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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 과연 성실함, 한 방향으로 놓인 게 맞을까

수재로 불리던 학생이 사시에 10번을 떨어지는 경우

by 이이진

이전 글에 또 길게 덧붙이자면, 수업시간에 졸면서도 서울대 법대를 간 동기가 사시에 내리 10번을 떨어지는 것과 달리, 진짜 엉덩이 힘으로 서울대 법대를 가서 바로 사시에 패스하여 김앤장 변호사가 되는 것도 의미 있는 삶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김앤장 변호사는 국내 로펌 중 가장 많은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 봐야 1,000명의 소위 말하는 뛰어난 변호사 중 한 명일 뿐이죠. 결국 그 안에서 또 첨예한 갈등과 승부가 존재할 거고, 이 갈등과 경쟁을 멈출 수가 없어서 한국이 끔찍한 경쟁 사회가 된 거고요.


그러나 박준영 변호사라고 재심 전문 변호사가 있는데 이 분도 꽤 굴곡 있는 삶을 살아오시다가 변호사가 돼서 (서울대 법대도 아니고 지방대일 겁니다만) 재심만 전문적으로 하는 분이 계십니다. 국선 변호사를 선임하는 범죄자는 통상 가난하나 중범죄를 진 자들이 많은데, 이 분이 국선전문 변호사를 하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가난한 중범죄자들의 삶을 보게 되면서 재심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죠. 재심은 김앤장 변호사들도 쉽게 도전하기 어려울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이 분은 꽤 여러 건을 성사시켰고 아마도 김앤장 변호사 중 한 명들보다 유명하고 일반 대중들의 지지를 받을 겁니다. 돈을 더 잘 버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름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거죠.


법 관련해서 비영리 활동이라도 해보는 분들은 김앤장이 지나치게 돈 관련 문제에만 관여하고 (기업 M&A 전문) 대기업과 같은 돈 있는 사람들의 변호만 맡으면서 변호사의 기본 책무인 인권 보호에 나서지 않는다고 비판을 하는 반면 박준영 변호사는 구설이 영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런 분들도 사석에서 서로 자기가 키웠다면서 비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어떻든 변호사의 기본 책무인 인권 보호에는 나름 앞장서고 있습니다. 오히려 국선을 하면서, 가난한데 억울한 사람들의 삶을 직접 봄으로 인한 경험이 이 변호사를 성장시켰다고 봐야죠. 그리고 누구나 아는 앰네스티 인권 단체도 영국의 한 변호사의 움직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변호사로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인권 단체 구조를 만든 거죠.


박준영 변호사를 보더라도 서울대 법대를 나와서 김앤장에 들어가지 않고 청년 시절 방황 좀 하다가 지방대를 나와서 국선을 하면서 오히려 일반 사람들이 다 혐오하는 가난한 데 범죄까지 저지르는 악질(?)들을 상대하다 보니 새로운 시야가 트이는 건데, 한국은 청소년기나 청년 초반 혹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의 성실함과 간판을 너무 높게 평가하다 보니, 청소년이나 청년에게만 사실상 허용되는 방황이나 실패에 대해서 너무 가혹하게 폄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청소년기에는 엉덩이가 곪아 터질 정도로 공부만 해서 서울대 좋은 과를 가야만 하고, 그리고 거기 들어가서도 엉덩이가 썩을 정도로 공부만 해서 각종 고시에 합격하고, 그리고 또 공무원이 돼서도 인정을 받아 빨리 승진해야 하고, 등등 끝이 없는 경쟁입니다. 그리고 놀고 싶거나 연애도 하거나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등의 각종 본성을 성공 과정에서 내내 억압하다 보니 성공하고 나서도 막상 이게 뭔지 허무함이 찾아들면서, 내가 이걸 하자고 그렇게 죽도록 고생했나 싶어 지면서 자살들도 많이 하는 거고요.


한국이 이러한 신분 상승의 욕구로서 지금의 한국이 되긴 했으나 한국이 성장하는 사이 세상은 다양한 가치관을 포용하는 사회로 변하거나 지향하게 되었고, 따라서 한국도 이 변화를 받아들이자면 당연히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함에도 여전히 성실함에 대한 강요가 지나치죠.


동영상 속 강사의 동기가 공부를 날고 기듯이 하다가 결국 성실함이 부족하여 사시를 10번이나 떨어지고 지금 어떤 변호사 혹은 법률 관련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우등생처럼 사시에 바로 패스해 꼭 김앤장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자신의 그 경험을 바탕 삼아 방황하는 다른 사람들이나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가치 있는 겁니다. 오히려 그런 실패를 했기 때문에 삶에 대해 유연하고 다른 시각을 갖는다면 그것 자체로 주변에서 인정을 해줘야죠.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회를 독재 사회, 획일 사회라고 한다면 다양한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각자 성공하고 누리는 것을 다양성 사회라고 하며 이걸 지금은 지향합니다.


한국이 서울대를 철폐하자면서 학벌 자체에 대해서는 그나마 비판적인 시각을 갖기는 했는데, 성실함이나 인성 같은 사실은 측정할 수 없는 주관적 기준을 여전히 잣대로 들이대는 시각이 너무 강합니다. 보면,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인성 타령을 하더라고요.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딱히 뭐라고 할 수 없는 그 기준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것도 따지고 보면 본인이 스스로를 성실하고 남에게 희생하며 착하게 살아왔다고 하는 자만의 일종이라서, 그렇게 안 살았다고 자의적으로 판단되는 사람을 비방하는 행위라는 자각이 없는 거죠.


또 한 예로, 뉴턴도 누워서 사과나무 보다가 <왜 사과가 한 방향으로 떨어지지?> 생각하면서 만유인력을 발견한 건 너무 유명한 일화로서, 오히려 세상이 한 방향으로 가는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그 접근법 자체가 지금은 필요하기 때문에, 굳이 모든 청년이 한 방향으로 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실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방황하고 좌절하고 고뇌하고 고민하더라도 다시 사회로 돌아왔을 때 밖에서 본 사회가 어떤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저는 더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너무 그렇게 성실함이 모든 성공의 기준이라는 내용은 저로서는 청년들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되더군요.


다만 본인이 방황하고 고뇌할 때 엉덩이가 터지도록 공부하여 성실히 성공 가도를 달리는 사람을 보고 박탈감을 느끼지 않은 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할 만한 의지를 갖는 것은 방황하는 본인이 책임질 부분인 점은 말씀드리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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