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난 무서운 손님들

혹시 나 오늘 죽는 걸까?

by 아인장

악령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던데, 어떻게 된 게 지하철역 지하는 여름엔 미치게 덥고 겨울엔 미치게 추운지. 그리하여 에너지 절약 및 냉난방 유지를 위해 한여름과 한겨울에는 매장 유리문을 닫아둔다. 소음도 차단되고 쓸데없는 소리도 막을 수 있어 좋다.


25년 겨울 오전, 사업을 시작한 이래 처음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날을 기억한다. 갑자기 검은 후드를 머리까지 푹 뒤집어쓴 사람이 자동문 센서를 내려친다. 쾅쾅쾅! 매장 안에 있던 나는 정말 깜짝 놀란다. 차가운 겨울 온도에 센서 작동이 원활하지 못해서 자동문이 빠르게 열리지 않는데, 그게 답답해서인지 정말 세게 몇 번이고 문이 열릴 때까지 내려친다. 문이 열린다. 그리고 나는 긴장한다.


"어서 오세요."


대답은 없다. 중키에 시커먼 후드를 뒤집어쓴 남성이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나이 가늠이 잘 안 되지만, 삼 심대 후반에서 사십 초반 정도로 보인다. 머리는 아마도 민머리인 것 같고, 후드 그늘 아래로 보이는 인상이 곱지 않다. 얼굴이 까슬까슬하다.


남자가 매장을 구경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몇 바퀴 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를 내며 돈다.


"쿠바알라씨타바#@%$&···."


처음에는 외국인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말이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영어도, 중국어도 아니다. 어느 오컬트 영화에 나오는 악령이 내뱉는 소리처럼 의미와 형태를 알 수 없이 말들이 엉켰다. 소름이 돋는다. 계속 이상한 주문 같은 말들을 읇조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빠른 속도로 돌고 또 돈다. 조금씩 무서워진다. 양손은 검은 후드 집업 안에 찔러 넣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카맣다. 소름 끼치는 말소리는 점점 커진다.


순간 나는 혹시 내가 오늘 죽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주머니 깊이 찔러 넣은 저 손 끝에 뭐가 있을까? 슬쩍 밖을 보니 지하를 오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자동문은 닫혀서 이 공간에는 저 사람과 나뿐이다. 내가 무슨 봉변을 당해도 비명 소리는 새어나가지 못할 것이고, 갑작스레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해도 누군가 나를 구하러 오기까지 너무 늦을 거다. 내가 왜 여기 있을까.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저 사람이 언제 나를 공격할까. 흉기를 든 괴한과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도망뿐이라고 경찰과 UFC 챔피언이 그랬는데···. 한 번에 바로 열리지 않는 저 자동문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지옥문이 되는 건 아닐까. 저 사람이 달려들면 어떡하지? 언제 튀어야 가장 빠르게 도망가려나···.


MBTI N형 사람답게 스릴러 장르를 골라 상상을 마구 펼치는 찰나, 다행히 남자가 문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안녕히 가세요." 살았다 싶어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이어 그는 또다시 부서지도록 세게 자동문을 내려친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세게 내려치면 오히려 안 열릴 거예요···. 저러다 화 나서 나한테 주먹 휘두르는 거 아냐? 제발 나가라··· 제발 조용히 나가라···. 슬금 공포가 다시 솟아나려는 찰나 문이 열렸다. 아, 살았다.


"안녕히 가세요."


남자는 아무 대꾸 없이 그림자처럼 나간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수명이 연장되는 기분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여권이 한 번도 없었던 남자

추운 겨울 낮 2시경, 키가 크고 목도리를 칭칭 감은 한 남자가 들어온다. 그리고 곧장 지구여권 스티커 — 여권 도장 컨셉 그래픽의 나라별 랜드마크나 유명 관광지가 담긴 스티커 상품 — 앞으로 간다.


"구경 좀 할게요."

"네, 그럼요. 편하게 구경하세요."


평범한 손님인 줄 알았다. 그는 지구여권 스티커 앞에서 30분이 넘도록 서 있다. 무얼 그리 꼼꼼히 보는지 모르겠다. 내가 틀어둔 밝은 브금만 잔잔히 들려오는 적막한 지하에는 지나는 행인 하나 없다. 겨울에는 정말 오가는 사람이 없다.


"제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면서 여권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아, 솔직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는 적어도 사십 대 중반은 되어 보였고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여권 한 번 없을 수가 있을까 싶어 순간 당황스럽다. 하지만 뭐 사람에 따라 그럴 수도 있을 테니 나는 최대한 덤덤하게 말한다.


"아, 그러시구나. 그래서 이 상품에 눈길이 가셨나 봐요."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여권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요."

"그럼 이게 딱 눈이 갈 것 같아요. 제가 여행을 좋아해서 여권 도장 컨셉으로 디자인했거든요."

"아니, 내가 지금까지 여권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요. 그래서 보는 거예요, 지금."

"아···."

"태어나서 지금까지 여권이 있던 적이 없다고요."


어쩐지 같은 말만 반복한다. 조금 이상하다. 마침 남자가 들고 있는 스티커는 유럽 스티커라 나는 이렇게 말한다.


