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가 반성하고 성실한 삶을 살 수 있어야죠

by 이이진

글로리 방송 이후 각종 유튜버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학폭 피해자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학교 폭력 가해자가 사과를 하는 것이 우선 순서이겠지만, 해당 내용들을 보면, 가해자가 대체 어떤 일을 해야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겠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은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에 갔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누구는 국가 세금 받는 응급 구조원 일을 한다고 비난을 받고, 누구는 피해자와 같은 직업을 가졌다고 비난을 받고, 누구는 아이를 낳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고 있다고 비난을 받습니다. 예전에 어떤 방송에 나온 사람은 환경 미화원이었는데, 학폭 피해자가 새벽마다 익명의 전화를 걸어서 겁을 주더군요.


학생, 군인, 미용사, 전업 주부, 환경 미화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직업들인데, 어느 직업도 피해자가 만족할 수 없다면, 결국 가해자는 산속에서 자연인으로 살라는 말인 건가요? 산속에 살고 있어도 찔려서 저런다고 비난할 거 같은데 말이죠.


가해자가 성인이 돼도 적당한 직업은커녕 사회 불안을 폭력적으로 해결하는 악역을 하고 있다면 이는 명백히 인간의 인격 자체로서 비난받아야 하지만, 성인이 되어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면 이는 청소년기 방황 정도로 이해하고 서로 용서하는 구조로 가야 된다고 봅니다.


잘못은 잘못으로 비난하되 누구라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다시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경우, 사회는 여전히 받아들여 줄 준비가 돼있다는 입장을 한 명 정도는 발화해야 균형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처럼 잘못한 사람이 영구히 사회에서 복귀하기 힘든 구조로 고착되면, 잘못하는 순간, 사회에서 영구히 퇴출되기 때문에,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이는 지위가 있는 사람일수록 사건을 덮으려 애쓰면서 범죄가 더 커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로 인한 사회적 소모도 엄청나지고 있죠, 실제로.


저도 학교 폭력이라는 말조차 없는 시절에 소위 말해 왕따를 당하고, 나름 모범생으로 공부밖에 모르던 인생 자체가 심지어 정체성까지 변할 정도로 그 시절의 충격은 엄청났는데요.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돌고 돌아서 현재의 나를 찾았는지 그 고통을 말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한다고 봅니다. 학창 시절에, 군대에서, 해외에서, 직장에서, 시댁에서, 속한 집단에서, 심지어 가정 내에서 누구나 한 번은 당한다고 봐요. 그걸 깨닫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 게 아쉬울 뿐이죠.


글로리 드라마에서도 가해자들은 과거의 잘못 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도 너무나 나쁜 모습을 하고 있었죠. 계속 살인을 저지르고, 마약을 하고, 온갖 속물적인 모습을 한 채, 사회적 지위마저도 누리고 있었죠. 이러한 행위는 학폭 가해자가 아닌 누가 하더라도 죗값을 받아야 하는 행위입니다. 때문에 연진이의 끔찍한 복수가 타당해 보였던 겁니다. 만약 가해자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면, 과거를 반성하며 다른 인생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면, 그들에게 사과를 받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없는 연진이의 가열찬 복수가 오히려 끔찍했겠죠. 작가가 연진이를 비롯해 가해자들을 비현실적으로 악하게 묘사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여기서 나오는 겁니다.


방송은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누군가를 씻을 수 없는 죄인으로 만들어서 방송이 얻는 게 뭘지 모르겠네요. 마찬가지로 피해자로 낙인을 찍어 다른 삶을 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도록 돕지 않는 것도 잘못됐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을 작성할 당시에는 실화탐사대에 나온 학폭 피해자가 살아있었지만 현재는 자살에 이르렀는데, 방송만 던져놓고 그 모든 갈등을 홀로 감당하게 한 분들도 딱히 도움이 됐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남자아이들에게 강요되는 감정적 의사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