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졸업 전 마지막 학기를 ‘캡스톤 디자인’이라는 묵직한 수업으로 마무리하게 된 나는 요즘 한창 팀 프로젝트에 시달리고 있다. 나와 동갑인 팀원 두 명, 한 살 어린 팀원 두 명으로 총 다섯 명이 함께하고 있는 팀 프로젝트에서 나는 운 나쁘게도 팀장이 되었다. 사다리 타기 게임에서 하필 내가 걸려버린 탓이었다…
전형적인 팔로워의 기질을 보유한 나에게 조장, 팀장, 리더와 같은 직책은 기피 대상 1순위였다. 심지어 나는 남들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진행할 때 심하게 긴장하는 편이기에 더더욱 그런 감투를 꺼리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직책을 맡아본 경험 자체가 별로 없었다. 이건 앞으로 이야기할 일에 대한 핑계이자 밑밥(?)이다.
이 팀 프로젝트의 팀장을 맡은 지 일주일 정도 뒤에 작은 일이 하나 생겼다. 팀원 한 명이 어느 날 단체 채팅방에 “지금 일정이 지체되고 있으니, 팀장님이 집중해서 빠르게 진행해달라”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말하자면, 나는 그 메시지를 읽으며 심장이 정말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내가 어떤 식으로 이끌어 가야 할지에 대해 하나도 생각해 두지 못한 상태였는데, 지금 당장 무엇이든 해야만 할 것 같은 상황이 주어지니 어쩔 줄 몰랐던 것 같다. 나는 그날부터 며칠 동안 새벽 내내 프로젝트 생각만 하며 그간의 공백을 메꾸는 작업을 했다.
다행히 프로젝트 자체는 별 탈 없이 진행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그 뒤부터 내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것에 있었다.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던 그 팀원 한 명을 내가 너무 의식하게 되었고, 내가 진행하는 모든 회의 내용에 그 팀원이 태클을 거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팀원의 눈치를 꽤 많이 보게 되었고, 서서히 위축되어 갔다.
자꾸 그 장문의 메시지를 되새김질하며 한 줄씩 분석하기도 했다. 이 문장은 이런 뉘앙스로 말했을 것 같고, 저 문장은 저런 뉘앙스로 말했을 것 같고… 과연 그 텍스트에 어떤 감정을 넣었던 것일지 끊임없이 생각하며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어냈다. 급한 일을 하고 있을 때도, 다른 강의를 듣고 있을 때도 혹여나 내가 팀장으로서 못 챙기고 있는 게 있으면 어떡하나 싶어 계속 휴대폰과 수첩에 같은 내용의 체크리스트를 적었다.
그리고 팀원들과 논의 후 결정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그걸 빨리 해결하고 싶어 마음이 초조해지곤 했다. 다음 회의 전까지 내가 해둘 수 있는 건 다 해두었음에도 자꾸 더 해야 할 게 없는지 확인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빨리 회의하는 날이 왔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했다.
잠도 못 자고 계속 신경을 쓰다 보니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며 날이 서는 게 느껴졌다. 팀 프로젝트 수업을 들으러 갈 때면 속이 울렁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특히 후각이 정말 많이 예민해져 있었다.
어느 날은 교양 수업을 듣는 강의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게 느껴져 ‘이걸 나만 느끼고 있는 건가?’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못 참고 잠시 강의실을 나가버린 적도 있었다. 금방 다시 돌아와 앉아보니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고, 대번에 ‘그냥 내 코가 만들어낸 냄새구나.’라는 걸 느꼈다.
집에서도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아 학교를 마치고 귀가할 때면 항상 짜증을 냈다. 이게 무슨 냄새냐며 가족에게 따지듯 묻고, 곧바로 온 집안에 실내 탈취제를 뿌렸다. 내 방에 디퓨저를 두 개 놓고, 실내 탈취 스프레이를 다섯 병이나 사고(두 병은 산 지 한 달도 안 돼서 다 썼다), 자동 분사 방향제를 거실에 두기까지 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 한 명은 너무 방향제 냄새가 강해서 머리가 아프다고 말할 정도였다.
다소 심한 수준까지 오게 된 것 같아 ‘내가 원래 이렇게까지 예민한 사람이었나?’하고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원래도 꽤 예민하긴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니지만 어렸을 땐 강박증도 있었다.
8살 때부터였던가, 갑자기 시도 때도 없이 집의 안전을 점검하는 강박이 생겼었다. 집 문이 잘 잠겼는지, 현관 옆에 집 열쇠가 잘 걸려있는지, 현관문 밖에 누가 서 있진 않은지(문 구멍을 통해 밖을 확인했다), 집안의 모든 코드가 잘 뽑혀 있는지, 가스 밸브는 잠겨 있는지, 수도가 잘 안 잠겨 물이 새고 있지는 않은지를 하루에도 몇 번 확인했다. 특히 자기 전에는 다섯 번 정도 왔다 갔다 하며 확인했고,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 같을 땐 자려고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나 하나하나 확인하곤 했다.
여기까지의 글은 나의 ‘예민일지’이다. 여기에 언급하지 않은 ‘예민 모멘트’들도 상당히 많긴 했다는 게 문제인 것 같지만…
때때로 나의 이런 기질을 ‘예민’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되는지 많이 고민했다. 별것도 아닌 걸로 어리광을 부리면서 그럴싸한 표현만 갖다 붙이는 ‘예민 호소인’처럼 보일까 봐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예민하다’라는 표현은 자아를 구성하는 수많은 키워드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키워드 하나마저 타인의 판단 기준을 나의 그것보다 우위에 둔다면, 나의 진짜 모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걸까? 나는 ‘자존감’을 외치기 이전에 나의 모습을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예민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예민함은 기생충처럼 나를 갉아먹으며 자라나 어느새 숙주를 쪼글쪼글 말려놓는다. 예민하고 싶지 않은데, 이게 노력으로 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애초에 해결이 가능한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아직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 내가 임시로 내린 결론은 이걸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심각하게 생각할수록 그것은 또 다른 예민함을 만들어 낸다는 걸 경험했으니 말이다. 장점으로의 승화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지금의 까칠한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