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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이 자유롭지 않으면 여성인권 최악국이라는 오류

by 이이진


김행 여가부 후보자 청문회에서 필리핀을 여성 인권이 가장 열악한 국가의 하나로 언급을 하더군요. 개인적으로 필리핀이 이혼을 할 수 없는 유일한 국가라고 하면서 (바티칸도 그렇기는 하나 국가로서의 이미지가 약하므로) 가장 열악한 국가의 예를 들어 관용을 말하였다고 비판을 하였는데, 이혼이 불가하다는 이유 만으로 필리핀이 여성 인권에 가장 열악한 국가라고 표현되는 것에는 위원장의 무지가 있는 거 같습니다.


한국 (여성학) 관련 지식인들이 서구권에는 유별나게 근거 없이 복속하고, 동남아시아는 인권에 있어 특별히 열악한 국가들의 표본으로 인지하는 것은 명백한 사대주의죠. 필리핀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한국과 달리 연합의 형태를 띤 국가로서 천주교를 받아들였고, 이런 특성은 아시아 국가에서는 유일합니다. 이 자체가 유일하므로 당연히 이혼에 대해서 유일할 수밖에 없죠.


지금의 이혼 제도가 서구권에서 정착하는 과정을 보면, 영국 왕 헨리 8세가 교황청과 결별하는 데 가장 크게 작용한 표면적인 이유는 왕비와의 이혼을 교황이 반대한다는 것이었으며 (정치적 배경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혼이 종교를 창시할 정도로 강력한 발동이 된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를 통해 보더라도 이혼은 여성보다 남성이 다른 여성과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추구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성은 아이를 낳게 되면 양육이라는 부담이 생기고 특정 연령을 지나면 남성과 달리 출산을 전혀 할 수 없으므로 아이를 낳고 기른 뒤 이혼을 당하게 되면 그 손실은 엄청납니다. 한국도 이혼 제도가 시행되었을 때 이혼을 당하거나 이혼을 요청한 여성은 아이를 시댁에 두고 나가는 경우가 파다했으며, 이 제도가 여성에게도 양육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것도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죠. 그렇다 보니 이혼과 양육권을 여성에게 주기로 한 것까지는 왔는데, 막상 이혼한 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전혀 받지 못하는 현재의 불합리한 상황에 한국이 침체돼 있죠. 여성학자들이 이혼이 여성의 권리인 것처럼 주장하는 바람에 여성들이 이를 오히려 이행해야 되는 상황에 처한 부분도 영향이 있고요.


친정이 부유하거나 본인이 특정 직업이 있어 양육에서의 경제적 부담이 덜어지는 일부 특권 여성을 제외하고 (이런 여성들이 이혼에 앞장서니 대다수 가난한 여성들이 혼란스럽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혼과 동시에 생활과 양육의 부담을 전적으로 맡게 되면서 대단한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때문에 막상 여성이 이혼을 한 뒤 양육권도 받아 놓고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은 여성 활동가들이 더 잘 알리라 봅니다. 따라서 이혼이 자유로운 것이 여성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관점은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이렇게 방송에 나올 정도로 정치적 입지를 가진 여성들의 경우는 대부분 친정이나 시댁이 생각보다 부유하고 집안이 안정적인 경우가 많고 본인 또한 야망이 강하지만, 모든 여성이 이렇게 친정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거나 시댁이 지원하고 본인 또한 다른 사람들을 공개 석상에서 격렬히 비판할 수 있을 정도로 공격적이지 못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할 말을 못 하고 사는 경우가 태반이죠. 그런데 이런 특수한 경험과 세력을 지닌 특별 여성들이 오히려 대다수 여성을 대표하며 여성 정책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저는 여성가족부가 지금에 이르러 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일부 비판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이 이혼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진 결과로써 현재 한국은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데, 필리핀이 세계 유일의 이혼을 금지하는 국가로서 여성 인권 탄압국이라면,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한국은 여성 인권이 어떻다고 봐야 할까요? 이혼을 아무리 자유롭게 하고 양육권을 여성에게 줘도 이렇다면, 그 방향을 고려해 보는 게 타당한 겁니다. 다른 나라를 근거 없이 세계 최고 열악한 여성 인권국이라고 비하하는 것은 상대국에 대한 모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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