"저도 유럽은 한 번도 안 가봐서 궁금해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어요."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여권이 있어본 적이 없다고요."


뭐지? 할 줄 아는 말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여권을 가져본 적이 없다' 밖에 없는 사람처럼 이 말만 계속한다. 점점 더 이상하다. 그러더니 진열된 유럽 스티커를 몽땅 다 꺼낸다.


"이거 다 꺼내봐도 되죠? 다 똑같은 거예요?"

"아, 네. 그럼요."


어차피 다 같은 상품인데 뭣하러 한 뭉텅이 다 들고 보는지 갸우뚱하다. 손님이란 다양해서 돈 주고 살 거 하자는 있나 없나, 불량이 있나 없나 꼼꼼히 보고 싶은가 보다 생각했다.


"다 똑같다면서 뭐 이상한 거 있을 수 있잖아요. 비교해 봐야지."

"···."


놀랍게도 남자는 똑같은 유럽 스티커 약 서른 장을 모두 꺼내 또 20분 넘게 서서 살펴본다. 앞뒤를 확인하고, 앞면의 그래픽들을 매의 눈으로 따져본다. 이 정도면 없던 하자도 만들어 발견하도록 해야 할 판이다. 매우 꼼꼼하고 끈질기게 스티커를 고른 남자는 마침내 약 1시간 만에 3,500원짜리 스티커 한 장을 고른다.


"카드 되죠?" 남자가 묻는다.


숨 막히는 분위기 속 묘한 긴장감이 감돌아 빨리 남자를 내보내고 싶다.


"네, 그럼요." 나는 카드 단말기 전원 버튼을 누른다.


젠장. 왜 이러지? 전원을 눌렀는데 단말기가 켜지자마자 다시 꺼진다. 진땀이 난다. 뭐지? 왜 이래, 진짜? 여태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두세 번 다시 해봐도 마찬가지다. 한겨울에 식은땀이 난다. 눈앞의 남자와 어떠한 마찰도 빚고 싶지 않다. 얌전히 계산하고 보내고 싶다. 제발, 단말기야. 나한테 왜 그래. 정신 차려, 제발!


"저, 정말 죄송한데요. 지금 카드 단말기 전원이 안 들어와서요. 혹시 현금이나 계좌 이체로 결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겨우 용기를 내 묘한 남자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뭐야? 요즘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카드 결제가 안돼? 나참, 어이가 없어서···. 다시 해봐요. 참나, 카드 결제가 왜 안돼? 하, 뭐야?" 남자가 역정을 낸다. 스티커를 든 손을 높이 치켜들고 내 정수리 위쪽으로 말을 내던지듯 소리친다. 무섭다. 정말 무섭다. 순간 공포감이 든다.

"아니, 전에 온 손님은 카드 결제 했을 거 아냐. 지금 왜 안돼?"


남자는 출입문 위쪽에 붙은 세스코 표식 같은 카드 결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안내 — 심지어 내가 붙인 것도 아닌 — 를 보고 손가락으로 찍으며 이런 게 있는데 카드가 왜 안 되냐고 성화다. 순간 울컥한다. 씨, 오늘 손님 당신이 처음이거든요? 손님이 없는 것도 서러운데 화통을 치니 눈물이 왈칵 나올 것만 같다.


"오늘 손님 없었어요. 이전에 결제한 사람 없어요. 어제는 됐는데, 지금 갑자기 안 돼요."

"나참, 어이가 없네. 카드가 왜 안돼?"

"전원을 켜면 꺼지고 켜면 꺼져요. 아무래도 단말기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다른 결제 방식이 싫으시면 죄송하지만 다음에 다시 방문해 주세요. 지금은 카드 결제가 어렵습니다."

"하, 다시 해 봐요.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댄데 카드가 안 돼?"

"그럼 제가 지금 이 단말기 회사로 전화를 걸어볼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해봐요, 그럼."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핸드폰 자판을 꾹꾹 눌러 전화를 걸었다. 사실 이 때는 태어나 처음 가게 문을 연지 약 2주밖에 안 되었을 때다. 장사의 현실을, 진상 손님을 처음 맞닥뜨린 순간이다. 나는 정말 긴장됐고 공포스러웠다.


수화기 너머 친절한 직원분께 현재 상황을 말씀드린다. 충전기를 꽂아 두었는지, 지금도 그런지 물어보셨는데 모든 게 정상적인 상황이다. 그랬더니 직원 분이 요즘 날씨가 너무 추워서 기계가 금방 방전되는데 아마 그래서인 것 같다고 하신다. 한 30분 충전하고 해 보라고 하신다. 지금 제 앞에 서 계세요···. 지금 충전 기다리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어요···. 미칠 노릇이다.


결국 남자에게 통화 내용을 말한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라며 한숨을 쉬고 계속해서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카드가 안 되냐는 말을 중얼거린다. 절실한 마음으로 전원 버튼을 다시 누르는데, 아! 전원이 켜진다. 하늘이 날 구한다. 겨우 켜진 단말기가 야속하면서 고맙다. 다행히 켜졌다고 카드 결제 해드리겠다 하며 손을 내미는데, 남자가 스티커를 들고 있던 손을 저 멀리 자신의 뒤로 쑥 뺀다. 다시 호통친다.


