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잘 살아남았으면 언니는 자기 잘못을 모릅니다.
만약 동생이 언니의 횡포로 인해서 공부도 못 하고 인간관계도 못 맺고, 결혼은커녕 취업조차 못 할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면 오히려 부모는 약한 동생의 편을 들었을 겁니다. 동생 입장에서는 언니가 너무 못 됐을 뿐만 아니라 부모까지도 언니의 편을 들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했겠으나, 이 점이 부모나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는 언니가 다소 이기적이긴 하지만 어떻든 동생은 잘 살아갔으니 그 탓이 커보이지가 않는 거죠.
오히려 부모나 주변 사람들은 동생이 언니한테 양보할 줄도 모르고 자기 잘난 맛에 자기 성공 가도만 달린다면서 반대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결혼할 때 되니까 결국 언니를 무시한다면서 섭섭해 할 수도 있는 거죠. 인간관계라는 게 열심히 살았다고 해서 무조건 존중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살아서 동정받는 것도 아닌, 대단히 복잡한 구조로 돼있어서 그렇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범죄 피해자들이 정신병원도 가고 진단서도 제출하고 일도 그만두고 이러는 게, 피해자도 빨리 극복하고 자기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법원이나 수사 기관에 억울함을 호소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절차를 밟아서 입증을 해야 하기 때문이며, 만약 누군가 엄청난 피해를 입고도 아무 피해 없이 바로 일상을 산다면 가해자는 반드시 <저 봐라, 내가 준 피해가 전혀 없다>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심지어 주변에서도 <별 일이 아니구나> 이렇게 넘길 수가 있는 거죠. 따라서 언니가 아무리 횡포를 부렸더라도 동생이 자기 갈 길을 잘 갔기 때문에 가족들은 그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사람이라는 게 눈앞에서 피해가 확인돼야 죄의식이나 가책감도 들게 마련인데 그런 게 전혀 없으니까요.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많아서, 입양 보낸 자식이나, 버리거나, 학대한 자식이 심지어 나중에 성공하면 부모가 뒤늦게 찾아와서 <내가 그렇게 했어도 결국 잘 살아냈으니 내 책임은 없는 거 아니냐> 혹은 <내가 진짜 잘못했다면 저 아이가 저렇게 잘 자랄 수가 있겠느냐>면서 부모 노릇을 하려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며, 따라서 동생이 진짜로 언니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면 지금부터는 그 뱡향을 달리 해야만 앞으로의 문제가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즉 언니가 아프게 하면 고함 지르고 분노 터뜨리고 섭섭해하고 그래야 되는 겁니다. 동생은 언니가 못되게 굴면서도 가족의 지지까지 받기 때문에 본인의 감정을 억누르고 그런 갈등 자체가 수치스러워서 일이나 주변 성공으로 자꾸 도피하게 되는 성향이 생기기가 쉬운데, 인간 삶이라는 게 늘 성공과 안정만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삶에서 어려운 순간이 오면 반드시 언니와 가족을 원망하는 때가 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됐을 때 터진 쌓이고 쌓인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으며, 상당히 심각하게 발동이 되고, 생각보다 이런 깊은 갈등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명절에 나이 지긋한 사람들도 가족 간 난투극이 발동하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닌 겁니다. 이 정도 하면 그만하겠지, 그만하겠지, 참고 참다가 터져 나오는 거죠.
<마에스트라>라고 그 드라마에서도 보면, 지휘자 차세음이야말로 유전병의 고통이나 각종 고통에도 불구하고 극단에 피해주지 않기 위해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만 하지만, 단원들 중 차세음을 인정하는 단원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유전병의 공포로 무너져 내리고 결국 단원들에게 의지하게 되면서부터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해를 하죠. 그 무너짐도 영구적인 것도 아니고 결국 차세음이 극단을 떠나기는 합니다만.
동생이 잘못해서 가족이나 언니가 횡포를 부리는 게 아니라, 동생이 언니나 가족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언니와 가족의 횡포가 정당화되는 겁니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고 그런 것에 가치를 두는 인간들도 있지만, 서로 엉겨서 사는 것이 위안이 되는 인간들도 있기 마련이거든요. 저도 이런 건 잘 안되긴 합니다만, 이런 경향은 보이긴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