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인증을 스스로 하는 날도 오는구나.
지금 보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2004년인가 2005년에 홍콩과 시청인가.... 학여울이던가.... 에서 패션 쇼하고 이럴 때, 저와 동료 의상에 대한 반응은 좋은 편이었고, 이 옷들 중 상당수는 저와 동료가 직접 패턴도 뜨고 바느질도 한 것들이며, 그렇습니다.
저는 당시 옷을 만드는 게 너무 좋긴 했으나, 제가 원하는 패턴을 만들어서 봉제까지 해줄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았고 이걸 바꾸자면 거의 패턴실에서 살아야 할 거 같아, (제 눈이 좀 높은 것도 있는 것 같고) 그렇다 보니, 직접 만들어야 해서 너무 작업이 많아 영업은 할 수가 없었으며, 결국 공방처럼 비슷하게 돼버렸죠.
게다가 신진 디자이너 8명이 함께 패션쇼를 하는데, 제가 오프닝인가 다음 인가를 맡는다고 해서, 사실 저는 딱히 그게 의미가 있는 줄도 몰랐으나, 새벽부터 오라고 하길래 부랴부랴 갔더니 (동료는 심하게 아팠던 터라 혼자 택시에 짐 잔뜩 싣고 가야만 했고, 당시에는 아프고 이런 걸 말하는 게 불편해 이렇게 저렇게 둘러댔으며) 오후 2시가 넘도록 대기만 하고 있어서, 나중에 확인하니 제 순서가 한참 뒤로 밀렸더군요.
당연히 저는 아무 이유도 못 듣고 기다리고만 있는 게 너무 짜증이 나서 <이렇게 기다리기만 해야 되냐> 다소 퉁명스럽게 말을 했으나, 순서가 밀리니 저런다는 취지로 곡해를 받는다거나, 한국여성경제인 협회 소속 담당자가 제 사무실에서 옷을 사간 뒤 돈을 안 주고 일을 그만둔다거나 저로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지면서, 또 뉴욕 전시를 보고 나니까 제품들이 다 중국산이라 앞으로는 중국을 모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한국여성경제인 협회에서 나와 바로 중국으로 갔지만, 막상 사업자도 못 내고 오긴 합니다만,
여하튼, 이렇게 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제가 아무 연고도 없는 도봉구 157길? (2005년 당시에는 도로명 주소도 사용하지 않는데) 사업자를 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조작이냐가 남는데, 막상 민원을 넣어봐야 <헛소리만> 잔뜩 들을 거 같아서, 후후, 마음 가다듬고 넣어봐야죠.
참고로 저는 당시 한국여성경제인 협회에서 사무실을 아주 저렴하게 임대해 주거나, 제 돈을 더 쓰는 전시이긴 하나 전시 참가비 50%라도 지원해 주는 그런 일들이 전혀 혜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한국여성경제인 협회 혹은 패션 센터에서 진행하는 행사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거나 시큰둥하게 구는 등, 다소 불량하게 군 부분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량함의 바탕에는, 예를 들어 뉴욕 전시에 나갔을 때 저희 부스에만 온 바이어를 다른 브랜드와 함께 공유하라며 허위 기사를 내보내는 등 해당 기관의 실적을 부풀리는 데 제가 암묵적으로 동조해야 한다거나, 유명 해외 바이어라고 온 사람이 알고 보니 어떤 공무원의 교포 동료라거나, 해외 수주를 받았더니 저더러 대출을 받아서 해결을 하라거나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이상한 일들이 있었던 건 사실이고, 결과적으로 이를 견뎌낸 분들은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는 것이고 저처럼 튕겨나간 분들은 또 어떤 길을 가거나 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의 저라면 파고 들어서 부조리한 부분을 밝혔겠으나, 당시 저는 제 성공이 더 중요했고 제 경험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20대의 나이는 그런 나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그런 부조리까지 밝힐 관심도 여력도 없어 경력을 쌓겠다고 중국에 간 뒤, 사실상 인간이라는 게 뭘까 생각이 많아지는 계기가 됐는데,
다만 제 본성 상 아무리 억누른다고 하더라도 부조리에 민감했다 보니, 그때마다 도망쳤지만, 결국 30대 후반에 프랑스 파리에서 경찰을 고소하면서 시작 비영리 활동이 지금 50에 가까운 나이까지 이어지며 법, 검찰, 공무원 등과 소송으로도 가고 있으니, 어떤 면에서는 좀 신기한 거 같습니다.
사업자 잘못된 거 하나로 저도 과거 좀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