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각색, 수많은 스토리들이 다양한 형식에 담겨 우리를 찾아오고 있는 시대다. 선택의 폭이 넓다 보니 그중에서도 각자가 선호하는 장르가 있길 마련이다. 시, 소설 등의 정통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영화, 드라마 등 영상물을 좀 더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만화를 찢고 나온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웹툰과 애니메이션 장르만을 즐겨 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웹소설’을 즐겨 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웹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치는 조금 애매하다. 글로 되어 있으니까 만화도 아니고, 영상도 아니고, 문학은 문학인데, 이걸 정말 문학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오간다.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읽고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 하지만 웹소설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들과, 정말로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들을 기반으로 전개된다. 그렇기에 이 글을 읽고 무언가 의미 있는 깨달음을 얻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짧은 문장과 비슷한 스토리라인과 비슷한 클리셰를 가진 이 양산형 글들은 오로지 독자들의 쾌락과 도파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웹소설 시장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웹소설을 기반으로 웹툰이 제작되고, 웹툰을 기반으로 드라마와 영화가 제작된다. 웹소설은 단순한 양산형 이야기라는 오명을 넘어서, 어엿한 하나의 스토리 IP로 성장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웹소설’은 어떻게 이토록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장르가 된 것일까?
그 이야기를 하자면 최근 웹소설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작품 중 하나인, 백덕수 작가의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를 들고 오지 않을 수가 없다. 일명 ‘괴담출근’ 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웹소설 대표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일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작품이다.
<괴담출근>은 주인공 김솔음이 자신이 덕질하는 인터넷 괴담 세계관 소설의 팝업 이벤트에 가게 되며 시작한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굿즈를 사러 올 정도로 진심이었던 솔음은, 운 좋게도 랜덤 룰렛 이벤트에서 1등 상품인 ‘어둠탐사기록 리얼굿즈 박스’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대로 괴담 세계관 속의 회사 신입사원으로 빙의해 버린다.
주인공이 자신이 좋아하던 소설 속에 빙의해 버린다는 점, 좋아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그래서 전지전능한 인물로서 활동하게 되어 독자들에게 사이다와 카타르시스를 주게 된다는 설정은 많은 웹소설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설정이다.
하지만 <괴담출근>이 여기서 좀 더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 김솔음이 ‘겁쟁이 신입사원’이라는 것이다. 회사 신입사원으로 빙의한 김솔음은 필연적으로 여러 괴담 속에 투입되어 괴담을 해결하는 일을 맡게 된다. 괴담의 정보를 알고 있는 능력치와는 별개로, 무시무시한 초자연적 현상을 경험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은데, 신입사원이라서 맘대로 행동할 수도, 맘대로 괴담 속에서 빠져나갈 수도 없다. 현실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맡은 괴담을 해결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이런 솔음의 처지는 많은 웹소설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세상천지에 출근을 즐겨 하는 직장인이 어디 있겠는가. 울면서도 회사에 나가 시키는 대로 일해야만 하는, 솔음이의 ‘더없이 현실적인’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억지로 출근하면서도 솔음이는 타인에게 친절하고, 정이 많고, 사람 냄새 나는 면이 있는 인물이다. 독자들은 그런 솔음이의 모습에 이입되어 자연스럽게 그를 응원하게 된다.
소설은 독자들에게도 솔음이 겪는 감정을 전달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글자 크기, 색깔, 폰트 등을 이용해서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정말로 괴담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오싹한 세계관 설정과, 방심할 수 없이 튀어나오는 괴담 에피소드들이 솔음이의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준다. <괴담출근>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 무시무시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을 ‘응원’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응원은 확장된다. 웹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한 회마다 댓글을 통해 실시간으로 독자들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주접 댓글, 웃긴 댓글, 다음 전개를 예측하는 댓글에 공감 표시를 하며 함께 의견을 주고받는다. 때로는 작가를 향한 피드백이 오가기도 하고, 웹소설의 내용에 대한 참견이 오가기도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렇게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소설’은 웹소설뿐이라는 것이다.
댓글뿐만이 아니다. X(구 트위터)에 들어가면, <괴담출근>과 관해 보다 많은 독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팬아트를 그려서 내놓는 팬들부터, 인물들의 캐릭터를 이용해 2차 창작글을 써내는 팬들까지 보인다. 독자들의 상상은 상상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모두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된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이야기는 실시간으로 확장되어 넓게 퍼져나간다.
웹소설은 이제 어엿하고 당당한 하나의 ‘장르’다. <괴담출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웹소설에게는 짧고 빠르게 치고 빠지는 것만이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이를테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람 많은 지하철에 올라타 퇴근하는 우리들에게 활력을 불어일으킬 수 있는 것. 매일 저녁 6시, 웹소설이 업로드되는 시간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 사람들과 이야기를 확장시킬 순간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게 웹소설의 힘이 아닐까 싶다.
<괴담출근> 속 솔음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음이의 출근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