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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Feb 04. 2022

잘 먹고 잘살기 - 어려운 일이니까 조금씩 천천히

 

 


 

매년 새해가 되면 목표를 세운다. 다짐은 빠르게 스러지지만 그래도 양심 한구석에 남아 나를 괴롭히기 때문에 굳이 작년에 실패한 목표를 가져다가 다시 세워놓는다.


건강을 목표에 두기 시작한 지 몇 년이 흘렀다. 체력도 근력도 뭣도 없이 20대 시작부터 젊음을 갈아 넣었더니 건강에 금방 적신호가 켜졌다. 제대로 먹지 않으니 위장은 한없이 나약해지기 시작했는데 몸이 하루하루 버텨나갈 체력은 어디서 공수해 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사는 건 너무 힘들다 싶어서 식습관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건강하게 삼시 세끼를 먹으면서 체중을 증량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살찌우려면 기름진 고열량 음식을 먹으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가능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다가 깨서 소화제를 먹는 밤이 여러 날, 잘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별안간 손끝이 차가워져서 가방에 상비약을 넣고 다니는 날이 흔해졌다. 그러니 자극적인 음식은 금지, 과식은 금물, 야식은 위험, 따뜻한 음식이 제격이었다.

 

밤에 배가 고프면 우유를 데워서 초콜릿 한두 조각을 곁들였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걸로 허전함을 채우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은 정직했다. 부담스럽지 않은 야식을 잘 받아들였고 탈이 나지도, 체하지도 않은 평범한 밤이 찾아왔다.


대학생이라 시간이 많았으니 도서관에 가서 요리책을 몇 권 빌렸다. 제대로 된 한상차림이나 고기가 들어가는 메인요리 같은 건 논외로 두고 밑반찬 하나 해 먹는 게 목표였다. 인터넷에서 어쭙잖게 보고 배워서 기름을 안 쓰고 물로만 채소와 두부를 볶아 먹기도 했다. 이러나저러나 집에서 해 먹으면 뭐든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단촛물을 끓여 장아찌를 담가 먹었다. 입맛이 없으면 굶고 굶다가 너무 배고파서 아무것도 못 하겠다 싶을 때 대충 과자 주워 먹던 과거를 뒤로하고 밥에다 장아찌 반찬으로 먹게 될 정도로 진화하게 되었다. 절대적 건강이 아닌 상대적 건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방향으로 흘렀다.


누군가 밖에서 외식해야 할 일이 있으면 샌드위치를 먹거나 비빔밥을 먹는 게 건강에 좋다고 얘기한 걸 들은 이후로 대학 시절 내 학식의 대부분은 비빔밥이었다. 물론 시간표가 허락하지 않아 김밥을 먹거나 두유 하나 챙겨서 수업 들으러 가는 날이 많았지만, 탄산음료 뚱캔이나 드링킹 요거트에 초콜릿이나 쿠키 한두 개를 먹던 것에 비하면 큰 발전이었다. 적어도 간식으로 식사를 대신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온갖 매체에서 먹방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잘 먹는 사람들을 보니 먹는 것에 대한 자극을 느꼈다. 나도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는 딱히 식욕이랄 것도 없고 먹는데 많은 의미를 두지 않았었기에 이 부분에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건강해지는 것이나 체중 증량이 아니라 먹는다는 행위 자체에 좀 더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막연히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람이 먹는 거로 생활 습관을 바꾸고자 하면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왜 먹는지 알아야 제대로 먹을 수 있는데 나는 그걸 모르고 한참을 헤맸던 것 같다.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찾아 먹으니 더 이상 자다 일어나서 소화제를 찾지 않게 되었다. 위장이 튼튼해진 건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만 먹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전보다는 제대로 먹었고 그래서 살이 쪘고 결과적으로 잔병치레가 줄어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감기에 걸리다가 1년에 한 번 감기에 걸릴까 말까 한 몸이 되니 건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처음부터 장기프로젝트라고 생각했고 목표치를 높게 설정해둬서 여차여차 어떻게든 내 몸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상한 부분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애를 써도 여전히 위장약은 상비약으로 가방 속 파우치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먹는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었을 뿐이지 필요 없는 물건이 되지는 않았다. 그걸 이전의 내가 알았더라면, 약 먹고 나아지는 게 아니라 만성이 될 줄 알았다면 반성했을 텐데. 기회를 놓쳤으니 관리하는 법밖에 남지 않았다.


‘잘 먹고 잘살기’라는 말은 언제 처음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고 몇 번을 들었는지 셀 수조차 없다. 하지만 잘 먹고 잘사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다. 현실적으로 매번 건강하게 챙겨 먹기는 힘들고, 혀가 즐겁고 위장은 괴로운 음식이 세상에 많다. 회사에 다니면 메뉴는 한정적이고 하루에 한 끼나 일이 많으면 두 끼를 모두 외식으로 해결하게 된다. 힘들고 지치는 만큼 기름지거나 간이 센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달래기도 한다. 몸과 정신을 깨우기 위한 건 카페인이고, 허기를 달래줄 간식거리는 대체로 당분 덩어리다. 그리고 오랜 시간 앉아있으니 음식으로 몸을 해치는 날이 자주 반복된다.


건강을 되뇌다가도 혀만 즐거운 식사와 후식을 잊지 못하고 한 번씩 찾아가곤 한다. 한 끼 식사가 불러온 거센 후폭풍을 맞고선 반성도 잠시, 몇 번인가 비슷한 후회를 되풀이했다. 이젠 경험해본 후폭풍과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작은 양심을 품고 산다. 오늘은 매운 음식과 함께 맵지 않은 메뉴를 추가해서 양을 조절했고 혹시 모르니 후식은 따뜻한 음료를 선택해 몸을 사렸다. 그 덕에 아마도 오늘 밤과 내일 아침의 나는 무사할 예정이다.


20대의 내가 길게 보고 조금씩 바꿔나갔던 것처럼, 올해의 나도 멀리 보고 하나씩 고쳐나가려고 한다. 후회를 반복하지 말 것, 큰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더라도 지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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