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결과를 직접 경험해도 그 원인을 제거할 만큼 강하지 못합니다.
(미래 혹은 인간이 갈 길은 결국 결정돼 있다)는 결정론이라는 게 뭔가 대단히 비극적인 어떤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간단한 겁니다. 예를 들어 넥플릭스 드라마 <데브스>의 주인공 포리스트는 부인을 재촉하다 사고로 인한 죽음에 이르게 했고, 그로 인해 "아마도" 데브스라는 해괴한 회사를 만들죠. (여기서 "아마도"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개념보다는 시기 자체에 대한 것으로 이해하는 게 나을 겁니다.) 만약 그날 사고가 일어날 것을 알고 포리스트가 이를 막아 부인이 사고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포리스트는 자신의 재촉하는 성격 때문에 부인이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할 확률이 큽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큰 일을 겪었을 때라야 자기가 한 모든 행동들을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게 되거든요. 즉 부인이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에 스스로의 재촉하는 세세한 모습까지도 상기하게 되는 겁니다. 도대체 왜 부인이 사고를 당해야만 했는지를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아주 미세한 원인까지 다 더듬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포리스트는 그 사건이 지나가서 부인을 살린 이후에 과연 부인에게 재촉하는 자신의 성격 (그러니까 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원인)을 바꾸게 될까요?
백 번 양보해서 자신의 재촉하는 성격으로 인하여 부인이 사고를 당할 것이라고 설사 인지를 하게 되더라도 (이 자체도 사실 불가능하지만 만약 가능하다고 하면), 부인이 죽음에 이르는 실체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그 재촉하는 성격으로 인하여 당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과 같은, 죽음에 이르는, 똑같은 사고가 또다시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할 수가 없죠. 즉 시기적인, 그리고 양상적인 차이일 뿐이지 원인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결정적) 결과는 필연적인 겁니다.
즉 어떤 특정 결과가 발생할 것을 알고 이를 막연히 막아낸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에 이르는 모든 원인을 제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가 발생하는 그 자체를 막을 수가 없는 겁니다. 단지 이 결과를 피해서 어떤 다른 결과를 불러온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에 이르는 원인이 존재하는 한에는 원인이 불러올 결과를 막을 수가 없고, 이 정도에서 결정론이 나온다고 저는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을 계속 굶기면 결국 죽겠죠. 과연 며칠 안에 죽을 것인가, 며칠 더 살 것인가, 혹은 스스로를 먹을 정도로 정신이 이상해질 것인가, 어떤가, 여러 갈래가 일시적으로 퍼지기야 하겠지만 (이거를 인간 역사에서 보면 전쟁이 오늘 날 것인가, 일 년 뒤에 날 것인가 이 정도로 간격이 벌어지겠지만) 결과는 죽음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요? 굶긴다는 원인을 제거해야만 가능합니다.
문제는 인간의 삶이 굶겨서 죽는다, 정도로 간단하지 않다는 것에 있고, (다시 말해 실체적인 원인 파악 자체가 대단히 힘들다는 것이고) 또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에 이르고 스스로의 존재가 소멸될 정도의 극한의 고통과 공포를 느끼지 않으면, 아무리 말을 해도 인간은 어떤 결과가 발생할 것을 아무리 알아도, 원인을 스스로 제거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심지어 고통과 공포를 느껴도 원인을 바꾸지 않는 경우도 많죠. 이렇게 말씀드리면 좀 이상할 거 같긴 한데, 제가 몇 번 그리로 가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고 말씀을 드려본 분들이 있는데 결국엔 다 그 결과로 갔습니다. 결과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원인을 못 보는 분들도 너무 많지만, 그나마 결과에 이르러서 미세하나마 어떤 원인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또 인간의 참담하면서도 아름다운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가끔 생각하면 결과를 막는 것보다 원인을 막는(?) 게 훨씬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소 모호한 표현들이 상주하므로 걸러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저도 상당 부분 걸러서 적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