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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Jun 20. 2024

햄버거 먹고 행복하세요


나에게 음식이란 우선순위가 높지 않다. 밥 먹는 것보다 잠을 자는 게 더 좋고, 밥 먹을 돈으로 영화나 보러 가는 것이 더 좋다. 누군가 영화 평론가에게 어떻게 이렇게 많은 영화와 책을 보느냐는 질문을 했다. 영화평론가는 친구를 만나는 대신 영화를 보고, 밥은 라면을 먹습니다. 라는 농담 섞인 답을 했다. 나는 그런 대답에 굉장히 공감했는지 지금까지도 재밌는 에피소드로 선명히 기억할 정도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세요?


그래서 이런 음식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땐 뭐라고 말할지 고민했던 적이 있다. 좋아하는 영화가 있으세요? 라는 질문엔 술술 말하면서, 저 질문을 받으면 조금 생각을 하다 최근에 맛있게 먹은 음식을 얘기하곤 했다. 왠지, 정말 특별하게 맛있는 음식을 말해야 할 것만 같다. 예컨대 라면이요. 햄버거요. 피자요. 같이 흔한 인스턴트 식품은 평범하지 않은가. 인생 영화에 대해 질문받을 때도 예술영화를 골라 얘기하고 싶은 심리가 음식에도 적용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햄버거요.


그중에서도 브루클린 더 버거 조인트 햄버거요. 브루클린에서 시작되었을 것 같은 이 햄버거 체인점은 서울에서 시작된 한국 브랜드다.


현재 한국에는 수제 버거의 성지인 미국의 햄버거 체인점들이 거의 다 들어와 있다. 쉐이크쉑(Shake Shack), 슈퍼두퍼(Super Duper), 다운타우너 버거(Downtowner Burger), 파이브 가이즈(Five Guys)까지. 인앤아웃 버거(In-N-Out Burger)만 들어온다면 햄버거 먹으러 미국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파이브가이즈를 먹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대신 1시간 대기를 해본 적도 있다. 또 새로운 햄버거 가게가 나타나면 꼭 들린다. 브루클린 버거를 평가의 기준으로 세워 더 맛있는 햄버거를 찾길 바라면서 말이다. 원래부터 햄버거를 좋아했던 것인지, 브루클린 버거를 좋아한 나머지 햄버거 자체를 좋아하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대부분의 햄버거를 먹어 본 결과 여전히 내 마음속 1등은 브루클린 버거라는 것이다. 한국에 사는 덕분에 브루클린 버거를 먹을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지 않을 수 없다.


브루클린 더 버거 조인트는 서울에 10개의 체인점이 있다. 점심시간, 저녁 시간에 가면 항상 대기를 해야 하기에 최대한 애매한 시간에 방문한다. 이곳의 외관은 영화에서 나올 법한 미국 햄버거집을 닮았다. 마치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처럼. 또 체인점마다 미세하게 외 내부가 다르다. 이런 차이점 때문인지 서울에 있는 웬만한 브루클린 체인점을 방문했지만, 같은 곳을 방문한 느낌이 아니다. 이런 가게의 분위기가 음식의 맛에도 영향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브루클린이 뭐가 그리 다르냐고 묻는다면 바로 패티다. 기름지고 느끼한데 담백하고 고소하고 짭조름한 패티의 맛이 뚜렷하다. 그렇다는 것은 빵의 존재감을 모를 정도로 빵이 푹신푹신하다는 말과도 같다. 보통 햄버거를 먹으면 소스 맛인지 야채 맛인지 다 섞여 있는 맛이 난다. 어떤 맛에 집중할지 모르겠기에 대충 씹고 꿀떡꿀떡 삼킨다. 심지어는 패티의 맛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존재감이 뚜렷한 패티는 꼭꼭 씹어 먹고, 꼭꼭 음미한다. 음식의 맛을 느끼면서 먹는 것이 무엇인지, 마지막 한 입이 남았을 때 남는 아쉬움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패티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인지 야채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패티만 넣은 메뉴가 꽤 있다. 베이컨, 체다 치즈, 패티, 홀스래디쉬 마요가 들어간 크.림.과 치즈 2장과 패티 4장이 들어간 판타스틱4는 즐겨 먹는 헤비한 메뉴들이다. 야채가 들어가 덜 헤비한 메뉴로는 브루클린 웍스와 치즈 스커트를 조심스레 추천해 본다.


한때는 이 가게의 햄버거가 너무 좋아 속으로 ‘이곳에서 일을 한다면 매일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속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무서운 알고리즘은 SNS에 햄버거 가게 구인 공고 글을 띄웠다. 그래도 역시 일이 되면 안 될 것 같다. 기름 냄새, 패티 냄새, 열기로 가득한 하루를 5일씩이나 보낸다면 분명 질릴 것이 뻔하다.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더 이상 좋아할 수 없을까 두렵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먹으며 장거리 연애를 하는 마음으로 지켜왔던 이 몸과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면 권태를 느낄까 두렵다. 얇고 길게 이 설렘이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 햄버거와 연애라니, 웃기다.


햄버거란 음식은 평범하지만, 평범한 만큼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생각나면 언제든 먹으러 갈 수 있다. 컴포트 푸드(Comfort Food)란 먹으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이다. 소울푸드, 인생 음식 등 여러 단어가 있지만 컴포트 푸드라는 단어가 딱 적합하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주기적으로 방문하긴 하지만 문제나 갈등이 생겨 마음이 심란할 때면 이곳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한 입을 베어 물자마자 이러려고 산다 싶어 울상으로 들어왔다가 웃으며 나간다.




 

가게를 나오면서 배부르다고 배를 두들긴다.

 

음식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이 가능한 것이구나 감탄한다. 주기적으로 음식점을 찾고, 이 음식이 정말 맛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이 음식을 먹으면 불행했던 순간들도 다 잊을 만큼 행복하다는 사람이 적어도 나 한 명. 최소 한 명 이상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사장님은 알까? 그리고 사장님을 부러워한다.

 

내가 만든 것을 누군가 이만큼이나 좋아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그럴 만한 무언가를 일생에 단 하나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음식이든, 영상이든, 글이든. 어떤 형태로든.


브루클린 더 버거 조인트에 대한 구구절절한 고백을 다 하고 나니 침이 고인다. 아무래도 또 조만간 만나러 가야 할 것 같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냐는 질문에 바로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는 것은 미각이라는 신의 선물을 누릴 수 있는 큰 행복인 것 같다. 아직 없다면 평범해서 언제든 누릴 수 있는 햄버거를 좋아해 보면 어떨지, 아무렴 어느 곳이든 햄버거 먹고 행복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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