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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진 Aug 14. 2024

종교와 과학 중 가치 판단의 문제는 인성 문제가 아니죠

한국은 가치 판단을 인성을 너무 연결 짓습니다. 


올리신 SJT 문항이 한 문항밖에 없어서 댓글을 드리기는 좀 무리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문항에서 묻고자 하는 바는 한국인들이 말하는 인성보다는 가치 판단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 댓글을 답니다. 일본 만화 중에 <몬스터>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 만화에서 유명 외과 의사인 주인공은 유력 정치인(인가 여하튼)과 이름 모를 소년이 동시에 수술대에 오르는데 그 둘 중 유력 정치인 수술하기를 포기하고 이름 모를 소년을 수술함으로써 성공 가도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병원에서 이러한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묻게 되는 거죠, 물론 그렇게 살려낸 그 소년이 사실 살아나면 안 됐을(?) 악마에 가까웠다는 게 맹점이긴 합니다만. ^^


여하튼 이렇게 의사 (뿐만 아니라 사실상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두 개의 생명 중에 하나를 살려야 하는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이 있고, 예를 들어 산모와 아이 중 하나를 살린다거나 샴쌍둥이 중에서 하나만 살린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이때 의사가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는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아마 영국 SJT는 그런 가치관을 묻는 문항인 듯하고, 따라서 인성이나 단순한 상황 판단과도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도 드물게 있긴 하지만, 종교적 가치관이나 여러 이유로 과학적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는 외국에서 자주 다뤄지는 문제이고, 이때 의사가 환자가 죽을 것을 알고도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 치료를 멈출 것인가, 아니면 의사로서 어떻게든 일단 환자를 살려낸 뒤 나머지 결정은 스스로 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답이 없는 상황이라서, 의사에게 이 부분에 대해 고려를 하도록 문제를 내는 거 같습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스스로 죽을 권리까지도 인정을 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사실상 환자가 적극적으로 과학적인 치료를 거부한다면 억지로 치료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편이고 다만 미성년자의 경우에 부모가 반대를 하면 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가 있는 거 같습니다. 즉 해당 질문은 의사로서 환자를 살린다는 본분에만 충실할 것이냐, 환자의 의사를 존중할 것이냐 + 과학과 종교적 가치가 충돌하는 경우에 어떤 가치를 따를 것이냐 등등을 묻는 거 같습니다. 


의사가 환자가 거부하는데도 불구하고 살리기 위해서 치료를 강행한다고 해서 악의적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환자들 중에는 병으로 인하여 판단력이 상실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죠, 즉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치료를 요구했을 거라는 겁니다), 반대로 의사가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치료를 중단한다고 해서 악의적이랄 것도 아니므로, 어느 방향이든 그것은 의사의 가치 판단에 대한 문제일 뿐, 인성과는 상관이 없다고 보입니다. 


마이클 샌덜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질문한 것도 철로 위에 한 사람을 죽일 것이냐 다섯 사람을 죽일 것이냐 하는 가치 판단 문제에서 대부분은 많은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결정을 하지만, 만약 그 한 명이 가족이라면 결정이 달라진다는 것처럼, 자신이 어떤 가치에 비중을 두느냐의 문제일 뿐인데, 한국은 이것마저도 인성으로 연결 짓는 경향이 불필요하게 높다고 생각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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