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끌어내지거나 본인이 파괴되는 유흥의 끝

by 이이진

https://youtu.be/ayVoC__KnUM? si=qgQYGTpIDWN_UJpo


예전에 다른 댓글에 비슷한 내용을 단 게 있는데, 여성학 쪽, 페미니즘 쪽, 어떤 흐름 중에 여성이 남자처럼 연애하는 걸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자처럼 여성인 자기가 돈 쓰고, 자기가 남자를 리드하고, 자기가 성을 즐기면서 만난다고 해야 하나? 이 방송 상담자 비슷하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말이죠.


이 분이 페미니스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방식의 연애에 자부심을 갖고 남자와 동등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부류가 페미니즘 안에 있는 거죠. 여기 미성년도 오는 거 같아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긴 그렇지만, 한 때 성인물에서도 이런 흐름이 있었던 때가 있었고 (이런 걸 여성학에서 연구도 하고 예술 쪽에서도 이 흐름이 강타를 했었어서, 알고 있는 것이니, 오해는 마시고 ^^;;;;;;) 그 과정에서 꽤 충격적인 그런 일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어떤 여성들의 연애에 대한 접근 흐름의 변화를 가장 대중적으로 잘 풀어낸 드라마가 그 유명한 미국의 <섹스 앤드 시티>로서, 여기서 주인공 친구 중 한 여성인 사만다가 이 상담자 비슷하게 삽니다.


뉴욕 홍보 회사 대표(?)로서, 꽤 성공한 여성임과 동시에 남자를 돈을 써서도 만나고, 어린 남자도 만나고, 길에서도 만나고, 일 하다가도 만나고, 택배를 와서도 만나고, 운동 가서도 만나고, 심지어 돈 있는 남자도 만나고, 그리고 놀랍게도 사만다는 그 어떤 남자에게도 미련을 갖지 않고 <말 그대로 쿨~ 하게 즐기고 헤어지죠.> 심지어 남자를 <귀여워하고, 때로 성장도 시키고, 그리고도 그냥 자기 갈 길 갑니다.> 지금 많은 여성 가수들이 울부짖는 그 유명한 대사를 남기면서요. <I love you but I love me more.> ^^


다른 여주인공들이 표면적으로 남자와 동등해지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면 (심지어 쿨함의 대명사였던 주인공 여성 캐리조차도 너무 부유하고 성공한 데다가 너무 매력적인 남자를 만나고서, 말 그대로 집착까지 하고 불륜까지 하며 독립적으로 보이는 여성의 실체적인 불안을 보여줬다면) 사만다는 그런 면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성 독자들 다수는 현실적인 캐릭터였던 캐리의 방황에 동조는 하면서도, 말 그대로 쿨함 그 자체였던 사만다에게 훨씬 열광하며, 결국 이 인기의 뒤바뀜은 내부 갈등으로 이어져 (처음엔 소문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 사실임이 밝혀짐), 드라마의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하고 시즌은 6회로 끝났고, 영화로 만들어질 때 결국 이 쿨함의 대명사 사만다는 빠지게 됩니다.


제가 왜 이렇게 길게 설명을 드리냐면, 지금 상담자가 보여주는 연애나 남성에 대한 어떤 position이랄까, 입장이랄까, 접근 방식이랄까, 이 모든 게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 돼왔던 것이고, 심지어 드라마로도 계속 제작되고 있는 거고, 100년 전에도 남성과 여성의 연애에 있어서의 진부한 고착 관계를 타파하고자 여러 철학자들이 다양한 실험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 중 하나를 표본 삼아서 결론이 어떻게 됐더라 한 번 보시고, 자신은 그와 다른 결론에 이를 게 아니라면, 이미 정해진 그들 중 어느 하나를 향해 간다는 거죠.


