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감각 방식이 변하고 다른 것도 같이 변하네요

기억과 정보에 집착하면서도 중요한 기억 못 하는 건 이상하죠

by 이이진

최근 한 가지 저에 대해 제가 완전하게 몰랐던 부분 중 하나는 제가 뭐 기억력이 나쁜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일이 생각보다 있었다는 점입니다.


젊어서 술을 마셨을 때도 주량도 들쭉날쭉이 상당히 심해서, 어떤 날은 소주나 이런 걸 1.5 리터 음료에 타서 마시곤 했는데 그걸 상당히 빠르게 먹고 취하기도 하고, 소주를 반 병만 마셔도 취하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술에 취하면 기억이 거의 사라진다는 거였죠.


기억이 사라지고 제가 정신을 차리는 곳은 지하철 의자라거나 (역무원이 깨워서 막차라 지하철 없다고 택시 타고 가라고 함) 심지어 도로 위 의자(라고도 할 수 없는 의자) 라거나 이런 곳이었으며, 다행히 당시에는 길이나 공공장소에 취해 있어도 누가 건드리진 않고 교통수단이 끝길 때까지 잠이 들어버린 거죠.


저는 술을 마시고 폭력적으로 굴 때도 있지만 또 나름 웃길 때도 있어서, 사람들과 헤어진 후 혼자 남게 됐을 때 도로 의자 같은 데 누워버리고 어떻게 거길 갔는지 기억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으로, 이게 저는 제가 술에 약하다는 것이다, 술만 안 먹으면 된다, 생각했으나, 최근 들어 반드시 술 때문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술에 취해 도로 위 간판을 친다거나, 테이블 위 술잔과 음식을 바닥으로 쓸어버린다거나, 걸을 때 눈을 감아 같이 술 먹은 사람들이 눈 좀 뜨라고 하거나, 높은 계단에서 뛰어내려 눈 주위가 찢어진 적도 있으며 (이건 너무 위험한 부위였음) 문제는 그 과정을 제가 기억하는 게 아닌, 깨고서 주위 사람들이 말한 걸 듣고 기억을 만든다는 거였죠.


영화 인셉션에서 <이게 꿈인지 알고 싶으면 지금 이 장소에 어떻게 왔는지 자문하라>, 이런 내용이 있는 것처럼 기억이 사라진 것을 기억 못 하는 당사자는 기억이 사라진 자체를 인지 못하며, 따라서 기억이 없다는 자체를 인지 못했고 최근 들어서야 기억을 조합해 아는 것으로 실상은 그 일 전후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인지했습니다.


어떻게 거기 있었냐, 기억이 안 나는 거죠,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 옷도 기억할 정도인데도요. 평소 기억력이 나쁘다면 기억을 못 하는 게 <원래 나는 기억을 잘 못해>라고 하겠지만, 평소 기억을 지나칠 정도로 하는 제가 기억을 못 하는 충격적인 날들이 있다는 건, 이상한 겁니다.


게다가 기억을 못 하면 기억을 못 한다는 자체를 모르고, 기억을 하는 줄로만 착각하며, 다만 전후 사정, 내가 계단에서 뛰어내릴 때 뭘 하고 있었고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고, 눈이 다칠 정도면 큰 일이라 기억이 있는 게 정상인데, 기억이 없더라고요. 일상을 다 기억하라는 게 아니라 눈이 위험하게 다쳤는데 기억이 없는 게 이상한 거죠. 그것도 저처럼 기억에 집착하는 사람이.


얼마 전 서울북부지검에서 제가 작성해 제출한 서면들도 글씨체가 심하게 바뀌고 있었고,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필적 감정하면 숫자 자체도 방향도 다르고, 동그라미 이런 것도 다 다르고, 근데 이게 제가 어려서부터 친구들에게 나는 글씨가 자주 바뀐다 토로한 기억이 문득 나면서, 사춘기야 근육 움직임이나 이런 게 흔들리면서 그럴 수 있다지만, 성인은 거의 모든 게 고착됨에도 이렇다 보니, 저도 사실 놀라고 있습니다.


