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기 좋은 계절이라는 게 있을까? 나는 그게 겨울이라고 생각한다.
봄은 지난 추위를 지나 따뜻해지는 계절이다. 미세먼지와 황사가 있긴 하지만, 가벼워진 옷차림은 마음마저 산뜻하게 만든다. 겨우내 꼭꼭 껴입었던 니트를 집에 쌓아두고, 옷장 밖으로 나가길 기다린 알록달록한 봄옷을 하나둘 꺼낸다. 자연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각자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어 있다.
가을은 습하고 무더웠던 날들을 뒤로하고 쾌청한 하늘을 만나는 계절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고 있으면 그 푸른빛에 흠뻑 젖어 기분이 맑아진다. 물기 없이 상쾌한 공기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허락하는 것 같고, 단풍이 진 나무들을 보면 괜히 책 한 페이지는 더 넘겨야 할 것 같은 단정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늘 말한다. 두 계절은 모든 것이 아름다워지는 시기라고, 너를 알아보기에는 세상도 함께 빛나고 있다고 말이다. 그 자체로 완벽한 계절에 힘입어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이 있다. 그들의 사랑은 언제나 그 시작처럼 빛날 것 같은 좋은 향기를 퍼뜨린다. 하지만 계절의 아름다움에 속아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하기도 한다. 사랑에 빠지기 쉽지만, 그만큼 주의해야 하는 계절이다.
여름은 어떨까? 네가 나에게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나는 '여름'을 말하곤 했다. 학창 시절 가장 사랑했던 계절은 여름이었다.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웃으면서 뛰어다니던 너와 나의 모습은 상상만으로 미소가 지어진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절. 두려움보다는 호기심과 도전하는 마음이 더 컸던 날들. 우리의 10대는 그렇게 여름의 빛깔로 채워져 있다.
여름에 시작한 사랑도 그러하다. 작은 가능성도 모두 현실로 이뤄질 것 같은 힘을 여름이라는 계절로부터 받는다. 그러나 열정이 앞서 시작한 일이 에너지가 소멸하면 멈춰 서는 것처럼, 뜨겁게 시작한 사랑은 빠르게 식어버린다. 장마에 지구의 열기가 소강하듯 조용히 감정도 사그라든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계절에 쉽게 사랑에 빠진다는데 나는 반대다. 무더운 여름에 태어나 겨울에 사랑한다. 차가운 공기에 닿은 너의 살이 불꽃처럼 차츰 붉은빛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숨을 들이마시면 나의 호흡기관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차가운 공기 방울의 움직임을 느끼는 게 낯설다.
우습게도 나는 사실 추위에 약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온갖 보온용품으로 꽁꽁 싸매면서 굳이 너와 바깥을 경험한다. 언제였을까? 매일 새벽에 집 밖을 나서면서 겨울의 냄새를 맡고 묻혔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며 피곤한 날들도 있었지만, 너보다 먼저 눈 내리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면 피로를 잊은 채 아이처럼 들떠서 연락했다. 아직 사람들이 밟지 않은 소복한 눈을 보는 게 좋았고 살포시 밟으며 가는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너는 오늘처럼 살을 에는 추위는 마치 너를 잡아먹는 듯 두렵다고 말한다. 집 와서 그 말을 곱씹었다. 너의 두려움을 내가 내려놓게 할 수 있을까? 내가 너를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추위는 우리의 적이 아닌데 너와 함께 겨울을 보내고 싶어서 나는 너에게 내 온기를 지켜주던 무기를 건넨다. 겨울바람이 너를 잡아먹지 못하도록 그래서 내 곁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방패도 싸움에 사용되는 무기니까.
In the dark, on the phone
You tell me the names of your brothers
And your favorite colors
I'm learning you
And when it snows again
We'll take a walk outside
And search the sky
Like children do
I'll say to you
St. Patrick's Day(2001) - John Mayer
겨울은 너무 춥다. 나의 몸으로는 홀로 살아남지 못할 만큼 춥다.
솔직히 겨울은 계절만으로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너의 말처럼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그러한 이유로 겨울에 사랑에 빠지는 걸 좋아하는지 모른다. 차가운 세상 속에서 너의 안녕을 생각하고, 따뜻한 내가 너에게 나의 온기를 더욱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있는 게 어색하지 않은 계절, 더 함께 있고 싶은 이 계절에 나는 오롯이 너를 보고 너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