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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변의 잡설 Nov 25. 2021

드라마 '지옥'을 보고

왜 반증은 그 자체로 긍정되지 못하는가.

** 이 글에는 드라마 '지옥'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제의 드라마 '지옥'을 보았다. 기시감이 들다 못해 전개가 상투적이라는 느낌까지 들었다. 느닷없이 괴물이 등장해 인간을 화형 시킨다는 설정을 제외하고 그 후 이어지는 내용은 그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각종 에피소드들을 차용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1.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한 사람을 집중 타격하고 끝내 고열을 가해 태워 죽이는 현상에 대해 각종 ‘썰’들이 난무한다. 그 와중에 예지자가 출현하고 언론은 별다른 검증 없이 그저 그가 ‘오래전부터 계시를 이야기해왔다는 사실’만으로 앞다투어 보도한다. 추종자들은 자발적으로 결사체를 결성해 예지자를 결사 옹위하며 그 과정에서 ‘죄인’은 물론 죄인의 가족에 대한 사적 폭력까지도 불사한다. 예지자가 사라진 뒤 그를 계승하며 본격적으로 교리 체계를 갖춘 집단(새진리회)이 빈자리를 채운다. 새진리회는 신의 ‘의도’를 독점적으로 해석하면서 교세를 불리며 이익집단으로 변질되고 나아가 사적 형벌권까지 행사한다. 사람들은 새진리회에 저항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며 무기력한 공권력은 이러한 상황을 묵인한다.      


그러던 중 태어나자마자 계시를 받은 아기가 등장한다. 아기는 '이 땅에 태어나 죄를 지은 인간을 단죄하려는 신의 의도'에 대한 반증이다. 새진리회의 교리로 설명할 수 없는, 새진리회의 교리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새진리회는 반증을 받아들여 교리를 수정하는 대신 아기를 제거해 교리의 무오류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시연 전 아기를 제거하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괴물에 의해 '시연'된 아기는 부모에 의해 목숨을 건진다. 새진리회의 사제들은 살아남은 아기를 죽이려 하나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사제들의 길을 막는 소극적 방식으로 저항하며 아기를 지킨다.     



2. 최근 몇 년 간 사회갈등을 야기한 각종 사건들은 '진영논리'와 '당파성'이라는 공통 범주 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각 진영은 그들의 무류함을 고수하려는 만용과 진영을 보위하려는 본성에 젖어, 그들이 내세우는 명제에 대한 반증 사례를 애써 부정하고 심지어 반동으로 간주해 금기시하고 제거하고자 했다. 그 제거 시도는 각 진영의 소수 기득권 세력뿐 아니라, 이를 추종하는 다수의 무리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구체성을 따지며 반증하려는 시도가 있어도, 공개된 시장에서 그 내용을 검증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 반증 시도가 타당성을 입증한다 하더라도 애초부터 모두에게 환대받기란 불가능했다. 반증을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들이 열렬히 신봉하고 쌓아 올린 (신념체계로 치장한) 물질적 토대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결국 각 진영은 해당 반증의 타당성을 따지기보다는 그 반증 가능성 자체를 봉쇄하고, 그 봉쇄 조치의 비합리성을 진영논리로 합리화한다. 합리적 반증을 포함한 그 어떠한 비판도 그저 진영을 분쇄하려는 시도로 왜곡하는 것이다.      



3. 위와 같은 모습들은 과학계의 모습과 대조된다. '예외가 있으면 원칙은 없다'는 것이 자연과학의 공리이다. 아무리 오랜 세월 탄탄히 토대를 구축해온 명제라 할지라도, 단 하나의 반증이 등장하는 순간 삽시간에 무너져 내리고 그러한 질서 전복을 모두가 승복한다. 그러한 지적 정직성이 바로 인류를 우주로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반면 인문계에서는 '원칙이 있으면 예외가 있다'라고 말한다.  (이공계생들은 이 부분에서 매우 혼란스러워한다.) 당연한 말이다. 복잡다단한 인간 질서를 단 하나의 원칙으로 다스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를 무한대로 설정하다 보니 원칙 자체가 무너지는 게 위와 같은 사태의 원인이 아닐까 한다.      



4. 이 작품이 상투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원작자를 탓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작자는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동일한 오류를 반복하는 집단의 본성을 색다른 방식으로 그려내고자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원작자가 만든 몇 가지 설정 중 유독 인상적이었던 것은 카메라와 조명으로 둘러싸여 생중계되는 시연장 무대에서 '신'이 '죄인'에게 가열차게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이었다. 인간에게 이용당하는 신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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