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변호사를 안 하고 무료로 상담을 하며 가난한가요?

by 이이진

자기소개에 구체적으로 제가 하는 일을 적어놓질 않았는데 저는 현재 여성복 브랜드 론칭을 준비 중인 한편으로 각종 비영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비영리 활동 중 대표적인 것은 집권 권력, 사법부 혹은 공권력에 대한 감시로서, 지금은 검사 상대 소송 몇 건만 진행 중이나, 대통령부터 검찰총장, 대법원장까지 소송을 다 진행해 봤던 이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프랑스 경찰과 파리 시를 유럽인권법원에 제소해 놨는데, 이거는 진행이 되고 있다고 해야 할지, 안되고 있다 해야 할지, 저로서도 잘 모르겠는 상황이고요. 어떻든 이렇게 여러 사건을 진행하면서 나름대로 법률 지식이 쌓이다 보니 도움이 필요하다는 분들한테는 무료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 블로그를 보는 분들 중에 법률적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은 제안코너에 글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제가 법을 전혀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의 (법) 사건을 돕자면 당연히 굉장히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미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법을 스스로 배워내기도 했고요. 여하튼 저는 법을 외우고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해 법 검색부터 사건을 돕고 있으니, 시간이 들긴 합니다만, 제가 법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에 대해서 일반적인 법률가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는 편이라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기업이나 정부 등 강자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면도 있긴 하고요. 변호사들처럼 판사나 검사들과 동기 동창도 아니다 보니, 판사나 검사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도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겠죠.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받지 않고 (법) 사건을 돕겠다고 저를 표현하고 보니, 마치 제가 돈에는 전혀 욕심이 없는 뭔가 이상적인 사람인 것처럼 표현된 것 같아, 일부 내용을 첨언합니다. 사실 돈에 욕심이 없는 게 뭐 그렇게 이상적인 것도 아닌데, 그렇게 표현하고 나면 뭔가 그런 느낌이 들긴 하죠. 제가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봐도 돈에 대해 욕심이 많은 편은 아닌 게 맞는 거 같은데, 그렇다고 뭐 또 그렇게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저를 보자면, 디자인도 재밌기는 한데, 뭔가 이런 시스템이나 사회, 법, 구조 관련해서 재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돈으로 버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태에 있고, 그로 인해서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도 처해 있다, 이렇게 스스로는 보고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라도 제 삶을 글로서 풀어내는 지점까지는 왔긴 하지만요.


여하튼 제가 (법) 사건을 도우면서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은 제가 돈 욕심이 없어서도 있겠지만, 현재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도 있습니다. 한국은 법률 정보 제공을 유상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을 오직 변호사로만 한정해놨기 때문에 (법무사도 있긴 하지만 대리가 안 되므로), 아무리 법에 대해 아는 것이 많고 경험이 많고 엄청난 시간을 들여 문서를 작성해 줘도 절대 돈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전문의 자격이 없는 자가 치료를 하여 돈을 받는다고 하면 심각한 범죄라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법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법률 관련 문서를 작성해 주면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법률이겠죠.


그런데 의사라는 직업은 인체에 투여하는 약물이라던가 칼이라던가 하는 직접적인 위험이 있지만, 법 관련해서 글을 써주는 직업은 단지 자신의 의견을 말해주는 것뿐이라, 사인 간에 합의를 하면 될 텐데, 이렇게까지 아무런 보수를 받을 수 없도록 해 놓은 것은 일종의 사법 독점주의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글이든 작성해 주면 돈을 주는 게 인지상정인데, 오직 법률 관련해서는 불법으로 해놨으니, 참으로 독점적 지위인 거죠.


그렇다 보니 법 관련 사건을 도와 달라고 하는 분들 중에서 제 시간을 무진장 뺏어도 돈을 전혀 주지 않은 것에 당연하다는 분들이 있기도 합니다. 차라리 돈을 써서 직접적으로 도와 달라고 하면 자기도 편할 텐데, 그게 안 되니까, 인간적으로 접근한다거나 온갖 미사여구를 쓴다거나 하는 괴상한 관계가 있기도 하고요. 실로 괴상한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돈을 주고받지도 않고, 서로 간에 계약 같은 걸로 구속도 없다 보니, 도움 받는 사람도 정보는 정보대로 다 주고 언제 저 사람이 그만둔다고 할까 우물거리고, 도움 주는 사람도 이만큼 도왔는데 또 도와야 하냐며 여차 하면 관둔다 이런 관계인 거죠. 서로 좋게 돕기로 했다가 돌이킬 수 없어지는 관계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저도 덜컥 도움 받으려다가 당시 믿고 제공한 정보로 기소가 됐다 무죄를 받기도 했고요.


