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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서비스를 받는 사람으로서

매장에서 진상 손님 상대한 경험

by 이이진

옛날에, 두산타워 공모전에서 상을 받아서 매장을 낸 적이 있습니다. 처음 오픈할 당시부터 여유 자금이 거의 없었던 터라, 저와 동료 둘이서 거의 24시간 돌아가는 매장을 운영해야 했어요. 오전 10부터 오후 8시까지는 동료가 맡고, 오후 8시부터 새벽 5시까지는 제가 맡아서 운영을 했죠.


당시 니트나 신발, 가방과 같은 제품은 생산하면 천 장 단위를 넘어야 해서, 동대문 도매 시장에서 떼어다 파는 동시에 일부 아이템들은 자체 제작을 하고 이렇다 보니, 새벽 5시에 매장을 끝내도 도매 시장을 돌고, 디자인 한 제품들은 원단 시장이 오픈할 즈음에 원단 시장에 가서 원단 떼어다가 봉제 공장에 넘기고, 이렇게 하면 오후 3시쯤이 되었습니다. 하루 취침 시간이 4시간가량 됐었죠.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끼는 와중에도 저희 매장에서 옷을 사간 분들이 다음에 또 오고 가족도 데리고 오고 이러는 게 너무 좋아서, 진짜 머리털이 빠지도록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저 또한 육체적으로 한계가 온 탓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손님이 저의 한계를 시험하더군요. 저희 매장에서 신발을 하나 사갔는데, 너무 예쁘다면서 다시 두세 개를 사갔던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 없이 환불을 하러 왔는데, 당시 저는 제품에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환불을 군말 없이 해줬던 터라, 그 손님도 바로 환불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손님으로부터 계속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환불이 제대로 안 돼서 카드비가 청구되고 있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 손님 말을 듣고 카드 회사에 왜 취소가 안 됐는지를 문의를 했어요. 카드 회사 측에서는 취소가 됐다고 확인을 해주었고요.


해당 손님의 전화는 오전, 오후, 새벽 할 것 없이 이어졌는데, 그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저는 카드 취소를 제대로 했고 나머지는 손님이 카드 회사에 알아봐야 한다는 거였죠. 진짜 미치겠더군요. 매일 전화를 해서 똑같은 내용으로 원망을 하는데, 나중에는 제 휴대폰 번호까지 알려줘서 휴대폰으로까지 매일 전화를 했어요. 그때만 해도 악성 민원, 악성 고객, 이런 개념조차 별로 없을 때라, 대처 방법이 거의 없었죠, 죽자 사자 전화를 받는 외에는.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해당 손님이 뭔가를 발견했다는 듯이, 저에게 물어볼 게 있다더군요. 왜 신용카드 명세서 상의 이름과 저의 매장 이름이 다르냐면서요. 이럴 경우 신용카드 위장 가맹점으로 신고가 되기 때문이죠. 저도 그 내용은 처음 들어서 일단 확인해 보겠다고 하고, 혹시 몰라 두산타워 내 해당 손님의 카드 명세서에 나오는 매장 이름이 있는지를 알아보러 두산타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있더군요.


그러니까 해당 손님이 다른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했고 그거가 취소 안 된 건데, 그 취소 안 된 게 제가 취소를 안 해준 걸로 오해를 하고 그렇게까지 전화를 한 겁니다. 그동안의 시달림이 눈앞을 스쳐가면서 진짜 질려버리더라고요.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서비스를 하는 직업 군에 대해서 저는 나름대로 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하는데.


입장이 바뀌어서, 서비스를 하던 저도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되었는데, 과연 이 바뀐 입장 안에서 제가 중심을 잡고, 너무 제 입장에서도, 또 너무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도 아닌 게 맞는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얼마 전 제 불만을 (소비자 입장을) 그래도 해소해 주려는 KT덕분에 좋게 마무리된 사건이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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