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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 경험인데, 조증 삽화 설명합니다.

by 이이진



제 개인 얘기를 좀 하자면 제가 현재 조현정동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병 초기에 상당히 심한 조증 삽화로 고생을 했었는데요.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심적 혹은 환경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에 관한 생각을 아무리 끊어내려고 해도 끊어지지가 않는 경험은 누구나 합니다. 예를 들어 사기를 당해 몇 억을 날린 경우, 아무리 그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는 거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도 그 상황을 잊고자 하나 쉽지 않고, 때문에 잊기 위해 과도하게 술을 마시는 등의 자기 파괴적인 행동은 할 수가 있습니다. 심한 경우 자살 충동까지도 이를 수가 있는 거죠.


그런데 조증 삽화의 경우, 이러한 원인이 거의 없거나 불분명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연인에게 버림을 받거나 오랜 시간 투자한 일이 실패로 돌아가 일시적으로 미친 사람처럼 잠도 안 자고 여기저기 하소연하고 다니는 등의 다소 충격적인 인과가 없이, 본인의 현실과는 딱히 관련이 없는 특정 사고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향이 발생하는 겁니다. 물론 이런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극복하지 못해 발병하기도 하나, 그렇더라도 사고의 정도가 벗어나는 수준에 이릅니다.


정신과에서는 mood 기분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실제 환자 입장에서 보면 기분보다는 관계없는 현상에 대한 지나친 몰입에 가깝다고 봐야 될 듯합니다. 예를 들어 조증 삽화가 일어났을 때 성경을 읽으면 뇌가 특정 단어나 반복되는 표현에 몰입을 하게 되고, 이에 따라 성경에 대해 독특한 사고를 하게 됩니다. 통상적으로 인간이 어떠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기초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고 기초 지식은 사고의 바운더리를 정하게 되는데, 그러한 기초 지식에는 개인의 경험도 바탕이 되는 것으로, 조증 삽화 기간에는 이러한 기초 바운더리가 사라지는 거죠.


성경을 다시 예로 들면, 카인과 아벨의 경우에서 성경을 정석대로 배운 사람들은 카인이 인류 최초의 살인자라든가 하는 식의 사고의 바운더리를 갖고 거기에서 해석을 시작하지만, 조증 삽화가 시작되면 본인이 평소에 하던 것도 아닌 성경에 대한 고민이 돌연 시작되고 성경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은 카인에 대한 해석을 할 수가 있게 되면서 또 거기에 지나치게 집중합니다. 이 지점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참고로 할 수가 있겠는데, 헤르만 헤세도 소설 데미안에서 카인과 아벨에 대해 독특한 해석을 했던 바가 있죠. 그러나 헤르만 헤세는 오랜 기간 기독교적 교육을 받아 기독교에 대해 나름의 지식과 학식을 갖추고 있었고 그에 따른 사고의 깊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지만, 조증 삽화 기간에 발생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은 통상 기초 지식이 없거나 미미하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도 이에 대해 입증이 어렵고 그로 인해 미치광이 소리를 듣게 되는 겁니다.


즉 본인 혹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 등과 관련하여 사고를 확장하거나 깊이 있게 몰입하는 것은 인간 누구나가 경험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도출되는 결과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도 받게 되지만, 조증 삽화에서 발생하는 터무니없는 사고의 확장과 몰입은 해당 환자의 삶과 다소 무관하게 일어나며 그로 인해 당시에 일어나는 사고의 흐름은 일반인이 인정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는 게 대부분입니다. 조증 삽화 기간에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물으면, 본인과는 관련 없는 사고이기 때문에 그 이유가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는 식으로 장황하고 거창하며 현학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조울증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조증 삽화에 대해 창의성을 결부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 조증 삽화 기간의 사고는 일반인이 용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현병이 아무 의미가 없는 사건들을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인지하는 병에 가까워 본인과 무관한 사건에까지 본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면 (처음 보는 사람이 쳐다보는 것을 보고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망상하는 것처럼) 조울증은 본인과 관련이 없는 사고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그 사고로부터 스스로를 독립시키지 못하는, 사고에 점령당하는 경향이 발생합니다. 관련 없는 사고가 발생하고 이 사고가 기본 인과 관계를 훼손하기 시작하는 거죠.


처음 보는 누군가가 나를 향해 웃는다고 할 때, 조현병은 저 사람은 외계인의 지시를 받아 나를 자극하기 위해 웃는 것이다라고 인지를 한다면 (아무 상관없는 사건을 인과가 없는 결과로써 인지를 하면서도 본인은 인과가 있다고 망상을 하고), 조증 삽화는 모든 웃음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본인에게 자극되는 웃음에 대해서만 극렬한 사고를 하고 이로 인한 즉흥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것(인과가 없는 사건에서 본인이 집중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인과가 없는 행위를 한다는 측면)이 다른 점이었던 거 같습니다.


(덧붙여서 본인이 공부를 해왔더라도 기존과는 다른 학설이나 기타 다른 사고를 주장하는 경우에 통상 사회나 학계로부터 저지를 당하거나 비판을 당하는 일은 종종 발생하는데, 이럴 경우 사회적 고립이 유도되어 극심한 우울증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운 주장을 하거나 연구를 했던 많은 연구가, 예술가, 작가들이 극심한 우울증을 경험하는 것은 정신병적 우울증과는 다르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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