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버지가 제 디자인 작업을 봤을 때 물어본 말은 "대체 이게 뭐냐?"는 거였습니다. 이것도 대단히 완곡하게 표현한 거고, 실상은 대학을 마치 부정당하는 듯한 수준에 이를 정도의 황당한 표정이었죠. 옆 선을 모두 주름으로 처리한 형광색 쫄쫄이 바지는 마치 애벌레같이 보였었는데, 얼핏 보면 그건 바지랄 수도 없는, 그냥 어떤 형태와도 같았습니다. 바지 옆 선을 모두 주름으로 처리한 저의 아이디어에 스스로 고무돼 있던 저는 '역시 나의 디자인은 일반인이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군'이라며 자찬을 했었던 거 같고요.
교수님께 보여드리자, 교수님은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동기들도 나쁘지 않다고들 했고요. 막상 입었을 때는 당시 상당히 날씬했던 저의 다리도 마치 거대한 나무 기둥처럼 두꺼워 보였고 움직임도 쉽지 않아서, 게다가 움직일 때마다 비닐 소재가 뽁뽁거려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지 옆 선은 항상 고른 직선이어야 한다는 어떤 편견에 부딪혀봤다는 즐거움이 명백히 남았었죠.
패션을 잘 모르는 분들도 가장 좋아하는 트렌드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미니멀리즘"일 것입니다. 깔끔하게 재단된 재킷에 눈썰미가 있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약간의 절개가 들어가는 수준의 미니멀리즘은, 때문에, 패션계에 등장하고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시장을 만들어 냈습니다. 가령 검은색 모직 바지가 있는데 바지 밑단에 살짝 절개를 넣으면 미니멀리즘이 될 수 있는데, 아주 작은 절개만으로 일반 모직 바지와는 차별화가 되면서 동시에 자연스럽게 다리가 길어 보이는 효과도 생기게 됩니다.
디자인으로 대학도 나오고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이 정도 기본 상식이 없을 것도 아닌데도, 저는 여전히 디자인을 하라고 하면, 대학 시절 바지 옆 선에 미치듯이 주름을 넣었던 때가 즐겁습니다. 옷을 입어 날씬해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뚱뚱해 보이니 그 강박이 사라져 즐겁고, 보통 시선을 앞 중심에 향하게 해야 하는데 돌아서는 옆모습에 시선을 두게 하는 트릭도 재밌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실루엣이라는 게 뭔 지를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은 즐거움을 저는 사실 좋아합니다.
올해 트렌드를 보니 미니멀리즘이 드디어 주류가 됐더군요. 사람들은 미니멀리즘이 디자인적 요소가 많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쉽게 나온 줄 알지만, 패션 역사에서 미니멀리즘은 퓨처리즘, 싸이키델릭, 앤드로지너스, 로맨티시즘, 뉴 에이지 등등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한 각종 트렌드를 돌고 돌아서 마지막에 혜성처럼 등장하며 등장한 이후에는 다른 트렌드와는 달리 20년 이상을 탑 트렌드로 자리 잡습니다.
저도 나이를 먹으니 젊어서처럼 바지에 깃털도 달고 멀쩡한 티셔츠에 구멍을 내는 비"미니멀리즘" 의상을 입지 않게 됐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하면 이 통통함을 가리고 사람들 눈에도 안 뛸까, 수준에 이르게 됐지만, 그럼에도 이제 다시 돌아온 "미니멀리즘"을 보면서 왕년의 그 "미니멀리즘"일 수 있을까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패션 트렌드가 돌고 돈다는 것은 거의 정설이 된 지금, 만약 과거와 같은 트렌드가 돌도 돈다면, 미니멀리즘은 최소한 10년은 탑 트렌드가 될 것이고, 디자인에서 소재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시기에 일본의 디자이너들 다수가, 물론 원래도 유명하긴 했었는데, 탑 대열에 오르는데, 그게 그 유명한 요지 야마모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