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날과의 사투 2 - 자작소설

by 이이진

진부한 날과의 사투 2


힘 없이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내 발목에 뭔가가 툭 하고 걸렸다. 등이 굽은 채로 차가운 눈빛을 띈 채 구걸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손등이었다. 할아버지의 시선이 내 손에 든 오천 원에 멈춰있었다. 나는 시선을 맞추기 위해 몸을 굽혔다.


“이거 제 전 재산인데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떨구며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


“도와줄 만한 친구도 없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지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전 구걸은 할 수 없거든요.”


“그건 그렇지. 젊으니께.”


가늘었다가 굵어지는 쉰 목소리로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나는 싱긋 웃었다. 구걸은 할 수 없다. 그 다음엔 나의 내면 어딘가에서 반짝이는 소리가 들렸다. 왜 구걸을 할 수 없는 걸까, 나는.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기에?


할아버지의 돈 통에 오천 원을 밀어 넣었다. 눈치를 보던 할아버지는 내가 도로 가져갈까 두려웠는지 급하게 돈을 집었다.


한 숨을 쉰 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구걸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고개를 바닥으로 숙였다.


나는 동정을 구해, 그 안에서 돈이 나오기를 바래.


힐끔 나를 돌아본 할아버지가 자리를 털더니 굽은 등을 일으켜 세웠다. 그도 나를 동정 해 줄 수는 있지만 돈은 주지 않는다. 한 쪽 굽이 닳아 없어진 할아버지의 신발이 차갑게 물 바람을 일으켰다. 동정 대신 돈을 준 나를 원망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리에 엎드리자 수많은 타인들의 시선이 내 등 위로 교차되기 시작했다. 핑크색의 부드러운 니트를 입고 있는, 이것 밖에 외출복이랄 게 없어서 입고 있는 나를 그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춰 드러나지 않게 비난하는 게 느껴졌다. 시선에 담겨 있는 건 동정이 아니었다.


더 이상 어떻게 나의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차가운 시선들. 동정을 느끼게 한 대가로 돈을 원하는 내가 억지를 부리는 거라는 차가운 인식. 구걸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타인들은 내가 실제로 처한 상황에 닿으려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시간은 항상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깨닫게 한다. 미래가 현재로 변해도 그 때쯤 내가 무엇을 깨달을지 과거가 될 현재의 나는 알 수 없기에 시간의 흐름은 때론 고통이 되기도 한다.


동정이 돈으로 변하기를 바랬건만 나의 기대는 멸시와 무시로 이어져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된 비참함.


내가 하는 행위가 만드는 세상과의 불협화음.


이것은 시간의 실수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이 저지른 실수다. 이 틀을 벗어나야 예상할 수 없는 미래가 와도 당황이라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을 텐데. 그것조차 시간이 지나야만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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