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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는 성공의 대전제를 부셔서죠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한 전제로 성실과 인내를 꼽습니다만, 천재는 아니니까

by 이이진

고3일 때였는데, 그때는 제가 활발하게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고 3 때는 공부를 좀 했으나 그 이전에는 공부를 그다지 하지 않는 소위 말해 노는 학생이라) 반 배정을 받고 나니 주변에 심어둔(?) 애들로부터 소식이 하나씩 전해오더군요.


저희 반에 소위 말해 꼴통으로 공부 잘하는 애가 하나 갈 텐데 주의 깊게 봐달라 (혹시 까불면 손 좀 봐달라고 하면 좀 뭔가 이상한데 여하튼), 뭐 이런 취지였습니다. 아는 학생들은 알 텐데, 학교도 나름 서열과 위계가 있어서, 서열이 높아지면 애들이 와서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고 서열이 있으면 그걸 좀 해결해 줘야 되거든요.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는데.


학기가 시작하고 반장 선거를 하는데, 그 애가 워낙에 공부를 잘하니 역시 반장 후보가 됐고 일종의 후보 연설을 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그런데 그 애는 굉장히 특이한 발언을 하게 되죠. 사람은 다 꿈이 있고 자기는 그 꿈이 판사가 되는 건데, 그러자면 자기는 법대를 가야 하고 법대를 가려면 지금 성적을 더 끌어올려야 되는데, 그거 하기에도 벅차서 반장은 할 생각이 없다, 이런 취지였습니다.


반장으로 뽑아주기는커녕 뒤에서 아이들이 성격이 못 됐다는 취지로 욕을 하고 있는데, 스스로 반장을 할 생각이 없다면서 그러기에는 자기 꿈을 희생해야 된다고 하니, 애들은 기가 막혀했고 결국 반장은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저는 또 신기하게 그 애가 저와 앞뒤 번호로 가깝다 보니, 반장 후보 연설을 하고 난 이후에 그 애와 도리어 친해져서(?) 나중에 대학을 가고 나서도 그 애가 편지를 주고 그랬었고요. (제 나이 때는 편지 주고받는 사이)


학기를 시작하기 전 전해 들은 말로는 그 애는 성격이 못 됐고 이기적이고 잘난 척이 심하며 심지어 성격 이상자라고도 했는데, 막상 대화를 해보니, 아버지가 법 관련 공무원이었고 자기는 아버지를 너무 존경하기 때문에 판사가 돼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엔 그냥 그 애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기 꿈이 확실한 성격이라는 것이었고 때문에 이후 저는 그 애와 그럭저럭 지냈습니다.


제가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제가 그때도 느낀 것이지만, 누군가가 자기보다 뛰어난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결코 순탄치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많은 애들이 와서 하나같이 그 공부 잘하는 애를 실체와는 무관하게 온갖 욕을 하고 했던 거죠. 그 애들 중에는 소위 말해 성실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애들도 제법 있었는데, 이걸로 봐도, 스스로가 성실하고 도덕적이며 옳게 살아왔다는 등 자신 삶에 자만하거나 반대로 순응적으로 살아왔다 보는 사람일수록 그렇게 하지 않고 성공하거나 뛰어난 사람을 받아들이는 걸 아주 힘들어하더군요.


강사가 말씀하신 내용에서 언급한 학생의 경우를 보면, 수업 시간에는 당연히 수업을 열심히 들어야죠, 그런데 이런 당연한 걸 하지 않고 수업시간마다 졸면서도 그 애는 성적이 잘 나오니 그게 용납이 안 됐던 겁니다. 아무리 뛰어나도 성공을 위한 정석 코스인 성실함을 갖추지 않는다면 결국엔 망한다는 그 진리를 훼손할 경우, 자신의 가치관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죠.


머리가 좋은 걸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다른 사람을 위할 줄 아는 위대한 사람이 성공해야 한다>는 자신의 삶을 이끄는 중대한 가치관을 그 학생이 흔들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겁니다. 그나마 그 학생 아버지가 알고 보니 위대한 학자더라 무슨 이론을 창시했다더라 하면 그나마 유전의 힘이구나 할 텐데, 그렇지도 않으면 받아들이기는 더 어려워지죠. 유전의 힘도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만.


결국 그 머리가 좋고 뛰어난 학생이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이후, 사법시험에 10차례나 떨어지는 걸 보고서야, <역시 인간은 성실해야 성공한다>는 그 절대 진리는 변하지 않는구나, 안심을 하는 겁니다. 그 학생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 수많은 의혹과 의구심에 찬 시선들을 견뎌내는 그 고루하고 지루하며 고통스러운 과정은 당연히 그 사람 밖에서 왈가왈부하는 사람들 시선에는 존재하지 않죠. 제 고3시절 반장 후보였던 그 애 하고 저처럼 진중하게 대화를 해 본 애도 거의 없을 겁니다. 그냥 피상적으로 대화하고 주워들은 얘기로 평가하고 싫어하는 그 감정이 당연하다고 스스로 인지하고야 말겠죠.


저는 공부를 잘하지는 못 해서 대학을 들어간 게 기적일 정도로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왈가왈부할 정도로) 문제아로 산 시기가 있긴 합니다만, 그 시기에 온갖 인간 군상을 접해보고 이제는 별로 인간 (군상)에 대한 집착도 없고 그렇다 보니, 이런 내용을 들으면 고등학생 때 그 애가 생각나곤 합니다. 그 애는 제가 알기론 판사가 못 됐다고 하는데, 결국 주변의 그 야멸찬 시선을 떨쳐내지 못하고 주저앉은 게 아닐까 합니다. 어떻든 그 애가 다소 도전적으로 행동하는 면이 있기는 했으니까요.


사람을 돕고 성실히 살고 착하면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이 어떻게 돼야 한다는 자체도 이제는 좀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뭔가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필요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만, 이렇게 말해봐야, <지 허물 덮으려고 저러는 거 아니냐>, <지 문제아 시절 두둔하는 거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그 생각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건 자신의 가치관을 흔들기 때문에) 쉽지 않은 문제라고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 성공해야 한다>를 확장하면 자녀는 자녀다와야 하고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며 국가는 국가다워야 한다는 관점으로 이어지는데 (이거 유교 스멜이죠), 한국은 이게 좀 심한 국가라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걸 너무 힘들어하죠. 그러니 스스로에 대한 기준도 높고 남에게도 높은 기준을 제시하는데, 이렇게 살면 인생이 참 감시의 연속으로 고달픕니다. 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안달이 생기거든요. 그냥 조금 내려놓을 때도 됐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김에 제가 왜 문제아가 됐냐 변명을 좀 하자면,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부반장도 하고 중학교 1학년까지는 책 읽는 거 좋아하고 공부도 좀 하고 그랬는데, 제가 무려 잘난 척을 너무 한다면서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갈 정도로 왕따를 당했다는 겁니다. 제 성격이 무난하지 않은 것으로 저도 기억하고 공부 좋아하는 시늉도 곧잘 내곤 했으니 아마 불편한 부분은 있었을 것으로 생각은 되고요. 그래서 이 상태로 공부만 잘해봐야 왕따가 결론인데, 그럴 거면 인간을 좀 알아야겠다 생각해서, 그때부터 공부 대신 친구 사귀는 걸 인생 목표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관찰을 하니, 친구가 많은 것만으로는 안 되고 집단을 이루고 군집 활동을 해야 하는 걸 알게 돼 문제아 집단에 들어간 거고요. 후회가 되는 면도 조금 있는데 인간을 몰랐더라면 지금은 더 지옥일 거 같아서 쌤쌤이다 이렇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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