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락 에피소드 1

요리 편

by 아인장

후쿠오카를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단연코 음식 때문이다. 다녀온 사람마다 맛있는 게 많다고 하고, SNS 상에서도 맛있어 보이는 건 죄다 후쿠오카였다. 오사카는 다녀왔고, 도쿄를 간다면 디즈니 랜드를 가야 하는데 그건 당장은 안 끌리고··· 그렇게 마음은 이미 후쿠오카로 기울었던 것 같다. 어쩌면 바더마인호프 현상(일명 ‘빨간 차 이론’)처럼 후쿠오카를 점찍었기 때문에 후쿠오카에 대한 맛있는 소문이 더 자주 들렸는지도.


기대한 대로 후쿠오카에서는 매일 맛있는 걸 먹었다. 유명한 맛집도 가고, 발걸음을 따라 우연히 찾은 곳에서 꽤 괜찮은 식사를 하기도 했다. 여행은 먹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나와 엄마는 신기하고 맛있어 보이는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여행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눈과 입이 즐거웠던 후쿠오카의 음식들, 하나하나 다시 떠올리며 그림으로 남겨본다.


〈후쿠오카 함바그〉 일본, 후쿠오카

도착하자마자 첫끼로 먹고 싶었던 함바그. 첫날 배에 기름칠 좀 하며 시작하고 싶었는데, 오픈 전부터 웨이팅 줄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오픈하면 몇 팀 정도 들어가나 보고 줄을 계속 설지 포기할지 결정하자 했는데, 딱 4-5팀 들어가는 거 보고 마음을 접었다. 그래, 딴 거 먹자. 가게가 작아서 많이씩 들어가지 못했다. 거기다 돌판에 직접 고기를 구워 먹는 시스템이라 회전도 느릴 것이 분명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아무래도 지금은 아니다 싶어 포기하고 돌아섰다.


후쿠오카에 도착하자마 첫 계획이 틀어졌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덕분에 새로운 걸 먹었으니까. 또 다른 이유는 오후 4시 즈음 재도전해서 결국 함바그를 쟁취했다는 것. 인생이 말이야, 내 마음대로 좀 안 돼도 괜찮아. 하고자 하면 다 일어나게 돼있더라고.


원래 계획했던 첫끼로는 못 먹었지만 오후에 다시 줄 서 약 40분 만에 입장한 가게는 고기 굽는 연기로 가득했다. 안내받은 테이블엔 일회용 앞치마가 하나씩 놓여있었는데, 이걸 꼭 착용해야 한다. 솔직히 먹다 보니 장갑도 하나 줬으면 싶게 기름이 많이 튄다. 가까이 가서 사진 찍다가 뜨거운 기름방울 몇 개에 아주 혼났다.


포실포실한 계란 위 덜 익은 소고기를 500엔 동전 크기로 조금씩 떼어내 뜨거운 돌판에 올려 직접 구웠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빠르게 고기가 익어갔다. 고기 앞에서는 집중해야 한다. 금방 타버리기에 신중하게 뒤집으며 꾸준한 관심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기본 소스를, 엄마는 고추냉이 간장을 주문했다. 고기 자체에 간이 되어 있어 고추냉이만 얹어 먹는 것도 정말 맛있었다. 꼭 추가하라던 계란과 특제 소스를 함께 먹으니 더 맛있다. 처음엔 생각보다 작아 보였던 고기도 양이 괜찮다. 물론 많이 배고팠다면 더 큰 사이즈를 시켰겠지만. 목구멍을 열어주기 위해 생맥주도 한 잔 시켰다. 빠글빠글한 기포와 차가운 온도의 합작. 생맥주랑 같이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야끼소바〉 일본, 후쿠오카

사실 야끼소바가 일본에서의 첫 식사였다. 함바그 웨이팅을 실패하고 하카타역 근처 쇼핑몰 식당가를 돌아다니다가 엄마와 나 둘 다 괜찮다고 생각한 곳이 바로 철판 오코노미야키 야끼소바 집이었다. 괜찮아 보이는 식당 찾느라 1시간은 족히 발품을 팔았다. 결과적으로 첫끼부터 그럴싸한 철판음식을 먹게 되어 흥미로웠다.


