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여성도 기재도 되고 그렇기는 합니다만, 본래 호적이란 남성 그러니까 부를 따르는 겁니다. 호적제의 취지에 따른다면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아버지 호적에 올려야 돼요. 따라서 여성이 출산을 하면 아버지를 찾아서 같이 등록하거나 여성의 동의 하에 남성 호적에 등록하는 게 맞습니다. 여성이 아버지를 특정할 수 없을 경우가 문제가 되나, 현대에는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니, 이 문제도 해결되죠.
그런데 현재 여성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이 혹은 불특정 다수와의 관계 속에서 혹은 혼외로 출산을 할 경우, 아버지를 특정하여 그 호적에 올리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사회적 함의가 없기 때문에, 이런 출산은 전적으로 여성이 부담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여성이 출산 후 아이를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거죠.
아직도 이런 습성이나 종교적 교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국가들에는 혼외 출산이라고 하더라도 남자가 그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일이 발생하며, 여성에게 이렇게 모든 부담을 지우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런 나라들은 여성이 혼외로 출산한 경우 사회적으로 매장도 당할 수가 있기 때문에 어떻든 받아들여져야 되는 등 복잡한 구조가 있긴 한데, 일단 설명을 위해 간략히 언급했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성적으로 자유로워졌지만 그로 인해 부계 혈통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통제했던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현재 거의 와해가 된 상황이고, 그로 인해 성적 자유에 대한 대가를 여성이 거의 혼자 감내하다 보니, 현재의 상황에까지 이르지 않았나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어떤 제도를 만들더라도, 익명출산이라는 게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아버지) 또한 완벽하게 보호되는 거라서, 이렇게 계속 아이에 대해서 부계 책임을 면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여성들이 아이에 대해 지금보다 더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기는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검사도 없고, 자신이 아버지인지 확신할 수 없이 오직 여성의 양심 만을 믿어야 했던 (그로 인해 잔혹하게 통제하기도 했던) 과거 세대 남성들이 부계 중심 혈통에 동의한 것은 어떤 면에서는 아이의 안전 때문이었을 겁니다.
남성들이 익명 출산한 여성과 모르고 결혼하는 게 두렵다면 여성들이 익명출산하도록 방조하기보다, 익명 남성이 특정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움직이는 게 더 효과적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