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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진 Jun 06. 2024

페미니즘은 원래 남성성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진보가 보수와 타협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제가 어떤 주제나 의견을 말할 때 좀 오랜 증거까지 가지고 오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혹시 과거를 무작정 미화하는 것 아니냐 오해를 받을 수가 있는데, 제가 과거를 가져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원인의 원인을 알아야 지금 시점에서 그 원인이 상쇄됐는지를 알 수가 있기 때문이죠. 바로 전의 원인만을 살피게 되면 지나치게 공격적인 자세를 보이게 되고, 그 결과는 지금의 페미와 남혐 논란처럼, 서로가 죽을 때까지 극으로 치닫는 외의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지만 사회가 남성 위주로 진행되어 여성이 자아실현보다는 가정에만 헌신해야 했던 시기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원치 않는 결혼과 임신, 가족 구성원으로만 살아야 했고 사회 활동은 제약을 받았으며, 따라서 여성들이 왜 내가 선택하지 않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됐고 그 태동의 결과가 페미니즘이었죠. 내가 노예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노예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임신과 출산, 가정에 종속돼야 한다는 것도 억압인 거죠. 


페미니즘은 이렇게 기본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해 받게 되는 사회적 구속력에 저항하기 때문에 반대로 이를 착취하는 상대로서의 남성을 정립하고 이 남성에 대해 그러니까 남성 중심적 사회에 대해 적대적으로 저항하는 것을 모토로 하게 됩니다. 


애초에 페미니즘은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억압하고 구속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아시겠지만 신체에 대한 자유는 인간이 최고로 원하는 자유이므로, 남성들과 극렬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히 유도되는 거고 여기에 타협점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여성 혹은 여성의 몸을 구속하는 남성성이 말살될 때까지요. ^^ 따라서 페미니즘의 주요한 연구 내용은 인간, 여성, 몸, 낙태 이런 것들에 대한 과도할 정도의 집중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문제를 볼 때 그렇다면 왜 여성은 가정에만 복속하도록 <억압>이 됐을까 이런 시점도 보는 것을 선호합니다. 페미니즘이 결혼과 출산에 종속된 여성의 관점에서 남성 중심적 사회를 비판하며 태동했다면 마찬가지로 가정에 종속된 여성이라는 것도 이전에 어떤 사회적 모습에 의해 태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거죠. 통상 페미니즘은 남성이 물리력과 경제력으로 여성을 강제로 제압하여 가능했다 보는 편이지만, 물론 이런 지점이 전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저는 그 이유 외에 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자체가 여성을 지나치게 수동적이라고 본다는 생각이고, 그것 자체가 현대인이 과거 선대를 미개하다고 보는 차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지금의 여성들이 혹은 지금의 인류가 가장 선진화됐다는 그 착각이 저는, 뭐랄까, 근거 없다고 생각해서, 더 이전의 세계에 대한 증거들을 찾아보는 거고, 그렇다면 그들이 추구했던 것들이 지금 페미니즘이 저항하는 것으로 해소가 되는 걸까, 보는 겁니다. 페미니즘이 일정 부분 여성이 가정에만 종속돼야 하는 문제를 해결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면 여성과 가정에 대한 애초 시작점은 뭐였을까, 저는 이런 게 궁금한 거죠. 그리고 그 시작점에 있었던 문제가 지금도 남아 있을까? 이런 지점이요. 


따라서 제가 지금 벌어지는 어떤 현상에 대해 이전의 이전의 이전으로 올라가 각종 증거들을 언급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 이전의 이전의 이전의 사람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고치고 고치고 고치면서 나아온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즉 페미니즘만 여성 억압을 고치려고 한 게 아니라 그 이전의 여성들도 어쩌면 스스로를 종속할 수도 있을 가정을 만들어서 어떤 문제를 고치려고 했을 거고, 고치려고 하면서 결국 어떤 모습을 형성했을 주체성이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어떤 건물이 붕괴하려고 하는데 위에 페인트 칠만 해서는 건물 붕괴를 막을 수 없는 이유가 건물의 골조 자체 그리고 건물이 지어진 토양 그 자체를 봐야 하는 것과 제 맥락은 같이 갑니다. 


막연히 과거가 아름답다, (물론 저는 과거의 저작물이나 이런 걸 보면 기겁할 정도로 놀랍다고 개인적으로 감탄할 때는 있고, 진짜 식겁도 합니다만 ^^;;;;;;) 이런 측면에서 언급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지금 무너지는(?) 흔들리는(?)  건물의 골조와 토양을 보려는 시도에 더 가깝습니다. 


저도 대학생 시절 사회나 집과 심각하게 갈등을 빚고 있던 상황에서, 여성학을 배운 뒤 일종의 충격을 받고 (당시 제가 들은 수업에서 강간당한 여성의 육성(인가 여하튼) 인터뷰를 들려준 적이 있고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중에 상당히 수위 높은 끔찍한 내용이 있었던 터라) 진지하게 여성학 관련 대학원을 고려할 정도로 여성학에 심취한 시기가 있었으며, 남성성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증오심(?)도 있어봤기 때문에, 그 과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로 인해서 지금 이 지점에 왔다 이렇게 적으면 될 듯싶습니다. 저는 여성학이나 페미니즘으로 그런 갈등이 해소되진 않았습니다. 


덧붙여서 지금 진보와 보수도 너무나 심하게 갈등하고 있는데, 보수가 자유와 민주화를 요구하던 대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처벌하던 시기가 있었던 건 사실이죠. 한 도시를 군인을 동원해서 사살하고 자유를 요구한다는 이유로 대학생들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감옥에 집어넣고 밀고하면서 대학 생활을 지옥으로 만들었었죠. 따라서 이 시기 대학을 보낸 사람들은 동시대 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 동료 대학생들에 대한 일종의 집단  트라우마가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동료 대학생들을 처분한 그들이 여전히 주요직에 있으므로 일종의 진보에게 보수는 용서할 수 없고 반성 없는 집단이 되면서 역시 타협은 발생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죠, 타협이 없습니다, 이 안에서는.


따라서 타협이 없는 저항을 택한 페미니즘이나 진보 모두, 물리력과 경제력 등 강제성으로 대변되는 남성적 접근 방법을 처절하게 비판하는 페미니즘이 도리어 더 잔인한 방법으로 사회에 대두되는 모순에 처하게 되고 (심한 경우 여성이 남자면 애초에 다 죽어야 된다면서 남자 어린애를 죽인다면서 학대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보수가 갖는 권력 중심적 부패를 증오하는 진보가 도덕적 부패로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사태가 왔다고 봅니다. 


그래서 요즘에 진보와 보수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고는 있는데, 아직 이걸 쉽게 적을 정도로 제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보니, 일단 요즘 너무 극렬하게 갈등을 빚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만 간략히 적었습니다. 페미니즘은 일단 여성과 남성이라는 인류 보편타당한 정립 위에서 움직이지만, 진보와 보수는 한국에서 그나마 가깝게 조선으로 가서 보면 노론과 소론 정도와는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 저는 이렇게 보고 있어서, 언제 또 이에 대해 글을 올릴 수 있으면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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