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지내면서 제 자신의 날것 모습을 봅니다

by 이이진


오랫동안 같이 살던 동료 선배와 이제 각자 갈 길을 가기로 하고 제가 혼자 살게 되면서,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긴 합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항상 의식을 한다는 것이라, 누군가가 항상 없고 보니, 제가 날 것 그대로의 저를 마주하게 되는 거죠. 원래 좀 우울하기도 하고, 원래 좀 불면증도 있고, 원래 좀 감정 기복도 있고, 기억도 좀 문제가 있고, 원래 좀 일을 몰아서 하는 타입이긴 합니다만, 혼자 있고 부터는 이런 성향이 강해졌달까요.


우울한 것도 폐쇄병동에 가야 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극도로 우울하고, 일도 극도로 밀려서 하고, 불면증도 극도로 있다가 극도로 너무 잠이 쏟아져서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을 정도가 되고, 그런데, 이런 모습의 저를 그 동안 억압했다는 생각에서, 일단은 이 상태 그대로를 두고 있다고 하면 변명 아닌 변명이 될 거 같습니다만, 정말 이런 상태입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아산 병원 예약이 있었는데, 날짜도 제대로 기억하기가 상당히 힘들었고, 병원 예약 시간이 4시 30분이였는데, 그 시간에 강남에 있으면서 느긋하게 버스를 타는 바람에 병원에 도착할 셔틀 버스를 놓쳐 택시를 타고 도착한 뒤 병원 진료실 불이 꺼진 상태를 맞이했더랬습니다. 원래 대형 병원은 1시간을 일찍 가는 게 통상인데, 되레 1시간을 늦게 간 거죠.


제가 터무니없이 1시간이나 진료 시간에 늦어서 진료를 못 본 걸 알고서 간호사가 다음 주로 예약을 다시 잡아주긴 했습니다만, 태어나서 병원 예약을 놓쳐보긴 처음이었고, 요즘 이렇게 저도 모르는 저의 본 모습을 발견하며 놀라고 있고, 그 와중에 호르몬 이상 증세로 7kg 가까이 살까지 찌자, 참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밤입니다.


제가 이상 증세를 겪는 호르몬은 여성이 출산 후 24시간 내로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말 그대로 드라마틱하게 급감하며 바로 신체에서 대신 분비하는 호르몬으로, 이 호르몬이 분비되는 3 ~ 6개월 동안에는 추가 임신을 막기 위해 불임이 진행되고, 단백질 보다는 지방 합성이 수월하게 일어나나 모유 수유를 하면서 적절히 소모를 하는데, 저처럼 결혼도 안 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니, 참으로 당황스럽고, 살이 찌니 더 당황스럽습니다.


일전에 제가 아는 어떤 여성분도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살이 너무 찐다고 했었고, 저도 정신과 약을 먹은 초기에 겪은 증세이긴 하나, 정신과 약을 먹은지가 5년이 넘는데 이제 와서 이런 부작용을 겪는 건 아닌 거 같아, 해당 호르몬에 관여하는 뇌를 찍어보려고 하는데, 드디어 서울대에서 그나마 취소 자리가 나와서 바로 찍을 수가 있게 됐네요.


여성들이 출산 직후부터 6개월 가까이 산후 우울증에 빠지는 것은 임신 중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라는 여성 호르몬에 상당히 노출돼있다가 출산 직후 말 그대로 놀라운 속도로 해당 호르몬이 급감하며 (5000, 3000에서 100 수준이라던가, 아마 그럴 것임) 정신적 패닉이 오기 때문이며, 이 기간 동안 아이를 돌보면서 옥시토신이라는 또 다른 호르몬이 나와 정신적 안정을 찾게 되나, 아이와의 유대감 형성이 어려울 경우 정신적 패닉이 오래 갈 수 있음을, 제가 이런 증세에 시달리기 전부터 글로 올린 적이 있었죠.


여하튼, 출산을 통한 해당 호르몬의 증가는 아이와의 유대감 형성을 돕고 원활한 모성 활동에 유효하나, 저처럼 아무런 이유 없는 해당 호르몬의 증가는 아무리 출산 예정이 없다고는 하나 불임을 초래하고, 뼈를 약화시키며, 지방을 증가시키고, 무엇보다 뇌에 종양일 경우 뇌에 압박을 가해 복시와 같은 시력 이상을 초래합니다.


즉, 본래 나와야 할 호르몬이 나오는 거라면 출산 후 신체 회복을 돕고 아이와의 유대를 형성하는 등 건강한 것이지만, 나오면 안 될 호르몬이 나오는 건 신체 기형을 초래해, 역시 바로 살이 엄청나게 찌고 있습니다. 물론 혼자 지내면서 폭식을 한 적은 있지만, 그 정도 폭식으로 몇 달 안에 7kg 이상 살이 찌는 건 비정상이죠.


서울대병원에서 정신과 약을 끊고 검사를 하자고 하는 바람에 불면증에 시달리며 새벽 3시라는 이 시간에 너무나 멀쩡한 정신 상태로 있는데, 오늘 오후에는 환경연합(?)에서 발표회를 한다고해서 미리 예약을 한 터라, 안 갈 수도 없고 해서 억지로라도 누워보겠다고 했는데, 역시 억지로 눕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없어, 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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