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낙마한 사람이지만 지난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를 보면서 아래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대법관 후보자 이균용 판사는 사법부의 독립과 다양성을 추구하면서도 어느 판사에게 판결을 받더라도 같은 결론이 나와야 사법 신뢰가 높아진다는 앞뒤 안 맞는 소리를 했는데요. 판결에 같은 결론이 나온다는 것은 기존 판례에 충실한 보수적인 판결이 나왔을 때 가능한 것이고, 판결이 다양해진다는 것은 기존 판례와는 다른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지금까지 사법부는 대단히 보수적인 판결을 내려왔기 때문에 소수의 목소리 등이 반영될 다양성이 내포될 경우, 판결은 기존 판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고, 이는 판결 예상도를 떨어뜨려 일시 혼란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법 혼란이 일시 가중될 순간에 반대로 사법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가 않습니다. 이 정도 논리가 없는 대법원장 후보라니 놀랍더군요.
지금까지 사법부는 국민 누구나가 알 듯이 정부, 기업, 부자, 지배 계층 위주로 판단해 왔습니다. 따라서 이런 판례 흐름에 다양성을 내포하여 노동, 인권,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경우 혼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혼란은 지배 계층이 피지배계층을 포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건강한 갈등이라 할 수 있겠는데, 과연 지배 계층인 사법부가 이러한 경향을 받아들일 지에 대해 저는 비관합니다. 덧붙여서 대법원장 후보가 판결의 다양성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는데 과연 이게 가능할지도 의문이 들고요.
국회의원들은 막연히 사법부에게 다양성을 어떻게 포함할 것이냐 하는 화두만 던져두고, 막상 다양한 판결이 나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고찰이 너무나 떨어지고 (사법부 기존 판례를 보면 보수적이라 다양한 판결이 나오면 이 판례들이 뒤집히는 거라 혼란이 예상되는데 이 부분을 사법부에서 어떻게 할 것인 지에 대한 고찰) 사법부의 수장이 될 대법원장 후보 역시 기존 사법부의 판결 방향을 전혀 인지하지 못 한 채 같은 판결이 나온다는 의미 자체를 국민들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공부만 잘해서 계속 높은 자리에만 있어본 사람들을 경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저 자기 객관화 실패에 있는데, 본 청문회에서 이걸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사회에서 배제된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법부가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에 대해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판결을 해왔는지 자각이 없어 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판사들이 같은 판결을 내리는 경우는 판례가 확고한 경우이고, 판례를 뒤집는 판례를 만들 경우에나 다양한 판례가 만들어져 기존과는 다른 소수자를 위한 판결이 될 텐데, 하급 판사가 대법원에서 만들어둔 판례를 뒤집어 다른 판례를 만드는 경우 해당 판사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얼마나 큰지 조사 좀 해보면 좋겠습니다. 통상 판사는 소송 관계인의 항소와 상소 법원에서의 패소로서 승진에 영향을 받는데, 따라서 사법부에서 통합적으로 지향하는 판결을 하지 않는 판사는 존재하기가 어렵고, 이러한 한계점에서 해당 문제를 다시 봐야 합니다. 아무리 새로운 판사를 뽑아도 계속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명백히 사법부 자체에서 방향성을 강하게 추구하는 것으로 이는 다양성과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법원장 후보로서 법원 내 조직에 대한 인지가 전혀 없는데, 한 기관의 장으로서 본인도 어떤 조직에 속해있으면서, 해당 조직의 방향이나 성향에 대해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이 어떻게 전체 기관을 통괄하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의문이 듭니다. 본인이야 그러한 성향을 갖지 않고 해당 조직에 참여하였을지 몰라도 외부에서 보는 시각 또한 있을 터인데, 이러한 시각 자체에 대한 인지가 없는 대법원장이라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조직에 대한 내 외부 평가와 동시에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건강한 대법원장 후보가 되는 거지 그게 없다거나 모른다는 수장은 자격이 없어 보입니다.
대법원장 후보라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 지를 청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법원은 소부에서 결정을 하기 때문에 대법원장이 매번 대법원 판결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사법부의 수장이 어떠한 가치관으로 판결을 내리고 있는 지를 국민들이 검증을 해야죠. 본인이 재판 지연을 언급한 만큼 대법원장이 된다면 바로 재판에 투입이 될 텐 데, 현재 진행 중이 사안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 입장을 바로 드러내야 하므로, 예를 들어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입장, 강제 배상에 대한 입장, 중대재해 처벌법에서의 회사 대표 처벌에 대한 입장, 묻지 마 살인에 대한 가중 처벌 입장, 아동 학대에서의 살인 고의 양형 입장, 뭐 물어볼 건 산더미죠. 현재 많아지고 있는 판사에 대한 손해배상에 대해서, 사법왜곡죄에 대해서도 답변을 들어야죠. 그리고 사법부 내 법원 직원들의 승진 적채로 인한 불안 요소도 물어봐야 합니다. 전자 소송으로 인한 사법부 변화도 물어봐야 되고요.
대법원장의 가치관이 모든 재판에 반영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대법원장을 통해서 국민들은 대법원이 앞으로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판단을 할 것인지를 비교적 쉽게 가늠할 수가 있고 이를 통해서 대법원장은 사전에 국민들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으며 반대 의견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사법부 입장에서 너무 완벽하게 모든 기준을 공개할 경우 이를 피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를 대비하더라도, 대법원장 가치관에 대한 판단의 가이드라인 정도는 국민들이 알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한국 지배 계층은 자신과 긴밀한 사람에게만 결정의 방향성을 제시하여 결속을 다지고 있기 때문에 (법원과 김앤장 관계처럼), 권력자들과 가깝지 않은 곳에서의 국민들은 예상할 수 없는 정책 방향에 혼란스럽고 지배 계층이 투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흐름을 바꾸지 않은 채 막연히 재판 지연을 해결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이를 의도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저거 보느라 하루 걸렸네요.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