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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부검 결과서 사건 발생이 다른 사람이네요

게다가 모친을 설명불상자, 신원 확인 없이 검안했고요

by 이이진
부검의뢰서 사건 개요 허위.png


지난 금요일에 모친 부검 결과를 받아봤지만 읽어도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해서, 간략하게 어떤 병으로 어떻게 사망하였다, 확인만 했습니다. 패혈증 사망이고 심장과 뇌 등에서 병변이 확인됐다고 하며, 자세한 내용은 아무리 읽어도 눈에 들어 오지가 않아서, 일단 부검 결과를 간략하게 올려만 뒀었죠. 최종 사건 종결됐다, 이렇게도 적은 거 같습니다.


예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어떤 사건에서 변호사와 같은 대리인을 두는 이유 중 하나는 남에게 일어난 일일 때는 담담하게 볼 수 있다가도, 막상 그 일이 자신의 일이 되면 객관화가 상당히 어렵고 내용 파악 자체가 힘들기 때문으로, 역시 모친 부검 결과도 아무리 봐도 파악 자체가 안 되더군요.


다른 사람이 자기 사건을 도와 달라고 하면 이것 저것 잘 따지는 (^^;;;;) 저도, 막상 제 소송에서는 상대방 서면을 받는 즉시는 파악이 힘들고 며칠 정도 감정을 가라앉혀야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감정을 억제하는 건 아니지만, 상대방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해오면 주체할 수 없는 불쾌감은 느낄 수 밖에 없어서, 처음에 서면을 작성하면 때론 쌍욕 비슷하게 적게 되는데, 이걸 다듬어서 사람 다운 표현으로 옮기는 작업을 한 뒤 제출하는 거죠.


누차 말씀드리지만 저는 욕 해 달라고 발광하는 분들에게 거침없이 욕 해드릴 정도의 욕 실력은 있는 편이며, 다만, 그렇게 했을 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다소 경박해지는 위험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자제를 하는 것 뿐입니다. 다툼이 실질적인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서로의 표현을 물고 늘어져서 이므로 <네가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나한테?!, 내용을 떠나서,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지!>, 저는 이 굴레에 안 빠지려 욕을 자제하는 거고요.


여하튼, 어제 부친과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본 뒤 부모님 집에 가서 모친 짐을 정리하고 다시 와서 천천히 자료를 보다 보니, 조금씩 앞뒤가 안 맞는 내용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때문에, 아마도 이 부분부터 민원 넣고 하면서 방향을 잡게 될 거 같습니다.


일단 모친이 식중독 균의 일종인 대장균과 포도상구균에 의해 척추 농양이 발생했고,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대장균과 포도상구균은 앓고 지나가나, 모친이 가족에게 말하지 않은 채 척추 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던 터라 농양으로 자리를 잡은 거 같습니다. 이 균들이 면역 억제 치료를 받거나 척추 질환 치료 환자에게서는 농양을 일으킨다는 보고가 있더라고요. 저도 강직성 척추염으로 면역억제제를 복용 중이라, 좀 더 알아볼 예정이고요.


척추 농양은 대단히 희귀한 질환의 하나로서 농양이 발견된 경우, 항생제를 투여하고 낫지 않을 경우 수술로 바로 제거를 했어야 하나, 응급실에서는 모친을 척추 결핵으로 오진하여 단순 항생 치료만 한 뒤 집으로 돌려 보냈고, 이 농양이 아마도 터지거나 하면서 전신에 염증을 일으켜 급속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모친이 허혈성 심장 질환을 일으켰는데 아마 그 때문에 가족에게 알릴 틈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고, 당뇨가 상당히 심해 병증이 급속도로 악화됐다고도 보여지네요. 척추에 미세한 골절이 발생한 것은 <교통사고로 인한 것으로 추정>이라고 하였으나, 이 부분은 제가 또 다시 확인해보도록 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 부검 결과서에서 황당한 부분이 사망 개요입니다. 사망 개요에서는 모친 사망 시간이 2024년 10월 21일 오전 6시 58분이라고 돼있고 터무니없이 노해로에 위치한 주택 1층 침대에서 발견됐다고 적시가 됐습니다.


모친 댁은 당연히 노해로가 아닐 뿐더러 사망 발견 시간도 2024년 10월 21일 오전 2시 30분인데, 그 이후로 사망 시간이 기록돼 있다니요. 덧붙여서 부검 결과 어디에서도 아직까지는 사망 추정 시간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신원조차 확인하지 않은 성명불상자라고 기재를 한 것을 봤습니다. 저는 성명불상자의 딸로 참고인 진술을 했던데, 당시 밤을 세고 경찰서에서 진술을 했기 때문에, 성명불상자라는 표기를 못 보고 진술 후 날인을 한 거 같습니다.


모친 사망이 신고된 이후 국과수와 형사 등이 왔을 때, 당시 부친을 포함하여 자녀인 저와 제 동료 등 가족과 지인이 주변에 있었으므로 당연히 신분증 등을 통해 모친 신분을 확인해두는 게 맞는 거 같고, 그게 진짜 신분이 맞는지도 지문이나 기타로서 검사를 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유전자 검사 만을 했던데, 기록이 누락된 건지, 아니면 제가 유전자 검사를 해서 실제 제 모친 시신이 맞는 지를 확인해야 되는 건지, 이 문제도 알아봐야 될 거 같습니다.


내일이 모친 사망하고 처음 맞는 설날이라 가족들이 모인다고는 하나, 저는 가족과 만나면 아직도 이런 얘기를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제가 말하는 스타일이 단도직입적이고 부친도 강경하게 반응할 때가 있어서) 이 자리에 8세 조카가 있다 보니, 일단 저는 가지 않겠다고 말을 해 놨습니다.


언제고 조카가 성인이 된 후 궁금해 하면 해줄 말이 있지만, 현재 8세에 불과한 아동에게 사망, 부검, 수사, 경찰, 민원, 소송, 가족 관계 등의 내용을 말해도 될지 모르겠고, 제가 남동생 부인에게 이런 대화가 일어나는 동안 조카를 데리고 나가라 말 하기도 불편해서, 그냥 제가 이번 설날에는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부친과 남동생 그리고 저만 따로 조용히 문제를 상의하자고 해둔 상황이라 보시면 되고요.


설날 기간 내내 모친 부검 결과와 씨름 할 거 같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미 사망한 사건을 마음 아파하며 슬퍼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마음 다독이는 행동으로는 가벼운 위로가 될 뿐이고, 사회에 어떤 작은 변화라도 줄 수 있어서, 모친 사망이 어떤 의미가 되는 것으로 위로를 받고자 합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방향이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각자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또 말씀드립니다.


갑작스러운 가족 사망으로 길에서 시위를 하거나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다투는 많은 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올 해에는 모쪼록 억울한 분들 없이, 특정 누군가의 사망과 함께 일반 사람의 사망도 의미 있는 해가 되길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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