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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적 관찰로서 진단되는 정신병이라도 병입니다

정신병은 병원을 가기보다 인간적으로 위로받아야 할 병이라는 의견

by 이이진

우울증도 그렇고, 정신병의 경우 일반 다른 질환에 비해 임상적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로서는 뇌를 어떻게 촬영해서 (암처럼 조직을 잘라내거나 코로나처럼 특정 바이러스를 검출하는 방식으로) 진단하는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조현병과 조울증 모두 사고의 비약이 나타나기 때문에 단순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고, 따라서 임상적이고 지속적인 관찰과 상담을 통해서 진단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조현병과 조울증은 병의 진행 방향이 다소 다름에도 불구하고 처방해 주는 약은 거의 비슷합니다. 조현병 약이라고 돼있지만 조울증에 사용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불안장애 이런 약들도 조현병이나 조울증에 모두 처방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신병의 경우 과연 약물로서 치료를 하는 게 효과적이냐는 의문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 사실이고, 실제로 약물 처방과 정신과 상담 이후 증세가 더 악화가 됐다는 분들도 존재합니다.


저 같은 경우 조울 증세를 동반한 조현병 증세가 있어 심한 경우 일주일 이상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극도의 긴장 상태가 찾아왔었고 결국 수면제를 처방받지 않고는 정상적인 수면을 취할 수 없는 상황까지도 왔었습니다. 정상적인 수면을 이룰 수 없다 보니 정신이 무너지는 것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각종 면역 이상 증세가 왔으며, 대표적으로 각종 원인 불명의 피부 질환, 천식, 건선, 강직성 척추염 등이 발병했습니다. 수면제를 처방받고 강제로라도 잠을 자게 된 이후 5년 정도가 지난 지금에서야 극심한 통증도 많이 완화가 됐고요.


따라서 저로서는 수면제를 비롯하여 각종 정신과 약을 복용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당시 자살을 했거나 (여기에 적을 수는 없으나 여러 위험한 상태가 있었습니다) 심각한 신체 질환에 의하여 현재 수준 정도로도 생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만약 정신 질환으로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일단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어떻게든 정상 생활을 유지할 것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곁에 누가 있어주는 것으로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이 완화되고 극복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만, 아직도 한국 사회는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을 병원에서 상담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많기 때문에, 저는 너무 힘이 들면 굳이 안고 가지 말고 정신과 상담을 받아 약을 복용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다만 수면제를 비롯해 잠에 강제로 드는 기전에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 반대로 스스로 잠에 드는 기전이 일부 훼손이 되면서, 이를 회복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보면 1년 정도 수면제를 끊는 고통은 있긴 했습니다. 약물을 끊는 고통도 신체적 질병 이상으로 고통스럽더군요.


게다가 우울증이든 조현병이든 정신병이 발병하면 본인도 괴롭지만 주변도 이해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같이 시간을 보내주는 자체가 고통이 됩니다. 오히려 주변에서 나한테 이러지 말고 차라리 병원을 가라고 말을 할 정도가 되거든요. 그 정도쯤 되니까 스스로 정신병원도 가는 거지, 누군가와 대화를 조곤조곤 나누는 상황에서의 정신과 방문은 쉽지 않습니다.


저도 현대 의학이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 여전히 이슈가 될 부분이 있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지만, 정신병은 마치 병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거나 심리적으로 (인간적으로) 위로받을 병이라는 관점에도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살다 보면 가끔 뇌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일 때를 만날 수가 있는데 (예를 들어 특정인을 보면 이유 없이 싫거나 어떤 상황에 닥쳤을 때 터무니없는 결정을 하는 등의) 그 상태가 반영구적으로 지속되는 경험을 하고 나면, 이거는 인간적으로 위로받을 문제가 아니라 뇌가 뭔가 이상하다, 이런 느낌적인 느낌이 팍팍 오거든요. 뭐랄까, 뇌가 나를 떠났구나, 이런 느낌입니다. 다시 이성이 돌아와서 당시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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