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지만 외로운 숫자
숫자 '1'은 묘한 매력이 있다. 홀로 우뚝 선 모습이 당당해 보이기도 하면서 어쩐지 가냘파 보이기도 하다. 품을 수 있는 범위가 하나뿐이라 모두가 원하지만 오직 단 한 사람만 쟁취할 수 있는 수, 그것이 수직의 곧은 1이다.
올 하반기에 영화 〈F1 더 무비〉를 계기로 포뮬러 1(이하 F1)에 입문했다. 태어나 처음 좋아하게 된 스포츠다. 운전, 차, 레이스 등에는 일절 관심이 없던 내가 세상에 마상에 챙겨보는 스포츠가 생긴 것이다. F1 경기는 참 재미있다. 극한을 좇는 현대 최신 기술의 집합체, 약 100-200억 원 대 초고가의 레이싱 카들이 시속 300km에 가까운 속도로 1등 한 자리를 위해 질주하는 광경은 혼을 쏙 뺀다. 엄청난 긴장감과 몰입감이 끝내준다. 아쉽게도 쿠팡 플레이의 스포츠 패스 서비스 — 월 약 2만 원 — 를 끊어야만 한국어 라이브 중계를 볼 수 있기에 다음 날 유튜브 하이라이트 영상을 찾아보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덕분에 영어 공부도 하고 부지런하게 찾아보게 되니 좋게 생각하련다. F1 경기 영상을 보면 온전히 레이싱에 집중하는 드라이버들과 열광적인 팬들 사이에 함께 섞인다. 심지어 응원하는 선수도 있다. 숫자 1을 붙이고 달리는 레드불의 막스 베르스타펜! 제가 정말 응원합니다. 월챔이자 멋진 청년으로서 제게 좋은 귀감이세요.
F1에서 전년도 드라이버 챔피언은 다음 시즌에 숫자 1을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2021년 드라이버 챔피언을 달성한 이후, 막스는 현재까지 1번으로 달리고 있다. 그렇기에 그가 착용하는 모자와 헬멧, 운전하는 레이싱 카 등에서 숫자 1을 볼 수 있다. 처음 F1에 입문하고 나서는 왜 1번일까, 궁금했는데 이유를 알고 나니 실력으로 쟁취한 특별한 숫자가 멋있다. 거대 자본이 움직이는 고급 모터 스포츠에서 숫자 1은 이렇듯 나름의 고유한 의미가 있다.
다른 숫자와 달리 유독 1이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사람들은 아마도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인 위치를 향한 동경이 있다. 감히 따를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남이 주는 위압과 선망이 1의 가치를 높인다. 순위와 같은 차등적 영역에서 1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자 권력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1은 그래서 더 불안하다.
1의 생김새를 보라. 곧은 세로 획이 단단해 보이기보다 힘주면 톡, 하고 부러질 것만 같이 얇다. 애써 버티고 있는 듯 어쩐지 안쓰럽기도 한 모양새다. 그리고 한 선으로 이루어져 깔끔하지만 그만큼 외로워 보인다. 5나 8처럼 함께하는 친구가 없다. 굳건하지만 군더더기 다 버린 만큼 빈자리가 넓다. 숫자 1은 이렇듯 어떠한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좋은 의미가 크지만, 반대로 외롭고 경쟁이 심하고 불안하고 허전하며 고독하다. 그리고 나는 현재 1의 빛나는 모습 이면으로 내 몫을 해내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1이 아니지만, 현재 나를 가장 잘 대변하는 숫자는 바로 1이다. 인생이란 공수래공수거,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간다. 혼자 왔고 혼자 갈 거다. 이렇게 보면 세상 사람은 모두 1이다. 인생은 개인전이고 우린 모두 각개전투하다 떠나는 거다. 하지만 동료가 있고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으니 외로움을 달래며 살아간다. 내게도 친구와 가족이 있다. 하지만 하루를, 일주일을, 그렇게 한 달을 보낼 때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많다. 동료도, 직원도 — 막말로 — 손님도 없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내게 고립은 고역이다. 직접 경험해 보니 알게 된다. 나는 절대 혼자 있으면 안 된다. 좋은 생각보다는 나쁜 생각을 자주 하고, 나아가기보다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 이럴 때마다 나 자신이 싫어져 한심하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세요. 행복한 인생은 없습니다. 오직 행복한 하루가 있을 뿐이지요."
부자와 리더, 성인군자 등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사람들의 조언을 자주 찾아 보고 찾아 듣는다. 이것조차 안 하면 나는 정말 울고 싶어 지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사람과 만나 대화를 하면 뭐라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에너지를 얻고, 치유할 수 있을 텐데 온종일 혼자 있으면 마음이 썩는다. 그래서 "너 T발 C야?" 같은 소리를 종종 듣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참 많이 울었고, 요즘도 우울하다. 인생이 좀 재미가 없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잃는 느낌은, 정신이 곪아가는 느낌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나는 내 꿈을 좇아 사업을 시작한 후 1이 싫어졌다. 멋보다 외로움이 커서, 그게 나 같아서 싫다. 독보적인 사람과 브랜드가 되고 싶은 건 여전하지만 상상과 현실은 다르고, 자주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려는 만큼 흔들린다. 그래서 결론 내린다. 나아가는 길에 무조건 사람을 끼워 가야겠다. 그게 꼭 직원이거나 팀이 아닐지라도 사람을 자주 만나자. 계속 만나자. 내가 입을 열어 아, 하면 어, 하고 대답해 주는 살아있는 생명체들을 수없이 만나고 손 꼭 잡고 가련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 많은 후회도 했다. 애초에 동업을 했더라면? 차라리 취업을 했더라면? 직원을 고용했더라면? 첫 번째는 창업을 희망하는 친구나 지인이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부결. 두 번째는 사업 시작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것이니 부결. 마지막은 돈이 없어 불가능하니 부결.
이제 와 만들어낸 후회들은 어차피 그러지 못했을 것들이다. 인간은 만족보다 불만이 쉬워서 자꾸 뒤돌아 굳이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비집고 들어간다. 뭐라도 수정하려 애쓴다. 이게 다 혼자 생각만 많아져서 그런 탓이다. 마구잡이로 피어나는 생각에 뒷골이 당기고 머리가 아파 두통약을 먹으면서도 무성한 생각을 막을 길이 없어 괴롭다. 누가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통이라 그랬는데, 그 말이 참말이구먼.
에능 〈대탈출3〉에서 방송인 강호동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생각이 적으면 인생에서 실수를 한대. 근데 생각이 너무 많으면 인생을 망친대."
그래, 생각하는건 좋아. 그렇지만 그게 인생을 망칠 정도가 되면 안 되겠지. 이렇게 또 마음을 다잡으며 외로운 1이 버티고 또 버틴다.
나도 막스 베르스타펜처럼 1의 영광을 드높이고 정정당당한 실력으로 성공을 쟁취하고 싶다. 억지로 들리거나 뺏어 드는 게 아닌 내 힘과 노력으로 이루어내고 싶다.
아직은 얇디얇은 소면 같은 1인 나. 머리카락보단 두껍지만 스파게티 면보단 얇은 가락의 나.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 싸매 시도하는 수많은 도전 끝에 성공할 나. 행복한 하루들을 살다가 무덤 들어가기 전 참 재미난 인생이었다 말할 수 있는 두툼한 1이 되고 싶다. 내 옆에 다른 숫자들을 함께 늘어놓아야겠다. 그럼 일개 숫자가 아닌 더 큰 수가 되지 않을까? 끝내주는 수가 되는 것이 어쩌면 최종 인생 목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