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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어떻게 캐릭터로 사업을 일구는가

한국 영화와 일본 영화의 차이

by 이이진

개인적으로 일본은 상당한 캐릭터 연구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귀멸의 칼날>을 보면 주인공은 가족을 모두 오니(요괴?)에게 잃고 오니가 된 유일한 생존자인 여동생을 다시 인간으로 돌리기 위해 오니를 섬멸하는 귀멸대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귀멸대에서 각종 경험을 하면서 성장하게 되는데, 그 성장 경험에서 주인공의 가치관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즉 주인공은 오니라고 할지라도 오니가 되기 전 인간으로서의 삶이 그들에게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었는가에 대한 관점을 유지하면서 막연히 가족을 살해한 오니 대표(?)를 복수하려고 하지 않으며 슬픔에 목 놓아 웁니다. 주인공의 (가치관이) 만들어내는 방향이 바로 극의 방향이 됩니다. 즉 캐릭터와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상황이 주제가 된다고 보이죠.


반면에 한국의 영화들은 상황이 만들어내는 캐릭터의 등장에 중심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우성 배우가 맡았던 배역은 원래 충직하기는 하나 그 충직함이 드러나는 상황은 쿠데타와 같은 아주 극적인 상황입니다. 즉 한국은 인간이 극적인 상황에 직면하여 드러나게 되는 본성을 캐릭터로 삼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서울의 봄에서의 정우성도 가족과 함께 하는 장면에서는 개성을 전혀 볼 수 없게 표면적으로 그려져서 부인 앞에서 갑자기 두려워서 운다거나 하는 식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하지 않고 기계적인 남편의 모습) 그로 인해 캐릭터가 다소 밋밋하거나 지나치게 상식적인 면이 있습니다.


<시민 덕희>도 예고편을 보면 주인공 여성이 보이스 피싱 범죄자를 잡으러 중국까지 가는 건데, 극한 상황 설정에 또 용감한 좋은 시민상이 그려질 것이라고 예상이 되고요. <올빼미>도 충직한 신하가 왕자의 죽음이라는 극적인 상황에서 그 충직함을 드러내는 내용이었죠. <노량>도 이순신 얘기이기는 하나, 결국 전장을 마주한 죽음 앞에서도 충직한 인간으로 다뤄졌을 뿐 인간 캐릭터로서의 이순신은 볼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에 의해 아들이 죽자 복수를 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설정이 국가를 위한 희생으로만 묘사되는 기존 이순신에 대한 다소 인간적인 인간적인 묘사라고 할 수 있겠으나, 캐릭터 자체로서는 개성은 사실 없죠. ^^;;;;;;;;


일본이 캐릭터에 정성을 들이다 보니 극의 흐름이 다소 뜬금없거나 도대체 하고자 하는 말이 뭐냐는 황당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 반면 혹은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 장르보다 다소 현실을 배제한 듯한 애니메이션이 인기인 반면, 한국이 극적인 상황에 다소 집중하다 보니 그 안에서 발현하는 인간의 군상은 거의 비슷해 보이고 (베테랑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영화에서 권력자의 비리를 숨기려 아등바등하는 캐릭터들은 너무 빈번히 나오고) 결국 바람직한 인간상을 보여주는 것에 전착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극적인 상황이 되면 인간이 결국 거의 엇비슷한 모습일 수밖에 없는 건데, 그거에 너무 집중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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