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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진 Jun 06. 2024

왜 정의당은 30년 전과 같을까

심상정 의원이 봉제 공장에 간 것처럼 라이더가 된 부대표

https://premium.sbs.co.kr/article/W-9NhY-882X?utm_source=premiumwebpush&fbclid=IwZXh0bgNhZW0CMTEAAR1hGpPqjLGpO7VISqgmLO19GKTZTj0f99vbrSbwPQNTL s8yCna1WX-IwQE_aem_AQjMYetmT1aEEAPsttOJFbmhzQc_3sedekks75LT-gzu _CaMdSA-8WIjDgg7erXJJha_SzWqFjoF8OIwy7Zn26NI


심상정 정의당 전 대표가 청년 시절 봉제 공장에 위장 취업하면서까지 노동 현실을 알리고자 했던 것처럼, 이번 기사에 나온 이기중 전 부대표도 정치를 내려놓고 다시 노무사 겸 라이더로 돌아갔습니다. 심상정 전 의원이 봉제 공장에 취업한 것과 같이 전 부대표는 왜 정치를 그만두고 라이더가 됐을까. 또 자신이 라이더가 된 게 별 의미가 없다면 굳이 노무사라는 직업에 더하여 이를 언급할 필요는 없으므로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게 하는 걸까. 직업이나 특정 조건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는 않지만 그런 걸로 판단받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을 해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리겠고요. 


이미 기사에서 전 부대표 스스로가 토로를 했지만 이렇게 정의당은 진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도 심상정 의원이 정치에 뛰어들려고 했던 아마도 30년 전의 사고방식에서 나아진 면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정치판에 강자들이 득세하고 돈과 세력이 있는 자들이 휘두르니까 상대적 약자인 사람들을 대변해 달라는 국민적 요구는 따라서 이렇게 번번이 진보 계열 정치인들의 판에 박힌 행보에 좌절되고, 그들은 또 매번 석고대죄하는 마음을 보인다는 취지로, 보다 날카롭게 사회를 비판하고 약자를 대변하기보다는 스스로 약자가 되는 위치로 전락해 버리는 거죠. 


표면적으로는 정치인이었던 자신이 권력과 명성 등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처음부터 낮은 자세로 시작한다는 스탠스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냥 국민이 줬던 권력을 딱히 책임지지 않고, 이러니 저러니 쓸리기만 하다가, 결국 사회적 약자로 내려가서 비판을 거부하는 거라고 보입니다. 내가 이렇게 다 내려놨으니까 나는 비판하지 말아 줘, 이 자세죠, 정확히는.  


왜 다시 한번 기회를 줘야 할까? 국민이 준 권력도 부질없이 버리고 사회적 약자로 내려가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어찌 보면 권력의 부질없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이 뭘 믿고 맡길 수가 있을까? 이렇게 말하면 잔인하겠지만, 세상에 라이더가 없는 게 아니라, 세상에 의사가 없는 게 아니라, 세상에 법관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라이더에 뭐가 필요할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걸 찾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것일 텐데,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 세력은 정치를 삶에서 실현하려는 그 오랜 노동 운동의 계보를 포기하지 못하고 여전히 삶에서 노동을 실천하며 굳이 권력이 부질없음에 전착합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왜 줘야 하는지, <정권 심판 정의롭게>가 그 이유라면 그건 이미 민주당이 채갔습니다. 민주당에 빼앗기지 않을 만큼 악바리 같던지, 뺏겼어도 죽어라고 되찾아오는 열정을 보이던지, 아니면 애초에 다른 구호를 내세우던지. 아무것도 없죠. 


그리고 모든 걸 내려놓고 수행에 들어가고 고행에 빠지는 건 이미 붓다를 비롯해서 많은 종교인들이 수행한 겁니다. 유명한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도 삶과 철학을 일치시키기 위해서 러시아 집단 농장에 취업하려고 했었고요. 역사적으로 이런 경향을 보이는 분들, 생각보다 많아요. 정치와 종교 그리고 철학을 분리하고자 한다면, 정치인으로 움직이시면 좋겠습니다. 


이쯤 되면 정치가 뭐 그렇게 대단하냐 반문하는 분들이 꼭 나타나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정치를 비롯해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직업군은 분명히 있다고 보고, 오히려 그들을 낮추기보다 지위만큼의 <책임>을 줘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한 번 그 지위를 갖게 되면 적어도 나는 다른 길을 만들어보겠다 정도의 집념이 있는 분들이 있었으면 합니다. 실패야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집념이 있고 없고는 가치의 문제니 까요. 한 번 시작하면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죽음으로 책임 질 정도의 집념. 백혈병에 걸려 죽으면서도 방사능을 연구했던 퀴리 부인 같은 집념, 온갖 눈병으로 고통받으면서도 각종 편찬을 했던 세종대왕 같은 그 집념 말이죠. 욕심이 아닌 집념을 갖게 되면 멈출 수는 없는 그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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