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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Jun 03. 2024

식사 자리로 모이는 힘을 생각하며


7살, 세상에 태어나 처음 소화하게 된 사자성어가 있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장작 위에 누워서 쓰디쓴 쓸개를 맛본다’라는 뜻이다. 쓸개라는 단어가 어린 시선에서 신기하게 느껴졌던 나는 어릴 적, 가족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처음 이 뜻을 알게 됐다. 아빠는 어린 나와 언니에게 삼국지 이야기와 사자성어 등 교양 상식을 풀어주곤 하셨다. 물 흐르듯 귀담아들었던 이야기와 기억이, 먼 미래에서 불현듯 선명해지던 날에는 과거 기억과 꽉 찬 포옹이라도 나누듯 사자성어가 무척이나 반갑게, 또 배부르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밥과 함께 지식을 꼭꼭 씹어 넘겼기 때문이다. 단순히 음식만 섭취하고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다방면을 맛본 후 내 안으로 쌓는 시간이기에 식사 자리는 다양한 것을 나누는 ‘교류의 장’처럼 느껴졌다. 사랑과 용기, 그리고 지혜. 사람으로서 살기 위한 에너지들을 이 시간을 통해 체득할 수 있었다. 유독 그런 문화가 도드라졌던 우리 가족은, 소박하지만 배부른 밥상을 둘러싸고 앉아 재밌고 웃긴, 때로는 슬픈 일화 등을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늘 아빠가 그 중심을 지키고 계셨는데, 함께하는 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신 덕에 우리 가족은 저녁 식사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족만큼이나 가까운 아빠의 오랜 친구분이 계신다. 어릴 적부터 자주 뵈어오며 내겐 친척처럼 느껴졌던 삼촌이다. 한 번은 삼촌의 동네에서, 또 다른 한 번은 우리 동네에서 종종 맛있는 음식을 나누곤 했다. 그러나 삼촌은 몸이 편찮아 거동이 불편하셔서 우리 가족과 빈번한 식사 자리를 가지긴 어려웠다. 지난겨울의 어느 날, 삼촌의 건강이 그 전보다 악화되어 점점 힘들어하신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빠는 잠깐의 통화 후 바로 옷을 껴입고 나갈 준비를 마치셨다. 엄마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길을 따랐던 이유는 단일하면서도 투명한. 또 공통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음식을 나누며 힘을 얻을 수 있는 식사 자리를 함께하자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음식이 놓인 상을 중심으로 우리 네 사람은 둥글게 모여 앉았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대화로 그 에너지를 주고받았다. 한 젓가락에 근황 하나, 한 젓가락에는 걱정 하나. 또 다른 젓가락에는 추억 하나. 특히 이 추억의 맛은, 먹어도 먹어도 궁금한 감칠맛과도 같은 그리움이라 아빠와 삼촌에게 무한한 애틋함으로, 또 미소 한 줌으로 피어났다. 또 내게는 몰랐던 과거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경험으로 마음 안에 따듯하게 흩날렸다.

 

그렇게 갓 지은 포슬포슬한 밥이 빈 공기에 여러 번 담기기를 반복할 때, 삼촌의 표정은 처음 뵀을 때보다 편안해 보이셨다. 마음에 지니던 추운 겨울을 조금은 보내신 것 같았다. 다시 든든한 에너지를 얻은 삼촌의 모습을 뒤로하고, 우리 가족은 아빠의 말을 끝으로 다음 계절을 기약했다.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고 따듯해진 봄이 맞이할 때. 그때 또 밥 한 끼 함께 하자는 말이었다. 그건 오늘 나누고 쌓은 에너지를 마음속에 간직하라는. 또 부디 건강히 지내라는 애정어린 말이었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다시 봄은 찾아왔지만, 끝끝내 그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됐다. 짧은 몇 달 동안 삼촌의 건강이 더 악화되어 예기치 못한 이별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그 마지막 길을 3일 동안 함께 하셨다. 하나뿐인 친구에게 음식을, 또 그것에서 나오는 모든 에너지를 선물하기 위해 무작정 나섰던 지난 겨울의 어떤 날처럼 말이다.

 

“삼촌은 지금 어디에 계셔?” 내가 건넨 질문에 아빠는 이렇게 답하셨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일부로 편안하게 있지.” 그러면서 아빠는 내가 몰랐던 삼촌의 마지막 이야기와 함께, 삼촌이 바닷가 근처 고요히 계신 자리 위로 어여쁜 묘목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꼭 삼촌이 피워내신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우리가 꼭꼭 씹어 넘긴 모든 에너지의 힘을 생각하니, 자연을 일구며 생명을 깨우는 힘이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비롯된 것만 같았다.

 

그때 음식을 두고 둘러앉아, 마실 것이 든 잔을 부딪힐 때의 모든 일렁임을 생각했다. 잔을 한곳으로 모으는 것이 꼭 에너지를 한가운데로 모으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가족이 매 식사시간마다 서로를 향해 가운데로 모였듯. 강인한 응축력으로 하나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 단단한 결합체에서 나온 에너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동력이 된다.

 

어릴 적 식사 자리에서 들었던 사자성어를 어렴풋이 기억하는 지금 내 모습과, 또 함께한 식사 이후 먼저 떠나가신 삼촌이 우리 곁으로 돌아와 다시 자연의 일부가 된 것을 가만히 느껴봤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 하나하나가 스스로에게, 또 땅에 아름다운 나무와 꽃을 피워낸다고 생각하니 언젠가 그 자리에서, 또 세상에서 흩어진다고 해도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올봄에도 어김없이 꽃이 활짝 피었다. 그게 꼭 다섯 손가락을 활짝 핀 내 손과 닮아 기분 좋은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또 여름의 서늘한 바람에 움직이는 푸른 이파리들은 지나가는 모든 것에 살랑살랑 인사를 고하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을 삼촌의 인사로 기억하고 싶다. 지고 피는 것을 반복하는 계절마다 쥐었다 펴기를. 흔들림과 멈춤을. 그리움과 반가움을 반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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