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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변의 잡설 Sep 16. 2021

사기사건에 대한 잡담

이제 사기사건은 제법 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의 금전사기, 유사수신행위, P2P 등의 투자사기, 굿모닝시티 급의 수천억원대 오피스텔 분양사기 등등.   

   


사기꾼들도 꽤 만나보았다. 그러나 사기꾼을 식별할 능력 같은 건 여전히 없다. 오히려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감이 떨어진다. 진정한 사기꾼은 진정 티내지 않기 때문이다. 사기꾼을 알아볼 안목은 줄고 사람에 대한 의심만 늘었다. 승무원을 사칭하면서 심지어 멀쩡히 살아있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거짓말한 사기꾼이 문득 떠오른다.



사기사건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사건과 사기꾼들을 변호하는 사건     



사람들은 사기꾼을 욕하고 그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도 욕한다.

‘돈만 주면 다한다’라고 환멸과 냉소를 보내는 것이다.      



나도 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업한 후에는 ‘사기꾼들은 굳이 내가 변호하지 않아도 대형로펌도 있고 국선도 있으니까’하면서 수임을 피했다. (물론 대형로펌으로 갈 정도의 사기꾼들은 내게 오지도 않는다)     



자연스레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사건을 많이 맡았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개업 후 직접 사건을 수임하게 되니, 사건에 대한 몰입도가 더욱 높아졌고 의뢰인에게 빙의하게 되었다. 당연히 감정소모가 심했다. 처음에는 의협심으로 시작했지만, 의뢰인은 정서적으로 변호사에게 의존하고 사건이 장기화될수록 변호사의 심신은 피폐해진다. 사기꾼만 진상이 아니다. 피해자들이 더 진상인 경우가 허다하다. 매 사건이 끝날때마다 다시는 사기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사건은 맡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다. 



한번은 법정 앞에서 친구를 만난 적도 있다. 사기꾼을 변호하고 있었다. 친구는 내게 겸연쩍어 했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우리는 의뢰인들의 노예다. 기왕이면 힘들게 하지 않는 의뢰인, 돈 많이 주는 의뢰인이 최고다.)     



하지만 여전히 본능적으로 사기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사건에 더 끌린다. 오늘 상담한 의뢰인의 사연은 너무나 경악스럽다. 지금까지 맡은 사건들에서 받은 모든 충격을 합쳐도 이에 못미칠 정도랄까. 이런 사건을 만나면 가슴이 떨린다. 잘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맡아봐야겠다.     




사진은 푸켓 반얀트리에서 찍은 부처의 모습. 코로나 터지기 전 매년 이맘때면 태국에 휴가를 갔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바로 푸켓 반얀트리다. 이곳에 있을땐 한국에서의 일은 아무 것도 아닌 옛일처럼 느껴졌다.      


언제 또 태국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심신이 너무 지쳤다. 피로를 또다른 의욕으로 덮어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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