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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같은 직업, 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산다는 건

거기에 있는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경우도 많은데요

by 이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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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인데 제가 마트 직원이 겪을 불편한 점을 민원 넣은 적이 있고 마트 직원이 해당 민원을 들은 뒤 저에게 전화하여 <저 같은 마트 직원까지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다, 저희를 이렇게 신경 쓰는 분이 있는 줄 몰랐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일단 제 민원을 해당 직원이 너무 고맙게 생각해 주므로, 네네, 답을 한 뒤,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지 답을 들었고, 직원 입장에서 만족하면 될 일이므로 알았다고 하고 끊었습니다. 다만 덧붙이기를, <아마도 저 외에 다른 고객들도 마트 직원이 불편을 겪는 부분을 인지는 할 텐데, 굳이 자기 일도 아닌데 민원을 넣기도 그렇고, 상품이 불량일 때나 민원 넣는 걸 것이다> 답을 했었죠.


세상에는 직업적으로 여전히 편견이 있는 건 사실일 겁니다. 저만 해도 일반인들이 방송에 나왔을 때 외모를 보고 다시 직업을 듣고서 <아, 그렇게는 안 보인다> 생각한 적이 있기 때문에, 혹은 직업을 듣고서 <오, 그렇군, 달리 보인다> 하기도 하므로, <직업적 편견은 없다>고 말을 하는 건 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죠.


다만 직업적 편견이 있다는 말이 그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열등하다는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서 마트나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 사면서 마트나 편의점 직원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게 평온한 하루의 마감일 수도 있고, 그런 분들에게 마트나 편의점 직원은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잠시라도 나누는 사람일 수가 있기 때문이죠.


누군가는 편의점 직원을 보고 <최저 시급 받는 것보다 안정적인 직업이 낫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나의 하루를 마감할 때 도와주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므로, <저와 같은 사람을 신경 써 준다>는 그런 생각은, 뭐랄까, 저로서는 대단히 의아하긴 했습니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맥주 캔 하나 조용히 사는 사람에게 그 사람은 <저 같은 사람>이 아니라 <거기 있어 다행인 사람> 일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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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직업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직업을 갖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음에도 나는 그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 어떤 소명을 느끼기도 할까, 생각은 하는데, 국민 모두가 아는 유명인이나 정치인이나 이런 사람이 아니라면 인간은 어디에선가 익명의 대중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마트나 편의점 직원도 올리브영에 가면 올리브영 직원을 대하면서 물건을 구매할 때 <누가 올리브영 직원을 신경 쓸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듯,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모르겠습니다.


해당 직원과 전화를 끊고 이런 제 생각을 말해줄까 하다가, 직원도 아마 꼭 그런 의미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았고요.


저도 사실 대통령이니, 판사니, 검사니, 일반 개인이니, 소송이니, 민원이니, 나름 조사하여 성실히 여러 댓글을 적으면서, 심지어 제 모친의 사망 소식과 장례식 일정 그 밖에 관련 소식을 올렸어도, 사람들이 딱히 이에 대해 호응하지 않는 경험 혹은 반대로 인신공격을 받은 적이 있고, <이런 일은 사람들이 아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언론에 제보도 해보고 별 짓 다해도 그 자리에 있다 싶을 때가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저와 같은 사람에게 관심을 주셔서 감사하다> 이런 생각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저 같은 사람, 저 같은 직업....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건 왠지 슬픈 거 같아요. 아마 제 처지가 실제 그렇다 보니 진지해져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또 주변에서 어떤 직업을 가진 뒤에 스스로를 그렇게 보는 사람들을 보다 보니까, 이런 생각은 좀 슬픕니다.


안타까운 건, 지금 사회가 어떤 이유에선지 부정적이거나 욕설하며 반대하거나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활발히 굴고, 찬성하거나 그럴 수도 있다거나 딱히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다 보니까, 대부분 접하게 되는 반응은 상당히 부정적인 게 다수다 보니 <사실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텐데>하는 분들을 만나기가 어렵긴 하다는 겁니다. 죽어라고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가서 쌍욕 하는 거고, 그럴 수도 있다 하는 분들은 가만히 있으니까요. 죽어라고 쌍욕 하는 사람들이 다수처럼 보이고, 나도 그 속에 속해야 하나 싶은, 불안감도 들거든요.


그리고 누구나 자기가 속한 직업에서 벗어나면 익명의 누군가 혹은 대중의 하나가 되므로, 솔직히 교대 갈 때 변호사나 이런 분들을 만나기도 합니다만, 모르는 변호사라면 그냥 일반 지하철 승객일 뿐이니까, 굳이 자신만 <이런 직업, 이런 사람>이라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 싶습니다. 의사도 아프면 다른 병원에서는 환자가 되죠. 대통령도 재판받으면 피의자 됩니다.


내가 <이런 직업을 갖고서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남았다>, 흠흠, 이거에 속하지 않을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 의사도 말 들어보면 전공의 되고 그럴 때 쌍욕 들어가며 하더라고요. 변호사도 의뢰인에게 폭행당하고 직장 와서 누가 불 지르고 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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