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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Jun 19. 2024

만남이 한 사람을 바꾸는 기적

 

 

 

어린 시절 가장 좋아하던 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세드릭 이야기>를 꼽겠다. 침착한 태도와 부드러운 미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자리 잡고 있는 청명한 마음씨. 어린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아니 어쩌면 어린아이라서 가능한 것인가 싶은 진솔함과 다정함. 어렸던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세드릭의 아름다움(외모가 아닌 그 외의 것들)에 감탄하곤 했다. 세드릭이 자신의 할아버지인 도린코트 백작을 처음 만나는 장면은 여전히 잊을 수 없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큰 개의 목덜미에 손을 얹고, 얼굴엔 미소를 띤 채 의젓하게 서서 백작을 바라보는 세드릭의 모습. 그 작은 소년을 보고 백작은 매우 놀란다. 자신의 개는 마치 세드릭의 면모를 알아보기라도 한 듯 그의 옆에 얌전히 서 있었고, 세드릭은 자신을 처음 보고도 전혀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었으니 말이다.

 

도린코트 백작은 세드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다. 세드릭을 만나기 직전의 백작은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아들 셋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앓고 있는 류머티즘은 늘 백작의 신경을 건드렸다. 게다가 백작은 이기적이고 오만하여 평생을 남들을 깔보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늙고 나니 백작의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은 건 당연지사다. 이기심과 거만함은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얼마나 갉아먹는가. 어떤 것도 백작을 이기심이라는 어둠에서 끌어올릴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 백작을 선으로 인도하고 세상을 좀 더 너그럽게 보도록 만든 건 다름 아닌 어린 손자 세드릭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백작의 삶에 들어온 세드릭이 도린코트 백작을 한없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줌으로써 백작은 조금씩 변해 간다. 발이 아플 테니 자기 어깨를 빌려주겠다며 작은 몸을 내미는 세드릭을 보고 백작은 다른 사람을 사랑해 나가는 법을 배운다. 책은 끝이 났지만, 아마 도린코트 백작은 세드릭의 무한 보호(?)를 받으며 점점 더 점잖음을 갖추어 이전보다 멋지게 늙어갔을 것이다.

 

처음 <세드릭 이야기>를 완독하고 책을 덮으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두근거림을 오래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는 본 횟수로 따지면 열 손가락을 다 접고 다시 펴야 했을 정도로 그 책을 들여다봤다. 그만큼 작은 소년 하나로 인해 도린코트 백작의 세상이 바뀌는 과정은 어린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세드릭의 모습에 나조차 절로 감화되는 느낌에 그렇기도 했지만, 아마 세드릭 같은 아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컸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심이 있지만 그래도 선한 마음을 더 크게 품은 채로 살고 싶다고. 그러다가 세드릭처럼 무언가 바꿀 수 있다면 좋겠다고.

 

<세드릭 이야기>를 읽으며 세상에 다정해지기로 마음먹었던 어린아이는 숱한 세월을 거쳐 평범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는 건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스스로 나를 고립시키고, 나 자신에게 화만 내며 살았던 시기를 거쳤다. 자기 자신에게 다정하지 못한 사람이 세상에 온전히 다정해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내 안의 빛을 보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살 때 난 내 고양이를 만났다. 살다 보면 내 삶에 무언가 들어오게 되고, 그 무언가가 반대로 내 세상을 바꾸는 일이 일어나는 법이었다. 도린코트 백작이 세드릭을 만났듯이 말이다.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입고, 발에는 흰 양말을 신고, 눈에는 샛노란 별을 박아 넣은 고양이. 나를 어찌나 믿는지 이리 오라고 손짓하면 의심 한 점 없이 따라온다. 무한한 신뢰의 눈빛으로 날 바라볼 때면 어느새 손바닥에 북어 트릿을 덜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 눈썹을 핥아 주고 손바닥을 내밀면 머리를 기댄다. 저녁에는 내 발치에서 나를 보다가 눈을 깜박, 한 번 감고는 옆으로 누워서 잠든다.

 

날 착하고 커다랗고 다정한 고양이라고 믿고 있는 내 고양이에게 적어도 부끄럽지 않고 싶다고 생각하니 좀 더 힘을 내서 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잊고 있던 삶의 즐거움도 되찾았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고양이를 돌본 게 아니라 고양이가 나를 돌본 것이구나. 그저 거기에 가만히 있음으로써, 나를 바라보고 투명한 눈을 깜박임으로써. 가끔은 내 무릎에 보드라운 뺨을 비빔으로써.

 

내 고양이는 어떤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옆에 있어 준 건 내 고양이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힘들어하지 말고 그냥 모든 걸 즐기라고 말해 준 아빠가 있었고, 다 괜찮다며 내 옆을 지켜 준 친구가 있었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들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내가 보지 못한 것뿐이었다. 나보다 작은 존재가 날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건 그토록 눈물 날 만큼 신기하고 기꺼운 경험인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뒤바꿀 수 있는 건 ‘만남’이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와의 만남. 책 한 권일 수도, 노래 가사 하나일 수도, 어떤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도린코트 백작에게는 세드릭과의 만남이, 내게는 내 고양이와의 만남이 다시금 생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었다.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늙은 백작은 성마르고 냉혹하고 속물적인 인간이었지만, 이렇게 신뢰를 받으면서 생전 느껴 보지 못한 기쁨을 맛보았다. 자기 앞에서 움츠러들지도 않고 자기를 믿어 주는 사람,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지 전혀 모르는 사람, 한 점 의심도 없이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리 기분 나쁜 일이 아니었다. 비록 그것이 까만 벨벳 옷을 입은 어린 사내아이라 해도 말이다.’ 내가 내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기쁨이 부드럽게 밀려오듯, 세드릭을 바라보는 백작의 마음도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내 고양이는 네 살이 되어 간다. 늘 내 고양이를 ‘우리 애기’, ‘내 아가’라고 부르지만 사람 나이로 치자면 아마 나와 나이대가 비슷할 것이다. 내 고양이와의 만남, 이 만남에 있어서 모든 게 감사하지만 걱정이 있다면 하나뿐이다. 내 고양이와 나는 다른 길이의 생을 살아가기에 언젠가 내 고양이가 없는 세상을 살게 될 텐데 그땐 어쩌나. 도린코트 백작과 세드릭을 떠올린다. 늙은 백작도 남겨질 세드릭이 걱정되었을까? 아니면 씩씩한 아이니까 자기가 없어도 괜찮겠다 싶었을까? 소중한 자신의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세드릭은 어느 시간만큼 슬퍼했을까? 그래도 내 고양이가 나를 잃고 남겨지는 것보단 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됐을 내가 그 이별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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