그런 법이 더러우면 #로스쿨을 가서 떳떳하게 변호사가 되면 되는 거 아니냐, 이렇게들 말씀하실 수도 있겠는데, 막상 로스쿨을 졸업하면 지금 제가 하는 것과 같은 다소 무모한 소송들은 진행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변호사가 돼서 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한다면 글쎄요, 이런 소송을 하냐고 판사들에게 핀잔을 받는 것도 일상일 거고, 그러니 사건에서 승소하기는 별 따기일 거고, 변호사씩이나 돼서 지금처럼 계속 국가 상대로 소송을 걸어 패소를 한다면 스스로의 무능을 입증하는 셈이라 결국 자멸이라는 결과밖에는 안 나오겠죠.


저야 법을 전공한 게 아니니 제 소송을 공개하고 패소도 공개하는 거지, 변호사가 돼서 그렇게 자기 패소를 공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변호사들이 이런저런 집단을 만들어 대응하고는 있긴 한데, 그래도 패소를 공개하는 솔직함은 없죠. 다들 자기가 능력 있거나 정의롭다고 하지. 아니면 매번 판결을 받아야 하는 고난도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국 정치를 하며 판사를 호령하려 하던가. 법원에서 제일 높은 지위 중에 하나인 법원행정처장 나와! 뭐 이런 식으로요.


저를 돌이켜봐도, 저의 소송 숫자가 줄어드는 것도, 제 건강 문제나 소송 외의 다른 문제들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도 있긴 하지만, 제가 점점 법을 알아가다 보니, 이거는 이래서 안 되고, 저거는 저래서 안 되고, 이거는 이미 이렇고, 저거는 이미 저렇다는 것을 점점 알아가면서, 스스로 쳐내는 탓도 있습니다. 제가 초반에 소송을 걸어 많지는 않아도 승소한 것들이 지금에 와서 보면 신기하다고 할까, 그 정도로 무모한 소송들을 벌일 여유가 지금은 많이 적어진 게 사실입니다. 좋게 보면 다듬어지는 거고, 나쁘게 보면 용기가 줄어든 거죠. 아는 게 많아지니 비판이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현재 제가 생각하는 것은, 의료계에 장기 코디네이터 같은 직업이 있듯이 법률 코디네이터 같은 이런 거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소송을 하거나 소송이 걸리게 되면 단순히 법원에 서류만 제출하는 게 아니라, 소송인으로서의 자세와 관점도 바꿔야 하고, 만약 언론에 노출이 된다면 어떻게 보일 것인지도 잡아야 하며, 여론도 모을 줄 알아야 되기 때문이죠. 소송을 중심으로 한 커다란 틀을 잡아주는 거죠. 보니까 미국에는 배심원제가 워낙에 발달한 탓에 이런 비슷한 직업이 있더군요.


그러자면, 현재 법률 정보 유료 제공을 무조건 변호사로만 한정한 법률에 대해서 헌법소원이나 이런 게 진행이 돼야 할 겁니다. 미국이야 미국인 거고, 한국은 한국이니까, 일단 법적으로 해소를 하면서 접근을 해야겠죠. 로톡이라고 법률 정보 제공 사이트도 대한변협에 고소당할 만큼 보수적인 법조계에서 이런 직업 행보를 반길 리가 없거든요. 헌법에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데, 이 법률로 인해서 침해가 되고 있다, 뭐 이런 취지로 해야 하는데.


올해 한 번 시도를 해볼까 하는데, 하게 되면 여기에도 내용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로스쿨의 원래 취지는 다양한 경험을 쌓은 법조인을 양산하는 건데, 지금의 로스쿨은 변호사시험에 매몰되어 심지어 법률 토론 자체도 무의미한 지경이 됐다고 하므로, 아마 이런 여러 경향들을 한 번 적어볼 수는 있을 거 같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중국과 한국의 정치 체계와 아시아의 권위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