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을 저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막상 왜 긍정적인지 물어보면 구체적인 방향이 없는 경우에는 혼란이 와요. 제가 경험한 바로는 심각한 병에 걸리거나 종교적 경험을 한 뒤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는 분들은 있었습니다만, 그 외에는 무척 긍정적으로 보이는 분들도 다 나름 속앓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고민과 번뇌, 외로움 속에 있더군요. 그 명성이 사실인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죠. 명성이 쌓이면 사람들의 기대가 높아지기 때문에 자신의 속을 더더욱 쉽게 발설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 발언의 가치가 너무 커지기 때문이죠.
사실 누군가가 자신이 일을 벌이면 무조건 대박 나고, 자신이 손을 대면 절대 망하지 않으며, 자신은 이렇게 부유하고 여유롭게 살고 있기 때문에 당신을 절대 괴롭힐 리가 없다고 할 경우, 죽지 못해 산다고 하는 사람보다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따라서 불평불만만 하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허언증이 더 빨리 성공하는 경우들이 있는 것도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사기 피해자들이 하나같이 이런 사람들에게 당했다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화려한 삶, 현란한 언변과 과장된 자신감 등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거죠. 설마 이렇게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이 잘못된 사람일 수 있겠냐는 막연한 기대가 사기로 이어졌을 때의 낭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사이비 교주들은 자신이 신이라는 초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지상 모든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까지 호언장담을 하는데, 설마 저렇게 말하는데 거짓말일까 싶은 마음에 넘어가는(?) 분들도 상당합니다. 허언증이 많은 것 같아도, 막상 그 정도 허언증에 이르는 사람은 드물고, 따라서 이외로 사람들이 잘 속습니다.
당연히 못 살겠다 하는 사람보다 잘 살고 있다는 사람에게 끌립니다. 그런데 못 살겠는 사람보다 잘 살고 있는 사람은 저의 도움이 별로 필요치 않은 경우가 많고요. 그렇게 도움이 필요치 않은 사람의 삶에 개입하자면 제가 불필요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고 아쉬운 제가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현재 이렇게 이렇게 힘들지만 이렇게 이렇게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고 하는 분들을 선호합니다. 문제의식과 해결 의지가 같이 있는 것이 증명할 수 없는 긍정의 상태보다 제가 개입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저는 부정적인 것만 보는 사람만큼 긍정적인 것만 보는 사람도 한쪽 면만 보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한 면만 있는 경우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