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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오를 받아줄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 아닐까요

잘못에 관대하지 못 한 사회로 가는 것에 대한 우려

by 이이진

저는 별로 그렇게 도덕적으로 억누르면서만 살지를 않아서 궁금했던 일들은 직간접적으로 해본 터라, 이제는 굳이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뭔가를 즐기고 싶은 생각은 없는 편입니다.


도박이나 살인, 마약 같은 것만 빼놓고, 술 먹고 싸워도 보고 맞아도 보고, 심지어 길에서 잠도 자보고 그랬기 때문에, 그런 일들에 더 이상은 흥미가 없어요. 몸만 피곤하고 깨고 나면 남는 것도 없고 그랬어서, 술이건 뭐건 소위 말하는 유흥을 끊은 것은 좀 오래됩니다. 대학 졸업하면서 다 끊은 거 같아요.


다행히 제가 어렸을 때는 젊어서의 방황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도 있었고요. 대학생으로서 미팅하고 학사 경고받고 그런 게 별로 부끄럽지 않던 그런 시절이었어요. 다행히 학사 경고까진 안 갔지만요. 제가 대학 2학년 때부터 학부제라는 게 시행이 됐고, 학부제가 시행되면 대학에서 더 이상 놀 수 없게 된다는 의견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바뀐 것이 최근에는 보이는군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보다 너무 고루할 정도로 옳게만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학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좋은 대학에 가서 혹은 적절한 대학에 가서 공부만 하고, 그러다가 직장을 구해 또 직장 분위기에 맞춰 성실히 사는 것 말이죠.


사실 대학을 가거나 사회인이 되면서부터는 공부를 하는 것이 맞긴 맞는데, 한국은 고등학교 때까지도 죽도록 공부만 해야 되는 분위기라서, 그리고 성인이 돼서도 계속 뭔가를 배워야 하니까, 끝이 없다는 게 문제인 거죠. 최근에는 대학을 졸업해서 취업 공부를 또 시작하니까, 진짜 끝이 없는 거 같아요.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고, 세상이 정한 옳은 틀에 따라 어른들 말씀도 잘 들으면서, 성실히 살아오신 분들을 저는 개인적으로 존경합니다. 저는 그렇게 단단하질 못 해서 세상이 정한 옳은 것들만 쫓아오질 못 했고, 현재도 매일같이 어떤 결정을 할 때 무조건 옳은 것만 생각하질 못 해요. 그래서 어쩌면 제가 소위 말하는 <옳은 것>에 집착하는 듯한 포스팅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얼마 전부터는 저 자신이 뭔가 옳은 것을 한다라는 자의식에 빠져, 그런 행동들에만 가치를 두고 타자에게도 알게 모르게 강제를 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제 어린 시절을 잊고 자만했던 거죠.


그거를 내려놓은 지가 얼마 안 되는데.


때로는 방황하고 실수도 하고 그렇더라도 다시 돌아와 성실히 사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받아주기에는 자신이 너무 열심히 살아온 게 억울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성실히 살아온 대가가 성실히 살아오지 않은 사람보다 못한 거라면 분노하는 게 당연한 거죠. 그렇지만 사회 기준이 높은 곳일수록, 성실이 지나치게 강제될수록, 사회 구성원끼리 느끼는 압박도 높아집니다.


제가 나름 스트레스 높은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저를 그나마 덜 힘들게 하는 건, 단지 제가 제 가치를 추구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에서만이 아니라, 방황과 고통과 상처가 있는 삶이 토대가 됐기 때문이더라고요.


요즘 보면 한국인들이 너무 힘들어 보여요. 너무 많은 것들이 걸리는 세상이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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