7년 전 오사카에서 꼭 먹고 싶었는데 못 먹은 음식이 바로 오코노미야키와 야끼소바였다. 일본 음식이니까 꼭 현지에서 먹고 싶었는데, 미처 다 먹을 순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든 간에 결국 하고자 하면 하게 되는 것. 7년 만에 오코노미야키와 야끼소바의 본고장에서 두 가지 모두 직접 먹게 됐다. 검은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끓듯이 구워지던 두 요리는 정말 뜨거웠다. 배가 고파 마음이 급했지만 천천히 호호 불어 입에 가져가 넣었다.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몹시 뜨거웠지만, 짭짤한 일본 요리의 맛이 지금도 선하다.


야끼소바를 주문하니 빨간 무 조림 같은 것이 함께 나왔다. 얼핏 고추 같기도 해서 매운 거 좋아하는 사람은 추가해서 먹으라는 건가, 싶었다. 호기심에 무엇인고 먹어보니 새콤한 맛의 생강이었다. 일식집 가면 주는 초생강 딱 그 맛이었다. 대신 색깔은 빨간색인. 왜 주나 싶었는데 오코노미야키와 야끼소바 한 입씩 먹다 보니 단무지 같은 시원 깔끔한 반찬이 절로 생각났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생강에 손이 갔다. 아, 이래서 주는구나.


불 위의 오징어가 춤추듯 꾸물거리던 가쓰오부시의 몸동작과 새콤하니 개운하던 빨간 초생강까지. 완전하게 일본스러웠던 후쿠오카에서의 첫 식사.


〈붓카케 우동〉 일본, 후쿠오카

일본을 갔다면 우동을 먹어주는 게 인지상정. 로컬 우동집에서 엄마가 먹은 붓카케우동이 기억난다. 둘째 날 아침밥으로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일본에 왔으니 우동은 먹어봐야 하지 않냐는 우리의 의견이 일치했다. 7년 전 오사카를 갔을 때, 유명한 카레우동 집에 갔었다.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인자한 웃음과 함께 정성껏 만들어주셨던 깊고 진한 카레맛이 좋았던 그 우동이 생각났다. 이번에 방문한 식당 사장님은 그보단 젊은 분이었는데, 공들여 면을 삶고 고명을 얹어 내주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가게는 조리 공간 바로 앞에 바 형식으로 된 곳과 내부의 일반적인 식당 좌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바 테이블로 안내받아 앉았고, 자리에서 한국어 메뉴판을 보고 바로 주문을 했다. 자리 위치 특성상, 우동을 만드는 전 과정을 볼 수 있었는데 뜨거운 물에서 다 삶아진 우동면을 한가득 들어 올릴 때마다 더운 김이 식당 내부를 후끈하게 데웠다.


우동은 일본 음식이지만 한국에서도 쉽게 접하는 음식이라 낯설지 않다. 맛도 너무 잘 안다. 과연 일본이라고 더 특별한 맛이 있을까?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 면이 다르다, 면이 달라. 일본 우동은 면이 더 쫄깃쫄깃했다. 호롭 호롭 빨아먹는 면발이 탱글탱글해서 식감도 참 좋았다. 특히 붓카케 우동은 한국에서도 유명하다는 맛집에서 몇 번 먹어봤는데, 가게마다의 차이가 있겠지만 일본 우동이 좀 더 보들 하면서 쫄깃했다. 한국에서 먹었던 집 중 하나는 면 자체가 상당히 두꺼워 '이 우동은 원래 이런 건가?' 의문이 들게 만들었는데 그건 그냥 그 집 특징이었나 보다.


예쁜 그릇에 정성껏 담겨 나온 우동이 한국의 두 모녀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사장님의 마음까지 육수에 품어낸 것 같다.


