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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는지 모를 때 인간관계가 그만두는 계기인 건 많죠

인간관계로 그만 둘 정도의 일이면 정말 하고 싶은 건 아닌 거더군요.

by 이이진

https://youtu.be/pogH4 WzPzF0? si=5 a5 u6 SM0 xhscInyE


종종 본인의 꿈이 작거나 의지가 약하거나 딱히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없을 때, 즉 스스로가 이 일을 왜 하고 싶은 지에 대한 최소한의 소명 의식조차 없는데 하고 싶다는 욕망만 있을 때, 좌절하는 이유로 <인간관계가 힘들어서>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청소년 시기에 멋 부리는 걸 좋아하는 줄 알고 (싫어하지도 않고 오히려 좋아하는 편입니다만) 그걸 직업으로 삼겠다고 결국 의상학과로 대학을 갔고 대학원까지 갔지만, 더 이상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어서>였거든요. 학창 시절 10년을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노력해 놓고는, 막상 <그놈의 인간관계>때문에 사실상 다른 길에 더 빠진 거죠.


의상 쪽도 본인이 디자인도 하고, 패턴도 뜨고, 미싱도 돌리고, 판매도 하고, 영업도 하고 다 스스로 할 수 있긴 하지만, 사업을 확장하자면, 반드시 패턴을 떠줄 사람과 판매를 해줄 사람과 영업을 해줄 사람을 구해야 하고, 저는 이 부분을 너무 힘들어하면서 어느 수준에서 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넷에 댓글 쓰는 사람들은 방구석 놈팡이라고 폄훼하는 이상한 분위기가 있어서, 물론 악플러들도 상당하긴 합니다만), 제가 20대 중반에 동료와 신진으로 디자이너로 데뷔했을 때(^^;;;;;) 나름 주목받는 신인이었고 (이것도 거의 20년 전 얘기이긴 하나), 당연히 많은 기회들이 왔지만, 저는 다른 사람과 협업하는 데 서툴렀고 <그놈의 인간관계> 때문에 늘 스트레스와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사업한다고 한국의 기회들을 버리고 갔다가 (대단한 기회들만은 아니었지만) 결국 지금은 돈이 아예 안 되는 정책 감시, 비영리 활동에 거의 십 년 이상을 소비하고 있죠.


당연히 지금 하는 비영리 활동도 무지막지한 압박이 들어와서, 관계가 없다면 없겠고 있다면 있겠지만, 제가 경찰이나 검찰, 법원 등과 온갖 소송을 하다 보니, 4번이나 기소가 됐다가 3번이나 무죄를 받는 억울한 일들이 지난 10년 가까이 있었고, 심지어 판사에게 따졌다는 이유로 5일 동안 감옥까지 가는 황당할 정도로 심한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놈의 인간관계>때문에, <그놈의 인간들의 억지와 오해>때문에, <그놈의 말도 안 되는 시비와 압박>때문에 그만뒀을까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이렇게 되고 보니, 제가 디자이너 되고 싶었던 것은 진심으로 원했던 것이긴 하고 너무나 즐거웠던 작업이긴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디자인을 보면 가슴이 뛰고, 하고 싶고, 멋있는 디자인을 보고 한숨 돌리기도 하지만, <그놈의 인간관계>와 <그놈의 시비>때문에 그만두지 않고 있는, 이 비영리 활동보다는 소명 의식은 없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살다 보면, 진짜 못된 사람과 악마 같은 인간과 괴롭히는 게 마치 삶의 목적인 것 같은 사람, 본인의 성공을 위해 무자비한 사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자기 욕망만 채우려는 사람, 반대로 너무 잘해서 질투가 나는 사람, 뭐만 하면 주변에 사람이 따르는 사람 등등, 신기할 정도로 본인이 원하는 방향 중간에서 잡고 늘어져서 놔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그런 사람인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나름 정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나서서 따진다고 혹은 따라 한다고 해봐야 크게 달라지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국 이런 이유로 자기가 어떤 일을 그만둔다면, 글쎄요, 제 짧은 경험에 의하면, 그건 그 <인간관계>를 넘어설 만큼 내가 그 일을 원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즉 상담자가 자꾸 <그 망할 놈의 인간관계>로 반장이 되기 싫고 학교도 싫다면, 그건 그냥 그걸 상담자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것일 뿐 <인간관계>는 원인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정말 본인이 원하는 일을 찾게 되면 <인간관계는 지옥 같은 고통>이면서 동시에 견뎌내야 할 어떤 일이 됩니다.


다만, 그 사람들 중에서 <악마 같은 제안>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돌이키기 힘든 위험에 처할 수도 있고, 또 그 <지옥 같은 인간관계>를 견뎌내며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올랐을 때 본인이 누군가에게 <지옥 같은 인간관계>를 주는 사람이 될 수는 있습니다. 차라리 성공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지옥 같은 인간이 될 바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어느 누구에게도 지옥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도 사실 누구도 알 수 없는 거죠. 인간이 한 명도 없는 무인도에 살지 않는 한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디서든 영향을 주기 마련이니까요.


따라서 상담자 본인이 그 일을, 학교 다니는 것을, 반장을, 진짜 하고 싶은 지 진중하게 생각해 보고, 만약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과 다른 어떤 길을 갈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가, 인간관계가, 직장이, 하는 일이 힘들어도 모두 다 같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뭔가를 하는 게 다른 사람과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공했든 안 했든, 세상 누구에게 물어봐도, 살면서 <진짜 못된 사람 혹은 고통스러운 인간관계>를 겪지 않은 사람은 절대 없는 것도 참고로 하시고요. 그럼 왜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못됐는가, 흠, 이건 너무 복잡한 주제이니, 상담자 본인이 스스로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죠. 상담자 본인이야말로 <인간관계>로 고통받는 당사 자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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