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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는 가까운 사람이 소개하기도 합니다

믿을만한 사람의 소개라도 비정상적이면 의심해야 합니다.

by 이이진

https://youtu.be/LICyioskyy4? si=DTl5 j1 UfUo8 rlfr8


사이비 성향의 종교에 빠지는 이유 중 큰 하나는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부터의 소개가 있습니다. 마을이면 이장이나 동장 같은 사람이 <믿을만한 무당이다> 이렇게 해서 소개를 받는다거나, 주변에 돈 좀 있거나 아팠거나 이런 사람들이 <이 병원이 좋다>, <저 교회가 병 낫는다>하면 일단 믿고 보는 거죠. 이 사건 가해자 모친도 보면 시동생이 소개를 했기 때문에 딱히 저항감이 없이 믿음을 가졌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예전에 무당에 대해 말할 때 언급했지만, 통상 무당이든 절이든 교회든 무슨 집단이든, 모태가 아니고 느닷없이 성인이 돼 찾아가는 경우에, 말 못 할 고민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종교) 집단에서 그 부분에 관해 다른 관점에서 설명해 주거나 해석해 주면 순간적으로 강한 의지를 하게 되고 이 사건 가해자 모친과 피해자 아들에게도 그런 경향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무당이 <집안에 사고로 억울하게 죽은 친척이 있네?> 이 한 마디만 하면 <아, 내 모든 고난이 거기서 시작됐구나> 이렇게 인식되는 구조죠. 사실상 사고로 죽은 친척과 지금 자신이 겪는 고난의 인과는 전혀 밝혀진 게 없지만, 어차피 고난 자체가 왜 있는지 설명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이런 터무니없는 인과라도 있는 게 마음이 편한 겁니다. 아무 이유 없이 괴롭다는 인식보다는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억울하게 죽은 그 친척 귀신이 한을 풀어 달라>고 한다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달까요? 왜냐, <인과를 모르면 그냥 당해야 되지만, 죽은 친척 한은 굿이라도 할 수가 있으니까요.> ^^


따라서 오랫동안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피해자 아들에게 절이 <뇌의 확장>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개인적인 무능이나 사회적인 원망보다 새로운 관점을 알려주자 피해자 아들의 신뢰는 상당히 높아졌을 거고 (사이비 교주들이 항상 하는 말은 <너는 선택된 자다>로서, 성추행을 하면서도 <네가 선택받아서 나를 접대한다>는 식으로 등등), 아마 피해자 아들 스스로 절에 간다고 했기 때문에, 가해자 모친 입장에서는 <이제야 뭔가 하려나 보다> 기대를 했을 것이고, 그런데 그 기대가 <피해자 아들의 성추행>에 이르자 쉽게 말해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거죠.


항상 말씀드리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종교 자체에 대해서는 열린 편이나, 성적인 부분, 혹은 말할 수 없는 치부를 자꾸 부각하며 죄의식과 수치심을 가르치는 경우를 악의적 폐단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그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과도해지고 (이런 것까지 나눈다는 생각에서) 인간으로서 본능에 지배당할 때마다 해당 집단에 대한 죄의식도 증가되기 때문이죠.


거의 예외 없이 특히 사이비 집단은 <성적인 것을 포함한 온갖 종류의 죄의식과 수치심>을 심지어 공개적으로 공유하도록 조장하며, 이 과정에서 이 사건 피해자들처럼 허상의 기억을 만들어내기까지 하고, 특히 그 성적인 수치심이 사회에서 용인할 수 없는 부분 (여기서는 근친상간이 되겠는데, 더 끔찍한 것들도 제법 있습니다), 에 반드시 이르게 하여 종속을 시킵니다. 그러자면 일차적으로 가정을 분열시켜 완전하게 서로를 고립시켜야 하므로, 이 사건 가해자 모친과 피해자 아들 모두 서로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한 채 결국 모친이 가해자로서 피해자 아들을 죽도록 때리게 된 거죠.


보면, 한 때 개종 사건으로 난리 났던 사이비 종교에서도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의 가족에 대한 증오는 대단했으며, 이들도 성경을 다르게 해석하는 데 홀려서 상당히 힘들게 됐었고, 심지어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난리가 났었죠. 엄마를 아줌마라고 부른다거나 하는 식으로, 가족에 대한 증오가 상당히 진행돼 있었습니다. 원래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모든 게 보이는 것처럼, 가족이니까 치부가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바닥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나, <어떻게 가족이 이럴 수 있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벗어나기가 힘든 게 사실이거든요. 사이비가 여길 잘 파고들죠.


그럼에도 이 사건에서 가해자 모친은 피해자 자식을 자신이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본능보다도 해당 종교 집단에서 인정받아야 하는 수치스러운 존재라는 인식 속에서 부모로서 저지르면 안 되는 가혹한 행위를 일삼았고, 설사 절에서 <피해자인 네 아들이 성추행을 했다>고 압박을 하더라도 <내 자식은 그럴 리가 없다> 거나 <설사 그런 행위를 했더라도 내가 같이 가르쳐서 고치겠다>를 선택하는 대신 <죽도록 때리는> 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는 처벌이 약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인이 된 자식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게 맞습니다만, 절에 간 것도 가해자 모친에 의한 것이고 할 때, 가해자 모친이 이 지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거죠. 솔로몬 재판에도 나오지만 두 여성이 한 아이를 서로 자기 아이라고 하자 <아이를 칼로 반으로 나눠라> 했을 때 결국 아이를 포기한 엄마가 진짜라고 판단한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이 <죽을 놈>이라고 비난하더라도, 내가 심지어 아이 자체를 잃을 수 있을 만큼 모든 손해를 안더라도, 가해자 모친만큼은 피해자 아들의 진실을 찾아주려 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죽이고야 말았으니 안타까울 일입니다. 생각보다 가족이 울타리는커녕 앞잡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시동생이 사실상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므로, 시동생의 형인 피해자의 아버지이자 가해자의 남편이 그냥 자신은 피해자일 뿐인 것처럼 인터뷰를 한 지점은 납득이 안 가네요. 그렇게 모를 수가 있었을까, 저로서는 이해 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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