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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 소송에서 손해배상이란

by 이이진

오래간만에 소송 얘기 좀 하겠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소송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라면 아무래도 법적인 절차나 용어 등을 알기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법률 사건 관련 도움을 요청하는 카페 글에 댓글을 달아 놓으면, 추가적인 질문이 종종 발생하더라고요. 그래서 민사 소송 중 가장 흔한 소송의 하나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서 나름 정리하여 드리겠습니다. 손해배상을 청구하시는 분들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편의 상 "나"라고 하겠습니다.


내가 타인에게 돈을 받는 방법은 크게 1) 돈을 빌려줬거나 2) 물건을 팔았거나 3) 노동을 제공했거나입니다. 뭔가 서로 거래가 있는 거죠, 쉽게 말해서. (타자 간에도 증여나 기부도 있고, 가족 간의 상속 같은 거는 제외한 겁니다.)


그런데 서로 거래는 없는데도 돈을 받는 것을 명시한 것 중 하나가 <불법 행위>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입었을 때 법은 그 피해를 돈으로 보상받아라 한 거죠. (형사에서는 불법을 저지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벌금을 부과하여 재산을 국가로 환속시키는 것이고, 민사는 개인이 배상을 받아라 한 겁니다.) 그런데 이 법은 모든 피해에 대해서 배상을 하라고 명시하지 않고 법에 명시한 행위를 위반했을 때에 한하여 배상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나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할 때, 그 피해가 법에서 규정하는 <하지 말아야 할 것> 혹은 <해야 할 것>을 했거나 안 했을 때만 배상을 받도록 한 거죠. 근데 법이 상식에 가깝기 때문에 대부분의 피해는 해당이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내 물건을 훔쳐갔거나, 집에 허가 없이 들어왔거나, 욕설을 했거나, 폭력을 저질렀거나 등등,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수준은 거의 해당이 됩니다.


문제는 통상적으로 불법이라 생각되지 않았던 혹은 새로운 형태의 불법에 대하여 사법부에 인정받고자 할 때 발생합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전세 사기 사건에서 임대인들이 종종 연락을 두절하여 임차인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데 만약 임대인의 연락 두절이 일종의 불법행위라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을 할 경우, 임대인의 연락두절이 왜 불법인지를 입증해야 하는 거죠. 연락두절이 불법이라는 증거를 남긴다기보다는 연락두절이 어떻게 불법인지를 입증해야 된다 이렇게 이해하시는 게 좋습니다.


때문에 말씀하시는 것처럼 어떤 불법인지를 밝혀야 되는데, 여기에서 필요한 게 법령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법을 위반했는지를 찾아내야 되는 거죠. 보니까 다른 분들은 민법에 규정된 신의성실 위반 등을 내세우는 것 같던데 (제2조(신의성실) ①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②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 저는 이거는 좀 약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임대인이 연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의무라는 것을 일단 입증해야 하는데, 연락을 받는 것을 의무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저는 아직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손해배상에서의 불법행위란 해당 행위가 상대방의 의무임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돼야 하므로, 연락 두절이 의무라는 것을 입증하는 절차가 필요해집니다.


묵시적 갱신이라고 들어보셨을 텐데, 법령은 묵시 즉 의사 표현을 달리 하지 않는 것도 의사 표시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연락을 두절한 것도 의사 표시의 일환으로 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 한 편으로 묵시는 갱신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갱신하지 않으려고 하고 계약을 해지하고자 하는 임차인에게는 적용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해봤습니다.


일반적으로 변호사들은 새로운 불법을 기존 법령에서 찾아 확대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법령이 새로 만들어지기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즉 새로운 형태의 불법은 입법으로 해결해야 된다는 입장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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