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결이 다른 얘기겠으나, 집안 대대로 가업을 이끌어가는 전통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대를 이어 가업을 잇는 해당 자손은 사회적으로도 책임을 집니다. 가문의 부와 명예를 유지한다는 자체가 사실 사회적 책임이고 부담이겠고요. 한국도 과거에는 이런 경향이 남아 있어서, "뉘 집 자식이냐"는 질문은 자손의 행동에 따라 부모 얼굴에 먹칠을 한다는 뜻으로도 이어져서, 지금도 한국인에게 가장 모욕적인 혹은 혼쭐을 낼 때 사용하는 표현은, 해당 본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가문을 지칭하는 "니 어미, 니 애비"로 시작하는 말들입니다. 집안의 가업을 잇는 전통의 이면에는 가업을 잇는 자손에 대한 사회적인 압박도 존재한다는 거죠.
그런데 한국은 근대화와 식민지를 겪으면서 이렇게 집안의 가업을 잇는 전통이 급속도로 무너졌고 (여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으나 이는 너무 기니 일단 생략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신분을 쟁취할 수 있다는 혹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신분을 쟁취했다는 자격심이 더해지면서 성공 (혹은 신분 상승) 이후에 반드시 따라오는 사회적 책임이 상당 부분 사라지는 폐단이 발생했습니다.
물론 과거 신분제 사회 혹은 가업을 잇는 사회에서도 부모나 형제, 친지나 주변의 말 안 듣고 기생집 다니고 한량처럼 놀러 다니는 패륜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심지어 왕인 영조가 자신의 유일한 아들인 사도 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것처럼 (사도 세자가 실제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떠나서) 집안에서 가해지는 형벌이나 차별, 외면, 배제가 가혹했으며 살아남기 쉽지 않았습니다. 즉 가업이 있는 사회는 반드시 그에 따른 사회적 시선과 책임이 막중하며 이는 일본에서 여전히 보이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가업을 잇는 일본에서도 망나니들은 있고 그들 중 온갖 비난과 욕설에도 잘 사는 사람도 있긴 하나, 사회적 시선과 비판 자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한국은 성공 이후에 응당한 것으로 주어졌던 사회적 책임과 시선이 상당 부분 사라지면서, 성공만 하면 욕설하고 돈 뿌리고 다니고 온갖 망나니 짓을 해도 비난을 받지 않는 다소 불합리한 상황에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는 단지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고 많은 나라에서 성공에 대한 관점과 개념이 변화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기는 하나, 한국이 다소 위험할 정도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점에는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성공해서 돈을 오직 자신 만을 위해 물 쓰듯이 쓰는 것이 공개적인 미덕인 사회는 한국 외에 중국 정도가 있을까 싶긴 한데요. 인도도 좀 그런 사람도 있긴 한데 신분도 강하게 남아있는 터라.
다시 말해 어떻게든 성공만 하면 주어지는 대가가 끝없는 자유이고, 환락이고, 쾌락이다 보니, 막상 자신 위치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왜 나는 이렇게 고생만 하고 즐거운 일은 없을까 고뇌에 빠지는 거죠. 사실 성공에는 그만한 사회적 책임을 줘야 하는데 말입니다. 덕분에 오히려 성공한 사람들은 깊은 우울에 빠지고 약물에 빠지는 해괴한 상황에도 왔죠.
덧붙이자면 성공 이전에 뭐랄까 각성 이전이라고도 하겠는데 각종 기행이나 장난? 금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부처도 나무 밑에서 굶고 있었는데, 지금 시각에서 보자면 대통령 아들이 길에서 노숙하는 것처럼, 상당한 기행은 기행이고, 이후 행적으로서 해당 기행이 이해가 되는 거죠. 어찌 보면 왕이라는 가업을 잇지 않기 위한 피나는 저항일 수도 있겠는데.
이렇게 성공 이후 사회적 책임과 방황과는 구분할 필요는 있겠으나 어떻든 성공과 가업에 따른 사회적 책임이 현대로 오면서 다소 와해된 경향이 있는 것은 맞는 듯합니다. 이것도 어떤 면에서는 현대인들이 나름대로 새로운 성공의 방향을 시도하는 것일 수도 있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