중하고 존경한다. 당신들 덕분에 한국과 그 너머의 인류 역사가 계속될 수 있네요.
꿈을 단순히 직업으로 국한시키지 말자는 사회 풍조가 거세지면서 누군가 "넌 꿈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내 꿈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게 어쩐지 트렌드 따라가지 못하고 구시대적 발상에 고여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나는 대답이 길어진다. 애초에 하고 싶은 게 많아 나열하는데 꽤 시간이 걸리지만, 어쨌거나 그냥 간단하게 직업적 경계 내에서 꿈을 정하다 보면 둘 중 하나가 되는 것 같다.
회사원 혹은 비회사원.
지하철과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타거나 자가용을 끌고 매일 같은 장소로 가는 사람들. 어떤 회사에 입사해서 어떤 직함을 달고 루틴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 대학을 다니며 뭐 하지 고민하다가 졸업 후에 취업을 한 사람들.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니 내버려 두길 바라는 사람들. 나에게 회사원이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사람들. 하기 싫어도 하는 사람들. 다소 무료하거나 아주 즐거워 보이지는 않지만 잘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 우리 아빠도 회사원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회사원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라 하면 꼭 아빠가 떠오른다. 짙은 색의 양복과 반질반질한 구두, 하얗고 파란 셔츠와 비슷한 계열의 넥타이. 전형적인 회사원은 내게 이런 이미지다.
어렸을 때에는 세상이 참 쉬워 보인다. 그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솔직히 아는 게 없어서 그렇다. 딱히 내세울 무기는 없지만, 위급할 때 피할 보루는 있다. 아직 나보다 앞서 세상과 싸워줄 부모가 있으니 여전히 어리다는 가장 순진한 패 하나로 깡이 좋다. 그래서 매일 아침, 피로한 몸을 이끌고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 아빠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도 내가 눈을 떴을 때 그의 침대는 비어있는 것이 당연했고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찝찝하고 무더운 여름에 긴 팔 셔츠를 입는 불쾌함도,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답답한 가죽 구두의 착용감과 매일 밤늦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당연함도 나는 알지 못했다. 약았던 것 같기도 한 나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내심 '아, 회사원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 하는 불효자 마인드만 열심히 키웠다. 그의 삶은 재미가 없어 보였고, 나는 저것 말고 더 재미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 지배당했으므로.
정확히 대학생이 되어 왕복 4시간 통학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알았다. 엿같은 지옥철과 버스를. 제발 좀 붙지 말아 줬으면 좋겠는데 방법이 없는 콩나물시루 같은 열차 칸을. 이제 새벽 3시인데 어차피 2시간 이따 일어나야 하니 차라리 자지 않는 게 이득일까 계산하는 피곤함을. 내 대학생활이 다소 빠듯했던 건 통학을 했다는 이유와 학과 특성 때문도 있겠지만, 아무튼 꼬박꼬박 세상으로 가는 기계에 몸을 싣는 삶이 결코 유쾌하진 않다는 걸 진심으로 체감했다. 아빠랑 이모, 당신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었구나.
어쨌거나 이러한 어린 시절의 환경 요인으로 인해 나는 회사원의 정반대에 있는 직업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내 성격과 죽기 전에 내 이름이든 뭐든 내가 만든 뭔가를 꼭 남기고 가겠다는 목표는 나를 비회사원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결국 이쪽이나 저쪽이나 쉽지 않은 건 매한가지인데도 나는 남들보다 재미난 삶을 살겠다는 포부가 당찼다. 에효, 과거의 나를 만난다 하더라도 나는 내 결심을 반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어쩐지 머리는 꽃밭인 상태로 룰루랄라 신난 모습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올 것 같긴 하다. 넌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될 거야. 각오는 단단히 하는 게 좋을걸.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니다, 일단 미래부터 알려주는 게 좋으려나? 아참, 뭐가 더 이득이지?
회사원은 아닌 것 같아서 사업가를 선택했는데, 막상 사업을 시작하고 나니 어쩐지 회사도 다녀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건 앞으로 이어질 긴 이야기의 서막 즈음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