"아니, 바코드 찍으라고, 바코드! 바코드를 찍어야지 뭐 하는 거야?"

"여기 바코드 안 돼요. 제가 금액 입력해서 결제하는 시스템이에요."

"참나, 물건을 사면 바코드를 찍어야지. 그게 무슨 소리야? 바코드가 왜 없어, 바코드가···!" 스티커는 여전히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근데 저기요. 바코드를 찍으려 해도 그걸 주셔야 찍든가 말든가 하죠. 황당하면서 또 두렵다.


"이 단말기 제가 산 것도 아니고 제가 전달 받은 시스템이 이래요. 상품 뒷면에 가격 적혀 있잖아요. 그 가격으로 결제해 드려요. 영수증도 드리고요."

영수증 준다는 말에 남자는 뭐라 구시렁구시렁 거리며 내게 스티커를 준다. 뒷면에 적힌 '3,500'이란 숫자를 똑바로 보여준 후, 단말기 버튼을 꾹꾹 눌러 절대 착오가 없게 한다. 결제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영수증을 뽑아 남자에게 준다. 남자는 또 성질을 낸다.


"뭐야? 왜 내역이 없어? 뭘 샀는지 나와야 할 것 아냐!"

나도 이젠 지친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성질을 부려대고 싶다.

"여기 단말기가 이래요. 내역은 안 나와요. 대신 가격이 정확하게 나옵니다."

"아니, 받아 적어. 내가 뭘 샀는지 받아 적으라고."

"네, 알겠습니다."


남자는 영수증에 자신이 산 상품명을 적으라고 시킨다. 나는 군말 없이 이행한다. 이 상황을 몇 초라도 빠르게 종결하고 싶다. 남자가 산 스티커는 정확히 말하면 '지구여권 스티커: 유럽 B형'이다. 디자인이 A형, B형 두 종류가 있어 나는 정확한 상품명을 적어주겠다고 말한다. 그랬더니···.


"내가 말하는 대로 받아 적어. 유럽··· 아니, 지구 스티커···. 아니, 지구 유럽 스티커···. 유럽 지구 스티커 한 장···." 더듬거리며 제대로 말하지 않고 자꾸 말을 바꾼다. 도대체 뭘 받아 적으라는 건지? 현재 남자는 매우 흥분한 상태라 말이 잘 안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 확실한 정보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난 이렇게 대답한다.

"이 상품명이 지구여권 스티커 유럽···."

"아니, 조용히 하고 내가 말하는 대로 적으라고. 지구 스티커··· 유럽···."


남자는 내 말을 잘라먹고 우긴다. 이제 정말 눈물이 핑 돈다. 살면서 누구도 내게 이토록 예의 없고 함부로 굴지 않았는데···. 서러움이 몰려온다. 하지만 절대 눈물을 흘리진 않는다. 죽어도 절대 그럴 순 없다. 흥분한 남자는 한참을 버벅거리다 뭐라 뭐라 말하고 나는 말 없이 남자의 말을 볼펜으로 옮겨 적는다.


"안녕히 계세요." 영수증을 꼼꼼히 확인한 남자는 갑자기 인사를 하고 나간다. 평소대로 라면 '안녕히 가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인사했을 나지만 전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아 가만히 있는다.


폭풍 같았던 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나 혼자가 됐다. 남자는 여덟 조각의 종이 스티커 한 장을 샀지만 내게 아주 많은 것을 남기고 간다. 태어나 처음 받은 홀대에 나는 감정적으로 무너진다. 곁에는 아무도 없고, 그저 이렇게 상황이 마무리된 것에 안도하면서 속상하고 억울하고 그렇다. 그 대가로 내가 번 돈은 3,500원. 카드 수수료 떼면 그마저도 채 안 된다. 허무한, 한없이 초라한 금액.


어쩌면 저 남자가 내일 다시 와서 환불을 해 달라고 할지도 몰라. 그럼 군말 없이 해주자. 더 이상 말을 섞으면 안 돼. 이런 다짐을 하며 차오른 눈물이 흐르려는 걸 절대적으로 참는다. 다행히 이후 약 7개월 동안 남자는 한 번도 다시 오지 오지 않았다. 너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번 경험으로 나는 내가 너무 곱게 컸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험하고 날 귀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배운다.


나보다 사업을 오래 하고, 장사를 많이 해본 경험자들은 내가 겪은 일들이 별 일 아니라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 보시라.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처음 멸시받고, 무시당하고, 굴욕을 맛보며 험한 꼴을 보는 경우가 분명 생긴다. 내겐 이것들이 그러한 경험의 시작이다. 현재 이때보다 약간 더 단단해졌다. 물론 떠올리면 여전히 좀 무섭고 속상하지만 이 시간들은 친구, 가족과 함께할 때 맛깔난 안줏거리로 써먹고 있다. 아마 난 앞으로 더 강해질 테지만, 가게를 운영하며 홀로 처음 맞닥뜨린 공포의 순간들을 영원히 잊진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