〈우연히 초밥〉 일본, 후쿠오카

오호리 공원을 가던 길에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간 슈퍼마켓이 있었다. 입구부터 도시락과 초밥, 야끼소바, 김밥, 함박스테이크 등 맛깔나보이는 음식들이 가득해서 한참을 매대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알록달록 각양각색의 맛깔나보이는 먹거리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방금 밥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는데 수십 가지 요리 앞에서 또 먹고 싶어 우물쭈물 제대로 먹텐션 올랐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따 돌아오는 길에 다시 보자며 엄마를 설득했다. 나보단 엄마가 더 반했던 것 같다. 이것저것 들여다보며 '세상에 이것 좀 봐'를 연발하던 엄마. 우리 방금 밥 먹고 왔잖아, 응? 근데 그거 진짜 맛있어 보이는데? 나도 똑같다.


오호리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걸어 돌아오는 길에 아까 그 슈퍼마켓에 들렀다. 그날 저녁은 결국 이곳이 해결해 줬다. 초밥과 회덮밥, 소고기 덮밥, 롤까지 든든하게 샀다. 야호! 해 질 무렵 갔더니 타임 세일도 했다. 무려 15%나 할인해서 샀다. 그날 저녁에 슈퍼마켓에서 산 음식들을 포함해 편의점에서 산 어묵과 오니기리 등 궁금해서 사버린 모든 것들을 한 자리에 모아 한 상 거하게 차렸다. 그때가 밤 11시경이었는데 여행 가서는 그래도 되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쓱싹 해치웠다.


아쉽게도 그럴싸한 진짜 초밥집에 가진 못했지만, 알뜰하게 구매한 모둠초밥을 감탄하며 먹었다. 진짜 일본 현지인의 퇴근 후 저녁 식사처럼 먹은 것 같다. 10가지 다 다른 회가 올라간 초밥, 알록달록 바다의 예쁜 색들만 골라 얹은 바다의 맛.


〈가츠동〉 일본, 후쿠오카

아쉬운 여행 마지막 날. 호텔 근처에 후기가 좋은 돈카츠 집을 찾았다. 지금까지 못 먹은 일본 음식은 뭐가 있나 생각해 보다가 아차, 돈카츠를 잊었구나. 엄마는 히레카츠 정식을, 나는 가츠동을 시켰다. 이곳은 저온에서 튀겨 속이 덜 익은 듯 빨간 돈카츠가 특징이었지만, 나는 고온에서 튀기는 가츠동을 시켰다. 딱히 저온이 안 당겼다기보다 그냥 일본에서 가츠동 한 그릇 먹고 싶었다. 미소야에서만 먹던 가츠동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그런데 약 25분 넘게 기다린 가츠동이 내 앞에 놓였을 때, 나는 정말 놀랐다. 어, 생각보다 너무 작은데? 넉넉한 양을 선호하는 쩝쩝 박사로서 많이 당황스러웠다. 가츠동의 밥은 사이즈 업이 무료라 미리 양 많게 시켜서 다행이지 안 그랬다면 정말 서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히도 맨 위에 올라간 돈카츠가 상당히 두툼하여 먹어갈수록 천천히 배가 불렀다. 첫인상이 끝인상이 아니라 천만다행이었다.


가츠동에 올라간 돈카츠는 정말 두껍고 촉촉하니 너무 맛있었다. 은근히 짭짤한 맛이 계속 입맛을 돋웠고, 그 아래 깔린 계란도 보들보들 식감이 끝내줬다. 그 아래에는 간장 소스 같은 것이 뿌려진 갈색의 쌀알들이 보였는데 돈카츠, 계란과 함께 후르릅 입에 넣으면 그 조화가 참 좋았다. 일본에서 계란 요리를 먹을 때마다 느낀 건데, 일본은 계란을 참 잘한다. 메인 재료가 아닌데 주인공 자리를 넘보는 샛노란 조연배우 미스터 에그.




한 끼 한 끼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들을 골라 먹는 게 여행의 묘미다. 일식은 한국에도 많아서 완전한 새로움은 없었지만, 본토에서 일본 요리사들이 일본의 자부심을 가지고 요리하는 맛에 젖어드는 행복이 있다.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그릇과 수저, 쟁반 등의 음식을 묵묵히 조력하는 기타 나머지 것들이 모두 일본스러워 요리 하나하나의 맛이 눈으로도 살아난 것 같다. 미처 다 담지 못한 나머지 음식들도 후쿠오카를 맛있는 도시로 기억하게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실패 없이 도전하는 족족 성공했던 후쿠오카의 식도락 나날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