일단 <섹스 앤드 시티>에서 여자들의 로망이었던 쿨함의 대명사 역할을 했던 사만다는 남자를 자유롭게 취하며 성을 즐기고 능동적으로 연애를 했던 결과로 병원에서 성병 (특별히 AIDS) 검사 결과를 앞두고 졸도를 하는 등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친구들에게도 보이지 못했고, 나중엔 유방암에 걸려 완치를 하게 되며, 이때 곁을 지키며 병을 간호해 준 남성에게서야 겨우 정착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사만다는 어떤 남자에게도 종속되지 않았고 오히려 능동적으로 취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아마 상담자와 비슷한 연애관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데, 막상 연애에서 진지해지지 못했고 성적으로야 자유로웠을지 몰라도 인간적인 친밀함은 잘 맺지 못해서, 친구들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사만다를 자주 오해했죠.


지금 상담자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대부분도 위에 언급한 어떤 그런 오해와 더불어서 <본인이 좋아서 호스트바를 다니고 거기서 또 인연을 만난다는 데야 누가 뭐랄 건 없지만, 감출 수 없는 공허함? 아무 목적 없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나마 사만다는 애초에 그런 관계에서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는 건 허구라는 걸 일찍 깨닫고 <그냥 즐기자> 자신의 욕망에라도 솔직했다면, 글쎄요, 상담자님은 <단지 돈이 목적인 곳에서 돈을 뿌려가며 사랑을 찾는다>는 도무지 인과가 없는 그리고 목적 자체를 와해하는 행동을 하는 거죠. 마치 정육점에 가서 유기농 채소를 찾는 그런 행동 같달까요?


따라서 둘 중 누구를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돌아오면 <돈으로 더 잘 다뤄지는 남자를 선택할 것인가>, <돈으로 맺어진 육식 세상에서 그래도 사랑을 줄 수 있는 유기농 채소에 둘 중 누가 더 가까울까> 이 안에서 결정을 내리면 되지 싶습니다. 그리고 즐김의 대가는 항상 신체 건강의 위험을 동반한다 거, 술을 좋아하면 간은 맛이 가는 거고, 담배를 좋아하면 폐가 맛이 가는 거고, 성을 좋아하면 뭐 그 장기가 맛이 가는 거고, 그 점 유의하시면 되지 싶네요.


추가로 제가 늘 드리는 말씀인데,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자기가 업소 다니고 즐기고 다니면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것만 같고, 자기가 바람피우면 세상 사람 다 바람피우는 거 같고, 자기가 남미새나 여미새면 남도 다 남미새와 여미새로 보이고, 자기가 주식하고 살면 남들 다 주식만 하는 거 같고, 그렇습니다. 길에 다니면 딱히 아픈 사람이 없는 거 같은데 병원 가면 환자 즐비한 것처럼, 호스트 바만 다니면 남자고 여자고 다 거기만 다니는 거 같고, 사람 왜 이렇게 많아, 이렇게 돼요. 일반 사람은 잘 모르겠는데 게이 눈엔 게이가 잘 보이는 그런 이치?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걸 나쁘게 보진 않는 입장이긴 한데, 세상의 어두움? 이면?을 조금 경험해 보고 마치 세상이 다 그런 것처럼 곡해하는 건 저는 경험이라고 보지 않고 <자기 자신의 파괴>라고 봅니다. 즉 호스트바를 갔다 와서 <돈이면 이런 것도 다 되는구나, 이게 뭐지?> 이런 생각을 갖는 것과 <돈이면 다 되네, 돈 있는 인간들은 다 여기 다녔겠네, 썩었네, 안 갔다는 인간은 개구라> 이런 식이 된 걸 비교해 보면, 후자가 세상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죠.


원래 상담자가 왜곡된 인간이었다면 호스트바를 다녀와서야 본성이 드러난 거고, 그런 인간이 아니었는데 호스트바를 다니고서 이렇게 됐다면 <상담자 원래 모습이 파괴됐다>는 겁니다. 즉 사랑을 찾아 호스트바에 갔다가 본인이 파괴됐을 수도 있다는 거. ^^;;;;;;;

keyword
작가의 이전글헌법 13조 초등교육 의무가 의무가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