가령 부친이 손을 자해한 기억도 전혀 나지 않음을 전혀 기억 못 했고, 친구와 혈액이나 이런 걸 정리한 기억으로 기억하는 줄 착각한 것을 알았으며, 부친과 통화를 녹음하면서 사건 당시 전후를 들었고, 이런 정도의 일도 기억이 없다는 건 뭔가 이치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서 어려서 친구에게 <나는 집에 가서 네가 없으면 너 생각이 안 나>라고 말을 하면서 <이거 왜 이래?> 이렇게 말했었고, 심지어 지금도 눈에 보이는 것 외에 살면서 잠들기 전 누군가를 떠올린다거나 어떤 상황을 곱씹은 적이 거의 없으며, 사실 기억 자체에 없고, 어떤 상황이 다다라서야 필요에 의해 기억이 솟았다가 사라질 뿐으로, 기억과 정보에 집착하는 저의 습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좀 더 발전해서 사회생활을 할 때도, 저는 친해지기 어렵다, 친근한 것 같지만 다른 사람 같다, 갑자기 돌변한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고, 술이건 담배건 마음먹으면 다음 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끊었을 뿐만 아니라, 친구 관계도 아무리 친했더라도 연락을 끊어도 아무 상관이 없어지는 등, 통상은 궁금해서라도 찾아볼 텐데 저는 기억 자체가 없다는 걸 기억 못 하는 지경인 거죠.


이걸 전혀 인지를 못했는데, 그냥 제가 사람들과 애착 관계 형성이 어렵고 친해지기 어렵지만 친해지면 괜찮다, 아주 친한 사람만 만드는 폐쇄적인 성격인 정도로, 술 먹고 기억 잃거나 이런 건 술 안 마시면 된다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겨왔지만,


인지를 조금씩 하고 보니, 뭔가 제가 신체 감각 자체가 달라진다, 사용하는 뇌 기관 자체가 변하고, 사용하는 기관이 달라지면 말투, 생각하는 거, 감정, 관심사, 글씨체처럼 움직임도 달라진다, 너무 관심 있다가도 몇 분 만에 완전히 깨끗하게 사라지며 이걸 인지 자체를 못 한다, 다시 같은 부위를 사용해야 기억과 관심이 이어진다, 새로 시작한다, 이거를 깨닫고 있으며,


일부 이 과정을 깨닫는데 음악이 큰 역할을 했다, 일부 사람들의 어떤 인식 못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 이상 심리에 심취한 제가 막상 저 자신의 이런 이상함을 전혀 인지 못하고 <그럴 수 있다, 인간관계가 어려워서 그런 거다> 넘겨온 게 참, 인간이 자신을 객관화한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다시 체감합니다.


이걸 고쳐야 될 거 같긴 한데 50년을 이렇게 인지도 못하고 산 제가 가능할지 모르겠으며, 며칠 머리가 깨질 정도로 두통까지 앓았으나, 일단은 인지했다, 여기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진짜 머리 깨질 뻔했습니다.


이게 가능하다는 것도 저 자신이지만 믿어지지도 않고, 다만 제가 어려서부터 <나는 왜 눈앞에 없으면 생각이 안 나지?>, <글씨체가 왜 항상 바뀌지?>, <돌변한다는 말을 왜 하지?>, <왜 나는 다쳤을 때 아픈 기억이 없지?>, <때로 다친 기억 자체가 없이 상처가 있지?> 통상 다치면 아픈 기억 때문에 조심하는데 그게 큰 일도 기억 안 나니까요,


여하튼 인지가 뭐든 과정의 시작이니까, 잘 될진 모르겠고, 이걸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인지는 했다, 이걸 또 나중에 잊진 않겠지만, 통상은 이런 글은 나중에 읽고 돌연 부끄럽거나 하면서 삭제할 텐데 저는 아무렇지 않아서 이상하다, 이런 생각입니다. 너무 아무렇지 않고 관심도 없고 무슨 일인지 뇌에 인지도 안 된다는 게 이상한 거죠. 이 글에 아무 반응이 없어지는 게, 보니까, 이상한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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