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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와 청소부를 불편하게 하는 기독교인에게 신이란

사회적 약자를 힘들게 하는 행위를 신이 이해할 거란 위선

by 이이진


지하철을 탈 때마다 임산부석이 비어있는 경우는 거의 못 봤습니다. 그런데 임산부도 없는데 굳이 자리를 비워둘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해서, 저는 앉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앉아있어도 그런가 보다 넘어가는 편이죠. 누군가 올린 글을 보니, 임산부석마다 나이 든 중, 장년 등 여성이 거의 앉아 있다면서 나이가 들어 힘든가 보다 이해는 하지만, 임산부가 와도 안 비킨다는 그런 내용도 있긴 하더군요.


저는 임산부가 왔는데 안 일어나는 중년이나 고령 여성은 본 적이 없지만,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늘 중년, 고령 여성인 건 맞긴 했습니다. 처음 제도가 시행됐을 때는 남성들도 앉아 있긴 했었고, 이로 인한 갈등도 있었긴 했지만, 현재는 중년 고령 여성만 앉아있긴 합니다, 제가 볼 때는.


그런데 오늘도 강남우체국에 민원서류 수령하고 필라테스도 받으러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타니까 역시나 임산부석에 장년 여성이 앉아있더군요. 가만히 앉아있으면 좋을 텐데 가방 안에 무슨 보물이라도 들었는지, 열었다 닫았다 하는 바람에 계속 제 팔을 스치거나 가방 끈이 제 허벅지를 건드리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오늘은 제가 지하철에서 확인하고 싶은 내용이 있던 터라, 그냥 그런가 보다 넘어갔습니다.


이어서 해당 여성이 전화를 받더니 "장로님" 이러면서 "중요한 모임이 있다는 등"의 대화를 시작했고, 전화를 끊고는 가방에서 과자와 물을 꺼내 먹었다가 다시 가방에 넣었다가를 반복하며, 그러니까 해당 여성 혼자 온갖 지하철 내 공공질서를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 것도 사실상 공공질서를 무시하는 것이고, 과자를 마시며 주변을 더럽히는 것도 공공질서를 무시하는 것이고, 물을 마시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먹으면 안 되는 과자를 먹느라 목이 말라 마시는 것이니, (단순 갈증이 아닌) 온갖 질서를 무시하고 있는 거죠. 아무리 좋게 말해봐야 언성 높이고 시비 걸릴 게 뻔하므로 그냥 묵묵히 참고 운동하러 갔고요.


신을 믿는 입장에서 인간이 만든 질서를 따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만든 질서가 인간이 만든 질서보다 우월하다 믿는다면 그게 불가능한 건 아니죠. 그런데 인간이 만든 질서가 임산부처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제도라면, 신을 믿는다면, 굳이 그걸 어길 이유가 있을까, 저로서는 솔직히 이해가 안 갔습니다. 법이 강자를 위하고, 정의를 배반하고, 신의를 훼손하는 등 개인적 영달 추구에 한한 경우, 자신이 믿는 신의 질서에 위배되므로 저항할 수 있다지만, 어느 신을 믿는 국가라도 임산부를 배려하지 않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임산부를 국가가 제도로서 보호하는 것까지 이렇게 추접하게 지키지 않을 이유가 뭘까, 짜증이 납니다.


임산부가 실제로 많지도 않다거나, 임산부들이 신경질을 잘 내고, 자기들도 질서 안 지킨다, 이런 개인적인 앙금으로 말하자는 게 아니라, 어떻든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느 종교도, 임산부를 보호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도대체 이 제도 자체에 불만을 가질 어떤 근거가 있냐는 거죠.


임산부를 보호하지 말라는 신이 있다면 그건 신이 아니라 악마 아닌가요? 게다가 음식물로 더럽혀진 자리는 결국 지하철 청소하는 사람들이 정리를 하게 될 텐데, 그 중년 여성의 무질서한 행위 하나로 인한 그 많은 피해를 왜 사회가 다 감당해야 되나 모르겠더군요.


저는 다들 개독교라고 비판하고 신은 죽었다며 폄훼할 때도 단 한 번도 기독교를 이와 같은 방식으로 비판한 사실이 없으며, 오히려 종교 자체에 대단히 열린 사람임을 스스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내세우면서 이렇게 일면식 없는 사람에게 온갖 불쾌감을 주는 사람들을 보면, 다른 사람이 혐오를 느끼게 하는 그 죄가 얼마나 큰지 인지가 안 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분노할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국가가 나서기 전에 기독교인들 스스로 임산부를 보호하자면서 약자를 위할 수는 없었을까? 약자를 보호하자는 인간적인 질서를 파탄 내서 얻을 수 있는 게 도무지 뭘까, 저는 이런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겉에 사랑이라 쓰고 실제로는 혐오주의자로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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